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전봉석 2021. 10. 5. 05:27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창 19:16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시 42:5, 8

 

 

다들, 아프다. 아프고 힘들고 고단한 거다. 몸도 마음도, 그 영혼이 상함으로 곤고함으로 눌린 거다.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벧후 2:8).” 어제도 묵상하였던 인물 롯이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의 모습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성경은 저를 의인이라 하시니,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7).” 오늘 본문으로 미뤄보면 대체 저는 어떻게 살았는지, 어쩜 저런 인물인지, 그게 어느 정도인지 알 것 같다. 아니, 그게 나 자신인 것을 일깨우시는 것 같다. 그럼에도 주의 자비하심이라니!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창 19:16).” 구원은 주의 것이나 그에 따른 곤고함이 우리로 어지럽힌다. 다시 돌아보면 모두는 아프다. 아픈 거다. 상한 심령이라. 오죽하니 나는 누구에게 말하자면 내 곁에 가장 준수한 사람은 ‘아픈 아이’라 알고 있는 저만 온전하였다. 다들 이래저래 자신들이 아는, 자신들의 판단으로, 영혼이 빠져버린 몸은 자아만이 남아 그릇됨에 판단력마저 흐리다. 이를 자신만 모른다. 누가 일러주면 졸지에 감정이 상한다. 원수가 되기 십상이다. 그러니 요즘은 애나 어른이나 구슬리고 눈감고 그러려니, 이를 마치 존중인듯 내버려둬야 그나마 서로의 사이가 유지된다. 싫은 소리가 그동안 쌓은 신의나 신뢰는 똥이 된다.

 

우리의 영혼은 이처럼 곤고함으로 지쳤다.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그 구실을 상실한 채 육신만 어슬렁거리듯 간신히 생명을 유지한 채 믿는 자로 여기며 살아갈 뿐이다. 안 믿는 자에 대하여는 그렇다치고, 믿는 자로 살면서도 심지어 주의 특별한 부르심을 입은 자로 스스로의 학습된 무기력은 판단력을 흐리고 성경을 실 생활에 가져오지 못한다. 남들 앞에 설교하고, 좋아라 하는 사람들- 교회 안에서나 거룩과 경건의 모양을 띄지 일상에서는 기운을 발휘하지 못하고, 누구에게 아무런 영향력도 끼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 시인의 기도를 가만히 다시 읊조리며 묵상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시 42:5, 8).

 

결국 우리 영혼의 문제다. 삶이란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저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영혼이 빠진 자아로 사는 롯과 같은 자들은 들개처럼 황량한 생활을 떠돌뿐이다. 오늘 천사들이 그리 외치는데,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 곳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창 19:12-13).” 한데 저는 어찌 살았는가,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14).” 그저 농담으로나 흘려 듣는 말의 힘으로 살았다. 한심한 노릇은 계속 이어져 기어이 저의 아내는 미련이 남아 뒤를 돌아보다 소금이 되고,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26).” 그는 두 딸과 간신히 피하였으나 고작 한다는 짓이 스스로 살 궁리로 롯을 잠들게 한 후 두 딸들이 돌아가며 동침하는 것이었으니, 저들 후손이 되는 모압과 암몬은 두고두고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족속이 된다.

 

답답하고 한심한 일이지만 이것이 오늘의 우리 모습이었다. 우리 영혼이 낙심하고 불안해하는 이유가 이것이었다. 우리를 괴롭히는 원수는 우리 스스로의 소산이고 그 결실로 얻은 결과였다. 더는 어찌 풀 수 없는 이 난제를, 어제 아침 평소대로 다음 주일 설교원고 초안을 잡다가 깨달았다.

 

하나님이 일어나시니

원수들은 흩어지며

주를 미워하는 자들은

주 앞에서 도망하리이다

(시 68:1).

