[묵상글]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전봉석 2020. 9. 30. 02:17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에스겔 36:23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 밭 가는 자들이 내 등을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사 악인들의 줄을 끊으셨도다

시편 129:2-4

 

 

초저녁에 잠들었다가 새벽 일찍 일어났다. 추석연휴로 온 가족들이 속초로 갔다. 길 떠나기 전에 이처럼 말씀 앞에 앉게 하심이 귀하다. 아들은 공부하느라 함께 가지 못한다. 이래저래 마음이 좋지 않지만 뭐라 말을 보탠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다들 장성하여 나름의 생각과 고집들이 있는 터, 그래도 굳은 결심으로 공부하는데 응원은 하지만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어제는 설교원고도 얼추 초안을 잡아두었다.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다.’는 말씀에 나는 주목한다. 말씀 앞에 서면 늘 나의 죄 됨이 도드라져 그저 주의 긍휼하심만을 구하게 된다.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롬 7:13).” 그 죄가 죄로 드러나는 데 있어 나의 선이 한몫을 한다. 선한 그것, 내가 옳다고 여기는 나의 의가 여전히 나의 발목에 힘을 더하게 하여 그릇 행하는 길로 갔다. 아들이든 누구에 대해서도 뭐라 하기에 앞서 말하기를 주저하는 까닭은 그래서이다. 때론 묵묵히 이끄시는 대로 이끌림이 귀한 거였다. 으레 나의 선한 의도가 내 안의 죄 됨을 더욱 죄로 마주하게 하는 것이다.

 

주께서 당신의 이름이 더럽힘을 받는 것에 주저함이 없으시다.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이는 곧 나를 부르시고 세우신 바, 그 뜻에 합한 자로 세워 가시는 명분이다. “내가 그들의 눈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그렇게 나는 황송하고 송구할 따름인 주의 은혜로 오늘을 산다. 그리하여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곧 나를 온전히 세우시는 까닭은 나를 죄에서 이끌어내어 나를 정하게 하신 이의 이름을 위해서도 중요하다(겔 36:23). 그렇게 흩어졌던 나를 찾으신다(24). 그리고 오늘 이처럼 무엇보다 공들여 작업하신다.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25-27).” 이와 같은 말씀 앞에서 면목은 없으나 얼마나 감사한지! 내가 뭐라고? 나 같이 쓸모없는 자를 세워 주의 길을 가게 하시는 것인지. 새 영을 내 속에 두고 새 마음을 주어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꾸셨다.

 

나는 본질적으로 길가 밭 같은 마음이고, 돌밭과 같이 온갖 염려와 근심으로 시달리는 엉겅퀴만 무성한 가시떨기 밭 같은 쓸모없이 버려진 땅 같은데, 그처럼 나를 경작하시고 뒤집어엎어 주의 말씀을 뿌리신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창 49:22).” 주께서 우리를 돌보시는 뜻은 하나다. 이를 알 때 바울과 같이 앞만 보고 달려간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3-14).” 그럴 수 있는 게 어찌 사람의 결의로 가능하겠나? 그리할 수 있게 하시는 이의 긍휼하심이었으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골 2:3).” 더는 다른 그 무엇과 비교도 할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전부가 되었다. 아무래도 추석연휴를 보내고 오면 설교원고를 제대로(?) 쓸 겨를이 없을 것 같아서 월요일부터 말씀을 묵상하고 다루어 그 안에 담긴 주의 뜻을 구하였다. 어제는 종일 문맥을 나누고 대지와 소지를 구분하여 정돈하였다. 누가 묻기를 아무 것도 안 하는 자 같으나 나에게는 한 주간의 일이 이것이 전부이다. 당돌하게도 지난 토요일에 다녀간 아이가 믿음 안에서도 그리 답을 하였다. 목사님이 할 일은 그게 다다! 당돌하지만 명확한 아이의 지적이 피식, 웃으며 이를 알게 하시는 ‘그 안에서’의 통일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딤전 3:16).” 하나님의 관심은 온통 우리의 영혼에 있고, 이를 새롭게 하여 주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삼으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건의 이 비밀, 알 사람만 아는, 모든 소유를 팔아 이 보물이 묻힌 밭을 사서 무엇과도 바꾸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눅 12:33).” 하늘나라 가는 그날까지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이라. 그와 같은 주의 사랑이 세상에 쏟아져 나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그런데 이를 알고 아는 만큼 풍성하고 충만하게 사는 일이 점점 희박해지는 세상에서,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어 우리를 대표하시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이를 묵상하면 할수록 나는 죄 됨을 더욱 알게 되면서도 그 은혜를 더더욱 요구하고 갈망하게 된다.

 

어떠한 희한한 마음과 같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게 온통 나였지 않나? 그럼에도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10:3-4).” 내가 추구하였던 선의 기준은 율법이라, 나름의 선행과 의로움으로 주의 길을 바로 가야 한다고 여겼던 게 우스운 것이었다. 나는 어떠해도 선을 이루지 못한다. 바울의 진술처럼 “내가 (아무리)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주의 은혜)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1-3).” 전에는 이와 같은 말씀이면 억하심정 같은 어떤 억울함이 들고는 했는데, 이제는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내가 하나,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내가 하지 않지만 나로 하여금 하게 하시는 이가 계심을. 그가 그의 이름을 위하여도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3).” 물론 지금 나는 말할 수 없는 어떤 불안이 내 안에 있다. 모처럼 먼 길을 떠나는 데 있어서도 여러 근심이나 걱정이 앞선다. 혼자 두고 가는 아들애도 마음에 걸린다. 여러 모로 자신이 없다.

 

그러나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히 6:20).” 주께서 손수 앞서 가신다. 굳이 사람이 되셨고, 죄인 된 몸으로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다. 그리고 사흘 밤낮으로 죽음에 계셨고, 저는 우리의 죄로 지옥에 계셨다. 그리고 죽음에서 깨어 부활 승천하심으로 오늘 우리의 구원은 완성되었다. 이 놀라운 은혜의 경로를 알면 알수록, 묵상하면 할수록 나 같은 게 뭐라고 주께서 그토록 목숨을 다해 사랑하셨는지.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저가 종이고 내가 주인이나 되는 것처럼 우리를 섬기시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 이렇듯 말씀 앞에 앉으면 나에게 부어주시는 은혜가 귀하고 한량없다. 인생은 때로 고달프나,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 저들은 나를 결코 이길 수 없다. 심지어 “밭 가는 자들이 내 등을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 그 고통으로 신음하는 처지에서도 오히려,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사 악인들의 줄을 끊으셨도다.” 주의 사랑과 긍휼하심은 더없이 깊고 넓고 무궁하시다(시 129:2-4). 주께서 함께 하심을. 3시쯤 출발하기로 하고 일찍 잠들었는데, 이처럼 또한 말씀 앞에 먼저 앉게 하심이 귀하고 감사하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대상 16:34).” 그리하여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겔 36:24-25).” 그리 이뤄 가시는 주님이시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26-2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