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전봉석 2021. 6. 12. 05:34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2:16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회복하여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시편 80:7

 

 

율법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 그런데 율법보다 더 행하기 어려운 것은 산상수훈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한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 2:21).” 곧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16).” 하는 말씀을 다시금 되새기며 ‘은혜 위에 은혜’라 하신 말씀을 생각한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 1:16).” 이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4).”

 

이처럼 말씀으로 오신다. 성경의 권위는 하나님의 권위다. 이를 훼방하는 것이 자신의 지혜다. ‘좋은 땅’의 마음 밭을 가졌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일이다. 그 어떤 시간보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이처럼 말씀 앞에 먼저 앉는 까닭은,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경을 마주하는 일이겠다. 보물이 있는 데 마음이 가는 가고 몸이 따른다. 어제도 여섯 시도 안 돼 교회로 갔다.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아침에 적은 묵상글을 다시 읽는 시간이 참 좋다. 그런데 요즘 며칠째 주인도 여섯 시 반 혹은 일곱 시에 나온다. 나와서 청소를 하고 정돈을 하고 공사한 곳을 마무리하며 하나하나 점검을 한다. 어제도 커피 한 잔을 내주자, 신경이 쓰여 잠이 안 온다고 하였다. 하긴 일억을 들여 철거를 하고 새로 인테리어를 한 곳이다. 그 가운데 인건비가 반이라며 청소업체나 누구를 부를 엄두를 못 낸다. 그곳에 투자한 게 많으니 공을 들이고 마음이 기우는 것은 당연하겠다. 나더러도 왜 그리 일찍 나오냐고 물어서 같은 마음이라고 했다. 알아듣기나 한 것인지.

 

자다가 깨면 곁에 둔 시계를 먼저 본다. 한두 번 화장실을 다녀오고 깜빡 다시 잠들었다가도 화들짝 눈을 뜨고 일어난다. 요즘은 네 시 반 알람도 소용이 없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이 마음을 소중히 다룬다. 농부는 늘 밭을 건사하고 개간한다. 가시덩굴이 나면 가차 없이 뽑아내고 솎아낸다. 아니면 아무리 비옥한 땅이라 해도 곡식이 자라지 못한다. 땅을 고르고 돌을 헤친다. 길 가를 갈아엎고 땅을 부드럽게 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렇게 농작물은 농부의 부지런한 발소리를 들으며 자란다. 가시는 염려다. 재리(財利)이고 향락(享樂)이다.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눅 8:14).” 향락은 일락(一樂)으로 늘어져 평안히 즐기려고 하는 쾌락을 누리는 것이다. 재리는 재물에 대한 이익을 이르는 말로 요즘 같이 눈 뜨면 주식 장세부터 살피고 어디 아파트 시세를 알아보는 따위의 기울어진 마음이다. 밭에 어찌 가시떨기가 자랄까? 그대로 내버려두기 때문이다. 정신 나간 농부가 아닌 이상 그것을 그냥 모른 체하지 않는다.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딤전 5:6).”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말씀을 가까이 하지 못하고 자신의 마음에 염려와 재리와 향락이 싹 트고 자라는 것을 보고만 있다면 이는 어디가 잘못돼도 한참을 잘못된 경우다. 허용하기 때문에 염려가 는다. 가시떨기가 자란다. 일락이 내 몸을 지배한다. 무기력증을 앓는 사람을 종종 마주하게 되는데 저들의 특징은 아무리 뭐라 해도 듣지 않는다. 자신들도 자신들의 문제를 안다. 알면서도 그러한 자신을 허용한다. 내버려두는 것이다. 어제도 차 한 잔을 하며 주인의 이런저런 염려와 어려움을 듣는데 마치 우리 마음의 가시떨기 밭을 연상하게 되었다. 적잖은 돈을 대출받아 쏟아 부은 것인데 잠이 안 오는 것이야 당연하겠지. 덕분에 요 며칠은 아침마다 주인과 차 한 잔을 하며 저의 말을 듣게 된다. 그러면서 나는 감사한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 6:17-18).”

