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전봉석 2021. 9. 16. 04:59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20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3

 

 

어쩌면 우리는… 이 땅을 사는 동안 온전한 정신으로는 살기가 어렵다. 즐거움으로 살 수 없는 것은 마땅하다. 이는 거룩의 문제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시 121:1).” 여기저기 둘러보며 도움을 구하지만 “작은 산들과 큰 산 위에서 떠드는 것은 참으로 헛된 일이라(렘 3:23).” 이는 결국 거룩의 문제다. 주께서 회복하셔야 할 일이다.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욜 2:25).” 다들 하나 같이 그 영혼의 어려움으로 심령이 상한 자들뿐이다. 누가 정신과를 다니고, 언제부터 무슨 일을 겪었고… 하는 사연을 듣다보면, 순간 가슴이 답답해져온다. 분명히 성경은,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시 121:6).

 

하고 약속하고 계신다. 그뿐인가? 나의 출입을 여호와가 지키신다고 하셨는데,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7-8).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어찌 어려움으로 뒹구는지. 그 이유는 간단하여서 여전히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면서,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1).”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다들 별 수 있겠나? 온전한 정신으로는 살 수 없으니 누구는 우울증을 만성질환으로 안고 살고, 누구는 공황을 호소하며 숨쉬기를 어려워한다. 무엇이 우리로 이처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일까?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3, 5-6).

 

이른 새벽, 턱을 괴고 앉아 말씀을 되뇐다. 문제는 하나다.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그 길을’ 하찮은 듯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한 별 수 없는 노릇이다.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이와 같은 말씀이 우리의 팔을 이끄시기를.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사 35:8-10).”

 

우리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곁의 사람들이 골병을 않는다. 누구 이야기를 전해 듣다가 ‘네게 맡기신 영혼이야!’ 하고 단정 지어 말하는 까닭은, 그의 곁에 있으면서도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으니.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마 10:27).” 하신 데 따른 결과 중 하나이다. 우린 어두운 데서 듣고 밝은 데서 말하는 자들이다. 우린 귓속말로 듣고 큰소리로 전파해야 하는 사람이다. 한데 저들과 다를 바 없이, 오히려 더 세상으로 쩔쩔매며 사는 꼴을 하고 있으니, 누가 누구에게 했다는 말처럼 ‘교회 다니는 네가 하나도 안 행복해 보여!’ 하는 말속에 뼈가 있다.

 

그러자 누가 묻기를 그럼 교회 다니면 좀 나은가? 문제가 해결되고, 꼬인 게 다 풀리는가? 하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그러하기를 바라지만 우리가 바라는 그 이상의 세계의 일이라. 다만 확실한 것은 문제는 그대로인데 그것을 마주대하는 태도가 바뀌는 것은 분명하다. 꼬인 일이 그대로인데 그 일이 전에처럼 어렵지가 않다. 결국 우리의 어려움은 그 어려움을 떠벌이는 시간이 아니라 가만히 들어야 하는 시간이다. “그 날에 그들이 바다 물결 소리 같이 백성을 향하여 부르짖으리니 사람이 그 땅을 바라보면 흑암과 고난이 있고 빛은 구름에 가려서 어두우리라(사 5:30).”

 

오늘 내 곁에 두시는 이들의 이런저런 어려움을 듣다 나는 지레 질식할 것만 같다. ‘아픈 아이’를 오게 하여 같이 점심을 먹고, 누구의 사연을 듣고 저를 위로하고… 그러니 아침 일찍 이와 같이 말씀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는 날들이다. 내 안의 온갖 구실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마귀들뿐이라. 세상을 보고 바라면 누구라도 마귀가 된다. 눈을 돌려야 한다. 산을 향하여 눈을 들고 도움이 어디에 없나? 두리번거리고 있다간 한순간에 낚여서 순식간에 끌려간다. ‘동물의 왕국’을 연상하면 된다. 영락없다. 감히 말하지만 모든 사연을 종합해볼 때 이 모든 일이 순식간이라. “보라 불을 피우고 횃불을 둘러 띤 자여 너희가 다 너희의 불꽃 가운데로 걸어가며 너희가 피운 횃불 가운데로 걸어갈지어다 너희가 내 손에서 얻을 것이 이것이라 너희가 고통이 있는 곳에 누우리라(사 50:11).”