 

우리 삶을 돌보시고 바로 세우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 우리의 사리분별은 어두워졌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는 감정밖에 앞서는 게 없게 되었으니,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눅 21:36).” 먼저 우리의 기회는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는 것이다.’ 세상이 너무 요란하다. 전염병은 창궐하고 사람들의 자기 잇속은 흑암처럼 어둡다. 그러므로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 12:12-13).” 곧 우리 스스로 영적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안이하게 굴 때가 아니다. 전혀 불가능할 것 같은 상황에서도 주가 이를 다 수습하신다.

 

연기가 불려 가듯이 그들을 몰아내소서

불 앞에서 밀이 녹음 같이

악인이 하나님 앞에서 망하게 하소서

(시 68:2).

 

내 안에 견고하게 자리 잡은 듯 악한 권세로 옴짝달싹 못하는 것 같은 처지에도 녹아내리는 초와 같이 주를 의뢰함이 아니면 덩달아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곧 여리고에 살았던 라합의 진술이 그 증거다.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수 2:11).” 실제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고 담대하다. 주를 바람은 그저 허풍이나 공갈로 부풀린 배짱이 아니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시 2:9).” 주가 행하시는 일에 섣불리 불안과 의심의 눈초리로 흐려져 분별하지 못할 때 그 가는 길은 난감할 따름이다. 그러나 확실하건대, “악인들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들은 어린 양의 기름 같이 타서 연기가 되어 없어지리로다(37:20).”

 

성경의 증거는 이와 같이 일관되다. 고로,

 

의인은 기뻐하여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기뻐하고 즐거워할지어다

(시 68:3).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날마다 전쟁인 중에 주로 인하여 즐거워 뛰놀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일이라니!

 

하나님께 노래하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하늘을 타고 광야에 행하시던

이를 위하여 대로를 수축하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이시니

그의 앞에서 뛰놀지어다

(시 68:4).

 

그럴 수 있는 힘이 있었다.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노래하고 찬송하는 것이다. 하늘을 타고 광야를 대로로 수축하신 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곧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우리 편이시고 우리의 후원자시며 우리의 뒷배가 되신다.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하나님이 고독한 자들은 가족과 함께 살게 하시며

갇힌 자들은 이끌어 내사 형통하게 하시느니라

오직 거역하는 자들의 거처는 메마른 땅이로다

(시 68:5-6).

 

그러니 우리 영혼이 어찌 황폐한가 하면 이를 우선하지 못하고 거역하는 데 이유가 있었다. 알 만한 사람이 어쩌자고 늘 당장의 일에 끌려 다니며 맥을 못 추는 것일까? 성경은 그런 우리에게 확신을 더하신다. “네 고아들을 버려도 내가 그들을 살리리라 네 과부들은 나를 의지할 것이니라(렘 49:11).” 나는 외면하고 실수하고 잘못을 저지른다 해도 주께서 이를 수습하실 것이다. 그리고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말 3:5).” 하나님 외에 다른 것으로 즐거워하고 의지하고 기력을 찾았던 것을 없이하실 것이다. 이는 우리 조상이나 곁의 존경할만한 사람에게서 답습하여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8-19).”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바로 이것만이 우리로 살리신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이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7).”

 

나는 이처럼 말씀을 준비하느라 연관된 성구를 찾아가며 말씀의 증거를 확인하고 확신하는 일이 즐겁다. 새 힘을 얻고 뒤돌아서기 무섭게 지겨운 삶의 일상은 턱을 죄며 달려드는 것 같다. 아무리 그러하다 해도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는 그날까지 이 땅의 모든 잔 괴로움은 일었다 스러지는 파도일 뿐이다. 그러할 때,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사

광야에서 행진하셨을 때에 (셀라)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하나님 앞에서 떨어지며

저 시내 산도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진동하였나이다

(시 68:7-8).