 

이는 단순히 유유자적하는 삶을 사는 게 아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딤전 6:12).” 누구는 자신의 바쁜 사회생활을 들이대면서 한가하게 성경을 읽고 말씀을 묵상할 시간이 어디 있나? 하고 반문한다. 그러는 나를 ‘팔자 좋은 사람’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쉬는 날이면 늘어지게 자거나 평소 못하던 골프나 등산을 간다. 어울려 술 한 잔 하는 즐거움을 놓칠 수 없다. 그래서 성경은 일러 우리의 씨름이 결코 혈과 육의 문제가 아닌 것을 강조하신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이를 알면 알수록 무엇이 더 중한지를 바로 붙들게 된다. 행여 한 눈을 팔면 금세 또 가시덩굴은 자라고, 박힌 돌은 곡식의 뿌리를 방해하여 싹을 틔워도 말라죽게 한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사탄의 표적이 된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 11:14-15).”

 

투자한 돈이 있고 공들여 이루려는 사업에 마음이 가고 몸이 따르는 것처럼 우리의 관여와 관심은 우리로 마음을 기울이게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시험을 당하나,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 1:2).” 주님은 우리를 일깨우시며 말씀하신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우리가 환난을 당하는 것은 비로소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증거다. 그래서 우리의 감사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함으로 죄에서 해방되어 의를 이루는 것을 알린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 6:17-18).” 이는 나의 의지로 이룬 게 아니다.

 

주의 오른쪽에 있는 자 곧

주를 위하여 힘 있게 하신 인자에게

주의 손을 얹으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에게서 물러가지 아니하오리니

우리를 소생하게 하소서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시 80:17-18)

 

주의 손이 나를 붙드신다. 이렇듯 아침마다 나로 하여금 주 앞에 앉게 하시고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이 시간을 나는 귀하게 여길 줄 알게 되었다! 하여 다른 무엇과도 바꾸기 싫어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요일 3:9).” 그러므로 내가 죄 없다 하는 소리가 아니라, 농부의 눈에 가시나 잡초가 보이면 가만 있지 못하고 호미를 들고 가거나 수시로 쟁기질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 그 때문이다. 어제 하루를 돌아보며 있었던 일이나 읽고 생각했던 일이나 누구에 관한 일이나 나의 어떤 사정을 놓고 주 앞에 따로 앉는 이 시간, 그리할 수 있게 하시는 이의 은총이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나는 아주 단순한 사람이라, 낚시를 가도 하루 얼마 정해진 시간을 돈으로 지불하던 때처럼 교회에 나가 앉아 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시간도 영적으로 환산한다. 무엇이 좋으면 몇 날 몇 시간이라도 우선하여 먼저 하려는 것처럼 아침 일찍 서둘러 교회로 나가는 것이다. 묵상글을 다시 읽으며 더듬고, 말씀을 펴고 누구의 설교나 어떤 이의 성경 강해를 찾아가며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는 일도… 자려고 누우면 어디 부족한 데가 생각나요. 손 봐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닌 거예요. 얼른 여기가 정리가 돼야, 지금 다른 일도 벌여놓은 게 많은데, 하던 사장의 말에 답이 있었다. 하물며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 1:12).” 마치 경기를 앞두고 몸을 단련하는 운동선수처럼 또는 비가 오는 날에도 밭에 나가 고랑을 다지고 물꼬를 트는 농부의 심정처럼 믿음으로 산다는 일도 다르지 않다. 저들도 바라는 게 있듯이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선포하시되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네 구원이 이르렀느니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 하셨느니라(사 62:11).”

 

나는 오늘 말씀도 그리 받는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무엇을 위한 것인가? 더 나은 영생을 얻기까지 우리가 이루어가는 구원의 값어치는 그 어떤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의 것이다. 고작 이 땅에서의 수익을 놓고 재리의 유혹과 일락을 즐기는 것에도 그처럼 정신이 팔려 사는 것인데…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시 80:3).” 그렇게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8).” 그러므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켜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우리에게 비추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1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