 

솔직히 대놓고 면전에서 그리 말할 수는 없지만, 다들 남 탓 할 거 없다. 부모가 어쩌고, 어린 시절이 어떻고, 하는 소리는 하나마나 한 소리다. 그러니 모두가 그럴까? 상처 없이 자란 사람이 어디 있으며, 사느라 진이 다 빠지지 않는 사람이 또 어디 있겠나? 다들 똑같다. 그러니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냐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10).” 답은 하나뿐이다. 싫으면 어쩔 수 없고!

 

아침마다 출근하며 이른 시간에 가끔 전화를 하는 누가 있다. 저는 이번에 새로 들어간 직장 이야기, 새로 산 중고차 이야기 등 시답잖은 말로 말문을 여는데… 나는 그야말로 웃자고 한 말을 죽자고 받아낸다. 농담이나 하자고 그 아까운 시간에 시시덕거릴 게 아니다. 몇 번을 받고 몇 번은 무시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사는 데 온통 관심이 그러하니 저는 괜찮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 영혼이 문제라. 며칠 전 벽에 긁은 자동차의 흔적이 속상한 게 아니라, 그 영혼이 곪아 있는 게 문제다. 이를 말하면 열에 아홉은 싫어한다. 그러니 어쩌겠나?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하면서 다음에 계속 이어지는 진행형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8-10).” 이와 같은 말씀을 가지고 어찌 아니 진지할 수가 있겠나? 보면 이를 건성으로 들으려고 하는데, 지금은 이래저래 하는 일이 아무 탈이 없는 것 같은데 영락없다. 곧 어둠이 오고, 저에게는 예비 된 빛이 없으니 별 수 있겠나?

 

흑암 중에 보화가 있다.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사 45:3).” 누가 겪고 있는 어떤 어려움에 대하여 나는 감히 단정 지어 말할 수 있다. 주님이 좀 보자 신다! 루이스의 표현처럼 어려움은 곧 ‘여호와의 확성기’다. 다급히 부르시는 소리다. 주는 나의 귀를 핥으신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마 10:27).”

 

이에 오늘 말씀은 새삼스럽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반드시, 조만간 이루어질 일에 대하여 한사코 외면하며 사는 까닭은… 이게 그러니까 우리 모두의 공통된 문제인 것 같다. 끝까지 외면한다. 설마, 하며 마치 자신은 아닌 것처럼 행세한다. 그러다 곧 어둠이 오리니, 자신들이 조롱하던 세상에 놓일 것이다. “그들은 밤으로 낮을 삼고 빛 앞에서 어둠이 가깝다 하는구나(욥 17:12).” 누구는 웃자고 하는 말을 나는 죽자고 말할 수밖에 없다. 빛 앞에서 어둠이 가깝다는 소리가 가당키나 하겠나? 그러니 고개를 돌려 외면한들? 모르겠다! 어쩌다 내 곁에 두시는 이들만 그렇고, 나만 그런 건지. 다들 멀쩡한데 나만 고루한 것인지. 나는 가만히 오늘 말씀을 읊조린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3).

 

나는 이 구절의 말씀이 참 든든하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엄연히 날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의 가장 큰 착각은 우리를 위해, 우리 죄를 위해, 인류를 위해 하는 따위의 착각이다. 성경은 그리 관대함을 포장하고 있지 않다.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출 20:24).” 주는 곧 ‘자기 이름을 위하여’ 행하신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시 91:14).