 

그 어떤 것도 우리의 구속자 전능하신 하나님의 상대가 될 수는 없다. “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이신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사 48:17).” 저가 우리를 마땅히 인도하시고 가르치신다.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하고 아모리 사람의 땅을 너희가 차지하게 하였고 또 너희 아들 중에서 선지자를, 너희 청년 중에서 나실인을 일으켰나니 이스라엘 자손들아 과연 그렇지 아니하냐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암 2:10-11).” 이를 잊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그때마다 흡족한 은총으로 더하시니,

 

하나님이여 주께서 흡족한 비를 보내사

주의 기업이 곤핍할 때에

주께서 그것을 견고하게 하셨고

주의 회중을 그 가운데에 살게 하셨나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가난한 자를 위하여

주의 은택을 준비하셨나이다

(시 68:9-10).

 

나는 이를 교회로 안다. 내가 사는 가정으로 누린다. 하는 것도 없고 능력도 모자라, 누가 보기에는 비루하기 짝이 없고 한심하기 그지없으나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하소서(시 28:9).” 이를 아뢰고 이를 이루시는 삶의 현장을 딛고 산다는 일은 매우 귀한 일이다.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사 19:25).” 이 모든 것이 주의 것임을, 주가 다스리시고 주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을, 그러므로 “여호와여 어찌하여 우리로 주의 길에서 떠나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사 주를 경외하지 않게 하시나이까 원하건대 주의 종들 곧 주의 기업인 지파들을 위하사 돌아오시옵소서(63:17).” 오직 주께 아뢸 뿐이다.

 

늘 투덜거리고 시무룩하고 자주 넘어지듯 의기소침하여 주를 향하는 마음이 흔들리고는 하지만 “내가 기름으로 제사장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며 내 복으로 내 백성을 만족하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14).” 말씀으로가 답이다. 같잖은 누구 말에, 어떤 이의 삶에 기대할 게 없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리니 너희가 이로 말미암아 흡족하리라 내가 다시는 너희가 나라들 가운데에서 욕을 당하지 않게 할 것이며 내가 북쪽 군대를 너희에게서 멀리 떠나게 하여 메마르고 적막한 땅으로 쫓아내리니 그 앞의 부대는 동해로, 그 뒤의 부대는 서해로 들어갈 것이라 상한 냄새가 일어나고 악취가 오르리니 이는 큰 일을 행하였음이니라 하시리라(욜 2:19-20).” 이와 같은 말씀을 앞서 준비하면서 묵상하고, 분해하고, 그 속에서 가만히 있을 수 있는 특권으로 목사가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새삼 들었다.

 

어떠하든지, 말씀은 성취었다.

 

주께서 말씀을 주시니

소식을 공포하는 여자들은 큰 무리라

여러 군대의 왕들이 도망하고 도망하니

집에 있던 여자들도 탈취물을 나누도다

(시 68:11-12).

 

하찮고 보잘것없는 존재들이 나중에는 승리의 개선가를 듣고 전리품을 나누며 그 기쁨을 주체하지 못할 것이다. 고로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사 55:11).” 이는 내가 남들보다 나은 게 있고 조금은 더 영성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온전히 주의 은택으로다. 곧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렘 33:14).” 이와 같은 말씀이 내 것으로 다가오고 소유하고 누리며 살 수 있기를, 그러할 수 있다면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롬 4:21-22).” 우리의 믿음은 이것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은 것이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입히신다.

 

너희가 양 우리에 누울 때에는

그 날개를 은으로 입히고

그 깃을 황금으로 입힌 비둘기 같도다

(시 68:13).

 

나의 이 하찮고 보잘것없는 실체는 바뀌어,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눅 1:52-53).” 주의 사역 앞에서는 모든 게 다 역전이다. 반전이고 승리뿐이다. 곧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7-18).”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게 그것이 아주 우리를 찍어 누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7:6-7).” 이 얼마나 복되고 감사하며 엄청난 은혜와 은총과 자비하심인가?

 

곧 우리를 괴롭히는 모든 원수는 바람에 날리는 눈 같이 흩어지고 사라질 것이다.

 

전능하신 이가 왕들을

그 중에서 흩으실 때에는

살몬에 눈이 날림 같도다

(시 68:14).

