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사도행전 27:25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
시편 33:1
어떤 어려움, 극한 상황에서 알 수 없는 여유와 평안이 우리에게는 있다. 현실은 자기 앞가림도 못하고, 자기 코가 석 자인 것 같은데 누구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주의 살아계심을 일상으로 전한다. 그것은 우리 안에 늘 주를 의뢰하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소서(시 33:22).” 사람들은 이런저런 궁리를 하고 나름의 판단으로 문제를 해결하지만 우리는 그 문제의 주체가 누구인지 안다. 그렇다고 우린 어려움이 없다는 게 아니라, 똑같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행 27:22).” 오히려 죄수로 끌려가는 바울이 숙련된 뱃사람과 단련된 군인들을 위로한다. 이러한 힘의 바탕은 하나님을 경외함이다.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그들이 굶주릴 때에 그들을 살리시는도다(시 33:18-19).”
바람이 세차게 불 때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의 가지나 이파리가 바람에 나는 겨와 다를 게 없이 요동한다. 하지만 곧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나뭇가지는 그대로 줄기에 붙어 있으나 같이 바람에 날리던 겨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는 우리로 결코 허투루 굴복하지 않게 하시는, 값을 지불한 몫이다.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요일 3:6).” 이는 매우 치밀한 계획에 의한 일이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슥 12:10).” 곧 우리의 눈물과 한숨은 그대로 흩어져 사라지는 탄식이 아니라,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신 결과로 이어진다. 어려움으로 주의 이름을 부른다. 두렵고 떨림으로 주를 바란다. 같은 염려 가운데서 먼저 주의 나라와 주의 의를 구한다.
이래저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고단한 인생이다. “배들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일을 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과 그의 기이한 일들을 깊은 바다에서 보나니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시 107:23-25).” 하나님은 못 하실 게 없고 그 의도는 엄연하였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판단을 측량할 길이 없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 가령 아내는 코로나 정국에 요양자격증을 따둔 것이 유용하여 앞서 백신을 맞게 되는 보호하심을 얻었다. 이런저런 염려가 들려오지만 병원 앞에서 잠시 손을 잡고 기도하기를 감사할 것뿐이었다. 그저 친정엄마를 돌보는 일밖에는 하는 게 없으면서 얼레벌레 따둔 자격증으로 우선순위를 얻게 하신 것이다. 그리 격려하고 들여보냈다.
얼마나 나는 연약한지, 그래놓고는 마음이 어려웠는가? 종일 설사를 해대며 불안을 달래야 했다. 누군들 바다의 거센 풍랑에서도 의연하고 싶지 않겠나? 그러면서도 그럴 수 있는 나의 연약함과 주를 의뢰함은 대치되는 것 같으면서 상호의존적이었다. 그것으로 더욱 주를 바라고 의뢰한다. 간구하고 은총을 구하게 하심이다. 이 또한 내가 누구보다 의연해서 태연한 게 아님을 몸은 잊지 않게 하였다. 이런 일을 통해 나는 되레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느낀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어쩔 땐 정말 나만큼 엉터리에 앞뒤가 맞지 않는 사람이 또 있겠나? 싶을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인데 그때마다 주의 은총은 선명하였다.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1:5).” 몸은 저 혼자 긴장하고 안달하며 불안을 일으켜 사람을 조바심 내게 하지만 영혼은 그것으로 주를 바라고 주께 더욱 간구하게 한다.
이런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7).” 내가 어떠한지, 그런 내게 무얼 요구하시고 그에 따라 은혜를 베푸시는 보상의 정도가 아니었다. 나의 이 모든 상황, 연약하고 부족하여 멋대로 마음은 저 혼자 들썽거린 것을 주가 다 아신다. 하여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잠 30:4).” 어떤 불안이 나를 떠나지 않고, 그것 때문에도 몸의 반응은 한심할 정도로 나를 몰아붙이지만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쟀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접시 저울로 산들을, 막대 저울로 언덕들을 달아 보았으랴(사 40:12).” 그것으로 나는 말씀을 살핀다. 주의 뜻을 구한다. 주의 이름을 되뇌고 의지한다.