 

명심해야 할 것은, “그의 자손은 내 손이 그 가운데에서 행한 것을 볼 때에 내 이름을 거룩하다 하며 야곱의 거룩한 이를 거룩하다 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며 마음이 혼미하던 자들도 총명하게 되며 원망하던 자들도 교훈을 받으리라 하셨느니라(사 29:23-24).” 주를 경외함이란 그 이름을 바로 하는 것이다. 마치 저는 나를 돕기 위해 존재하시는 이로, 마땅히 누려야 할 권세를 어디서 받았는지, 어쩜 그렇게들 당당한지! 하나님에게 무슨 의무가 있으며 어떤 과제가 남은 것처럼 자신의 요구를 떠벌여댄다. 이에 오늘 본문은 성경의 맨 마지막 장으로 한 획을 긋는다.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계 22:3-4).

 

오늘 우리의 결말은 정해진 곳을 향한다. 우리에게 영생이란 그의 이름을 아는 일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안다는 것은 그리 행한다는 것이고 그리 행하는 것은 그 결국을 앞당기는 일이다. 그때에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계 22:5).” 이에 오늘의 너와 내가 곁을 나란히 한다.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6).” 서로에게 우리는 그러한가? 모두가 생지옥에 사는 듯하다.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시 139:12).

 

그러므로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계 22:7).” 말씀 앞에 가만히 앉는다. 그리고 되뇐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12).” 이 일은 먼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13).

 

그러므로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14).” 나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 주께서 다 쓰신 이야기에 같이 참여해야 한다. 한데 저들과 다를 게 없이 엉뚱한 곳을 핥아대고 있으니,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15).” 더는 돌이킬 수 없는 그때가 되어서야 알 일인가?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16).

 

나는 누구 이야기로 힘들어하다 저를 통해 내가 할 일을 바로 잡게 된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 3:17).” 이것이 저의 이름을 위하여, 그 영광을 무엇으로도 빼앗기지 않으시려는 하나님의 의지다. 그리하여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 22:17).” 듣지 않으면 소용이 없고, 목마름을 알지 못하면 헛것이고, 별로 원하지 않는 데야 별 수 없는 노릇이다.

 

누가 또 누구의 이런저런 사연을 말할 때, 네게 맡기신 한 영혼이라 생각하라고 한 것은 실제 저의 딱한 사정 때문이 아니라, 그를 위하고 바라며 주의 이름을 부를 때 비로소 소생하게 되는 자신의 영혼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나는 이를 자주 경험한다. 어제도 언급했던 것처럼 언제부턴가 우리의 만남은 성령의 주도하에 있다. 전에는 기호나 취향, 성향이나 오랜 친분으로 신뢰하는 사이였다면 이제는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왜 나한테 저런 사람만 보내시는가, 하고 투덜거리다가도 저로 인하여 내가 부르는 이름을 생각한다. 오늘 본문은 이를 상기시킨다.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8-19).”

 

내겐 이제 말씀으로 뿐이다. 새삼 누구를 친구로 두고 회포를 풀며 어디 산 좋고 물 좋은 델 유랑하며 남은 생을 사는 게 꿈이 아니다. 속히 이루어질 일,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0).” 고로 나는 무엇을 바라는가?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21).” 하고 성경 한 권을 다시 한 번 마쳤다. 구약은 총 929장, 23145절. 신약은 모두 260장, 7957절. 도합 1189장으로 31102절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루에 한 장씩 묵상글을 쓴 셈이니 다시 또 3년 94일이 지난 셈이다. 그렇게 몇 번을 더하고 더하면, 언제쯤 내 속은 평안하여질까? 의연한 믿음으로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가질 수 있을까? 이런 유치한 생각까지 해보면서…. 그럼에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1-2).

 

오늘 아침 시편의 말씀이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그리하여,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3-4).

 

이를 살면서 사랑하면서 배우고 또 익숙해져 가고 있는 일이겠거으니, 곧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5).

 

머지않은 장래의 일이었다. 이와 같은 소망으로, 오늘의 나를 산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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