 

당장은 저들이 나로 누르고 이겨 승리한 것처럼 보이나,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 우리는 그것으로 주게 복종하는 힘을 얻는다. 그리하여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시 1:4).” 아니 이처럼 분명한 증거가 문서화 되어 우리에게 말씀으로 주어졌건만, 그리하여 나는 당당히 주께 외치고 간구하는 것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그들이 굴러가는 검불 같게 하시며 바람에 날리는 지푸라기 같게 하소서(83:13).” 비록 “열방이 충돌하기를 많은 물이 몰려옴과 같이 하나 주께서 그들을 꾸짖으시리니 그들이 멀리 도망함이 산에서 겨가 바람 앞에 흩어짐 같겠고 폭풍 앞에 떠도는 티끌 같을 것이라(사 17:13).” 이는 엄연한 사실이고 장차 있을, 오늘도 일어나고 있는 마땅한 현상이다.

 

이를 위하여 오늘도 하나님은 먼저 교회를 통하여 임재하신다. 주의 영이 이곳을 다스리시고 운행하신다.

 

바산의 산은 하나님의 산임이여

바산의 산은 높은 산이로다

너희 높은 산들아 어찌하여

하나님이 계시려 하는 산을 시기하여 보느냐

진실로 여호와께서 이 산에 영원히 계시리로다

하나님의 병거는 천천이요 만만이라

주께서 그 중에 계심이

시내 산 성소에 계심 같도다

(시 68:15-17).

 

교회 일로 이래저래 신경이 쓰인다. 마음이 어렵고 어찌할까? 혼자 쩔쩔매기도 한다. 그럴 때 놀라운 사실, 감사하게 되는 것은 나의 무능력이다. 내 수중에 그만한 돈이 없고 능력도 안 된다는 게 복이었다. 우습지? 만일 내가 내 스스로 그리 실행할 수 있었다면 이리저리 궁리하다 내 임의로 주의 성소를 옮기려 하였을 것이다. 주의 교회를 사적으로 다루며 돈으로 해결하여 남부럽지 않은 듯 그 뜻을 행사하려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놀라운 역설은 감사를 낳았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내가 이기고 이겨야 하는 세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곧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주가 하셨고, 하시고, 하실 일이어서 이를 두고 씨름하는 일이란 공연한 일 같으나 그것으로 또 주의 이름을 의뢰하게 하신다.

 

곧 나는, 우리는, 교회는 엄연한 하나님의 소유이었다.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들을 취하시고

선물들을 사람들에게서 받으시며

반역자들로부터도 받으시니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로다

(시 68:18).

 

이 놀라운 사실 앞에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4:8-10).” 나의 어리석음은 나로 주를 더욱 알게 한다. 나의 비천하고 비루함이 주로 더욱 주가 되심을 깨닫게 한다. 하여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벧후 2:22).” 이를 혐오하고 더는 그러한 지경에 이르지 않으려 하는, 자각하는 마음이 주의 귀한 은총이었으니,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 6:1).” 곧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이 얼마나 놀랍고 귀한 하나님의 실천이신가?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그러므로 우쭐할 것도 기죽을 것도 없다. 도리어 지고 있는 모든 짐을 주께 더 내려놓는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셀라)

(시 68:19).

 

보면 나 역시 다를 게 없으나, 다들 참 아프다. 아픈 영혼의 소유자들이다. 내 곁의 사람들만 그러한가? 내 눈에 띄고 마음에 두어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시는 이는 그래도 가망이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이와 같은 말씀을 누리고 같이 나누었으면 하고, 누구를 생각하며 주께 아뢰게 하심으로 말이다. 고로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 55:22).” 아, 이 놀라운 말씀으로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그럼에도 누차 그리 알려주고 같이 하자 권하여도, 요지부동 전혀 움직일 수 없는 마비된 영혼의 소유자들도 있었으니, 여기서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뉘는 것 같다. 하나는 하나님께 피하는 자 하나는 이내 망하는 자.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하나님이시라

사망에서 벗어남은 주 여호와로 말미암거니와

그의 원수들의 머리 곧 죄를 짓고 다니는 자의 정수리는

하나님이 쳐서 깨뜨리시리로다

(시 68:20-21).