어려움과 고충이 나의 유용한 자랑이다. 아, 그래서 바울도 자신의 약한 것을 자랑한다는 것이었구나.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솔직히 자랑할 거까지야… 누가 알면 부끄럽고 송구할 것들인데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그것으로 주께 간절하다. 늘 되새기는 말이지만 불안이 나로 말씀 앞에 앉힌다. 불안은 허리 통증을 유발한다는 연구도 있다. 치렁치렁 온 몸에 파스를 붙이고, 때론 아픈 게 너무 짜증스럽고 어려운 일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그것으로 주를 바라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나도 자랑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의 약함에 머물게 하려 함이다. 그렇게 우리는 주를 신뢰함으로 기동한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행 17:28).” 더 말해 무엇하겠나?
불안도 약한 몸도 모두가 은총이었다. 그것으로 주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인다. “보라 이런 것들은 그의 행사의 단편일 뿐이요 우리가 그에게서 들은 것도 속삭이는 소리일 뿐이니 그의 큰 능력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헤아리랴(욥 26:14).” 솔직히 누구의 어려움을 들어 이렇게 권면하는 일은 조심스럽지만 ‘그런 일’이 아니었으면 언제 또 주를 간절히 바랄까? 지금 그 어려움이 힘들고 모진 것은 사실이나 그로 인하여 우리가 바랄 것은 주밖에 없음을 확인하게 되는 은총의 자리이기도 하다.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시 48:14).” 이 땅의 것으로 전부라면 뭐 그리 연연해하며 주를 바라기나 할까? 어느 정신 나간 철학자의 말처럼 인간의 가장 고상한 자유의지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자살이겠다. 살만큼 살다 알아서 죽는다는 이 오만한 주장으로 당시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살을 했다. 특히 오늘 날 우리나라도 자살률 세계 1위를 놓지 않고 있다. 그러고는 저 철학자 자신은 아흔 살이 넘게 살았다. 허튼 소리로 숱한 영혼을 구렁텅이에 빠뜨렸다.
나는 어제도 몸소 느낀 것이지만 가족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아내를 병원 앞까지 데려다 주고 차 안에서 손잡고 기도해주고, 오후에도 내내 상태가 어떤가? 염려하는 게 일이었지만… 하나님은 내가 그러는 동안에도 몸을 낮춰 우리를 돌보시고 살피셨다.
여호와는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며
그의 영광은 하늘보다 높으시도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누구리요
높은 곳에 앉으셨으나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더미에서 들어 세워
지도자들 곧 그의 백성의 지도자들과 함께 세우시며
또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집에 살게 하사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시는도다 할렐루야
(시 113:4-9).
하나님은 늘 나보다 앞서 행하신다. 어제도 불안해하는 아내를 위로하며, 그렇게 따둔 자격증으로 먼저 백신을 맞게 하실 줄 누가 알았겠나? 어느 나라는 백신이 모자라 몇 년 전에 만들어진 ‘개 코로나 백신’을 수의사한테 맞고 다닌다는데. 가짜가 판치고 누군 세치기 하듯 자신의 권세를 이용해서 먼저 백신을 맞으려고 안달을 부린다는데… 우리에게 더하시는 모든 게 다 은혜다.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히 13:6).” 내가 누구보다 나은 게 있어 이런 은혜를 간직하며 사는 것이겠나? 오히려 어렵고 힘들어서 나의 어려움을 살핌으로 주의 이름을 의지한다. “장인이 온갖 것을 만들지라도 미련한 자를 고용하는 것은 지나가는 행인을 고용함과 같으니라(잠 26:10).” 이 모든 되어지는 일이 주의 놀라우신 섭리 가운데서였다. 고로 우리의 복은 오직 하나, 주를 경외하고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이겠다. 그것으로 주를 신뢰하고 나를 내어놓는다. “이방 사람들의 왕이시여 주를 경외하지 아니할 자가 누구리이까 이는 주께 당연한 일이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들의 지혜로운 자들 가운데 주와 같은 이가 없음이니이다(렘 10:7).”
그러므로 우리는 주를 더욱 의지할 따름이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계 15:4).” 우리로 더욱 주의 곁에 머물게 하시려고, 오늘 나에게 더하신 나의 나 됨을 사랑한다. 때론 그 하루가 너무 지치고 힘들다 해도,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시 33:20).” 이를 안다.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바울은 이를 알았고, 그것으로 저들을 위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 27:25).” 이와 같은 능력은 오직 하나,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시 33:1).” 하여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소서(2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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