 

결국은 엄연한데 설마, 혹시나, 하는 학습된 무기력으로 마치 롯과 같이 더는 그의 영혼이 맥도 못 추며 시달림을 당하고 사는 꼴이었으니, “내가 피할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그에게 피할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삼하 22:3).” 이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는 자가 복이었다.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시 5:11).” 이는 결코 우리의 막연한 바람이 허황된 꿈이 아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그것이 너희에게 죄악의 걸림돌이 되지 아니하리라(겔 18:30).”

 

그러므로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행 17:30-31).” 하여 오늘을 살며 우리는 우리의 죄과로부터 자유롭다.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자가 우리들로서, 주를 신뢰함으로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들을 바산에서 돌아오게 하며

바다 깊은 곳에서 도로 나오게 하고

네가 그들을 심히 치고

그들의 피에 네 발을 잠그게 하며

네 집의 개의 혀로 네 원수들에게서

제 분깃을 얻게 하리라 하시도다

하나님이여 그들이 주께서 행차하심을 보았으니

곧 나의 하나님, 나의 왕이 성소로 행차하시는 것이라

(시 68:22-24).

 

우리가 오늘을 살며 눈으로 본다. 귀로 듣는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의 피폐하고 곤고한 영혼의 문제를, 그러므로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며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나를 위하여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을 주기 위하여 못들을 팠으며 남녀 노비들을 사기도 하였고 나를 위하여 집에서 종들을 낳기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도 내가 소와 양 떼의 소유를 더 많이 가졌으며 은 금과 왕들이 소유한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나를 위하여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들을 많이 두었노라(전 12:4-8).” 하고 자랑스러워하던 솔로몬의 인생 말로는 어떠하였나?

 

정신 차려야 한다.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벧후 2:9-11).” 곧 오늘 우리에게 두시는 어려움, 환난과 고난은 주의 사랑을 확신하고 확인하는 시험이다. 이를 온전히 통과해야 한다. “사무엘이 그것을 그에게 자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 그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하니라(삼상 3:18).” 그리하여 일관되는 성경의 증거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사 1:20).”

 

곧 우리 행실의 근원은 하나님이셨다.

 

소고 치는 처녀들 중에서

노래 부르는 자들은 앞서고

악기를 연주하는 자들은 뒤따르나이다

이스라엘의 근원에서 나온 너희여

대회 중에 하나님 곧 주를 송축할지어다

거기에는 그들을 주관하는

작은 베냐민과 유다의 고관과

그들의 무리와 스불론의 고관과

납달리의 고관이 있도다

(시 68:25-27).

 

결국을 아는 삶은 너그러울 수 있다. 조금은 여유로울 수 있다. 오늘 견디기 어려운 일 같으나 이 일도 곧 지나가는 것으로 끝날 것을 알고,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 1:3).” 하시는 말씀으로 이미 주를 바람이다. 하면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눅 6:44).” 우리의 오늘은 어떠한가, 점검해야 한다. 기어이 감사를 못하면 감사는 오지 않는다.

 

네 하나님이 너의 힘을 명령하셨도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것을 견고하게 하소서

(시 68:28).

 

나는 이처럼 설교원고로 한 주를 열고 여러 마음의 이런저런 억눌림을 회복하였다. “이러므로 여호와여 내가 모든 민족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여호와께서 그의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하도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하였더라(삼하 22:50-51).” 이처럼 쏟아져나오는 말씀의 능력으로 산다. 곧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여 만국 가운데에서 건져내시고 모으사 우리로 주의 거룩한 이름을 감사하며 주의 영광을 드높이게 하소서 할지어다(대상 16:35).”

 

이에 오늘의 시편을 읊조리며, 여기까지 우선 정리하였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 42:5).

 

이에 곧,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8).

 

그러함으로,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1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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