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전봉석 2021. 12. 25. 05:07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레 10:1-2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시 121:5-6

 

 

언제부턴가 성탄절이 상술적인 이벤트데이가 되었다. 가끔씩 나는 그 날을 감추신 이유를 생각한다. 상징성을 띠면 성스러움이 더해지고 숭배의 대상이 된다. 물건은 물론 시공간이 모두 그러하다. 문득 오늘 말씀의 첫 부분의 내용이 암시하는 바가 크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다.” 아무리 선한 의도였다고 하나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었다.” 그 순간 저들의 분위기는 어땠을까? 아론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 내가 거룩하다함을 얻겠고 온 백성 앞에 내가 영광을 얻으리라 하셨느니라 아론이 잠잠하니(3).” 오직 거룩이다. 거룩 이 외에 어떤 것도 하나님 앞에 용납되지 않는다. 거룩은 하나님의 허용범위 안에서다. 모세는 이 슬픔을 표내지 않게 금하였다. “모세가 아론과 그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이르되 너희는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아서 너희 죽음을 면하고 여호와의 진노가 온 회중에게 미침을 면케 하라 오직 너희 형제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의 치신 불로 인하여 슬퍼할 것이니라(6).” 슬픔 속에 신세한탄과 억울함이 밴다. 하나님의 성실하심은 훼손된다. 이를 알고 모세는 저들의 슬픔을 금하였다.

 

하나님의 일이란 거룩이다. 어떤 슬픔은 감정적으로 접근할 게 아니다.

 

내가 주 여호와의

능하신 행적을 가지고 오겠사오며

주의 의 곧 주의 의만

진술하겠나이다

(시 71:16).

 

주의 일을 감당한다는 것은 이처럼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좀 더 효율적이고 창의적인 것으로, 아무리 그 의미가 선하였다 해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하고 불충한 것은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를 대하는 일에 있어 더는 다가가지 말아야 하는 선이 있다. 마음이 어떠하든지, 상황이 어떠하든지 또한 그 선 밖으로 임의로 물러서서도 안 된다. “내가 주 여호와의 능하신 행적을 가지고” 한다. 주가 주시는 마음으로, 때론 그것이 납득이 안 되고 이해가 안 된다 해도 “주의 의 곧 주의 의만 진술하겠나이다.” 하는 시인의 결의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이를 담을까? 가만히 주의 이름을 부르며 저를 두고 기도한다. 거기에는 못할 말도 가릴 말도 없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로는 무엇이든 허용이 된다. 사람으로 사람에게 어찌 이르고 다스린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이를 하나도 흘리지 않고 나를 수종 드는 천사는 이를 금향로에 담는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로 옮겨간다.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계 8:3-4).

 

가만히 잠잠한 것은 주께 향한 마음으로다. 밤에 누구의 문자가 잔뜩 들어와 있었다. 일찍 잠든 나는 새벽에 일어나 앉아 그것을 본다. 그리고 길게 한숨을 쉰다. 저들의 상황을 머리에 그려본다. 안타까움으로 주의 이름을 가까이 한다. 누구를 생각함은 곧 기도가 되어 주의 영이 함께 하시기를 구한다.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사 11:5).” 곧 세상은 뒤집어질 것이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6-8).

 

우리가 주를 바라고 주의 날을 사모함은 우리 안의 어떤 슬픔, 억눌린 감정으로부터의 해방이다. 골을 부리며 화를 내고 아이에게 성을 내고 아이보다 더 아이 같은 어른으로 서 있는 저에게 주의 영이 함께 하시기를. 이로 슬픔을 이기지 못하는 이와 놀라고 두려운 아이의 심정을 주의 영이 어루만지시기를. 한껏 성탄절 기분을 내고 함께 예배드리고 케이크를 자르려고 했던 연출이 삽시간에 흩어지고 붕괴되었다. 저이가 적어 보낸 내용의 발단과 동기는 잘 모른다. 다만 그 상황, 속수무책인 가운데 봉변을 당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서 있는 두 영혼을….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9).

 

모든 이런저런 이유가 아니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그 지식이 없어서였다. 바로 알지 못할 때, 알지 못한 것보다 더 끔직한 일이 초래된다. 나는 저들의 상황을 전해들을 때면 두려움이 앞선다. 뭘 어떻게, 어디까지 듣고 이해하고 관여해야 하는지 외면해야 하는지.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하려고 하기보다 잠잠히 기다리는 게 나은 것을 생각한다. 주를 바라는 것.

 

네 옷을 그에게 입히며

네 띠를 그에게 띠워 힘 있게 하고

네 정권을 그의 손에 맡기리니

그가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집의 아비가 될 것이며

내가 또 다윗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22:21-22).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그 세계가 열린 것이다. 성탄절은 기쁘고 즐거워할, 흥청망청 덩달아 이벤트로 삼을 날이 아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가장 낮고 천한 신분으로 이 땅에 오신 날이다. 그리하여 주의 의의 옷을 내게 덧입히시고 천국 열쇠를 내 어깨에 두셨다. 열고 닫음이 내게 맡기신 일이라. 평소와 다름없이 주어진 날의 하루로 삼았다. 아이가 오기 전에 설교원고를 마무리하고 교정하여 출력하였다. 주보를 만들고 아이의 글쓰기를 봐주었다. 주일에 예배에는 참여하는지, 어머니는 어떠신지 물었다. 내가 맡아 수업을 하는데 따른 응식이다. 응식이란 직무에 따른 보수로 쌀이나 급료다. 일용할 양식인 것이다.

 

의도적으로 성탄절 분위기를 주의한다. 우리가 입은 예복은 앞서 살폈었던 제사장의 거룩한 옷이다. 흉패를 붙이고 에봇과 겉옷과 반포 속옷과 관과 띠를 두른다. “그들의 지을 옷은 이러하니 곧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반포 속옷과 관과 띠라 그들이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아론으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할지며 그들의 쓸 것은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이니라(출 28:4-5).” 말씀 앞에 턱을 괴고 앉아 그 의미를 묵상한다. 누구의 일을 생각하고 저의 가정을 위해 기도한다. 우리의 노여움이 찬송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진실로 사람의 노여움은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여움은

주께서 금하시리이다

(시 76:10).

 

저의 노, 그 속의 화를 어쩌면 좋을까?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히 13:15-16).

 

이를 성탄의 의미로 받는다. 찬송의 제사, 입술의 열매, 선을 행함, 하나님의 기쁨… 이를 축약하면 기도다. 슬픔으로든 기쁨으로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리에 주의 영이 함께 하심을 믿는다.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계 7:17).

 

지금의 슬픔은 금하심으로 기쁨이 되게 하실 것이다. 이로써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 주의 오신 날은 빛을 낸다. 그리하여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22:1-2).

 

이는 은혜의 강림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3-14).”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것으로는 곧 다시 목이 마를 것이나 주를 바라고, 주가 주시는 생수의 강으로는 다시는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나는 누구의 이야기를 글로 옮길 수 없어 그 내용은 생략하고 말씀으로만 이어가고 있다. 묵상글은 말씀으로 우리 삶을 비추어 어둠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있는 추하고 더러운 것을 들추신다. 저의 말은 그렇듯 어렵고, 그래서도 부디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으로만 새 힘을 얻기를 강조하였다. 이는 만국을 치료하는 일이다. 치료의 광선이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겔 47:8).” 저의 상한 심령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예수의 생명수뿐이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9).

 

이와 같은 만국을 치료하시는 이가 오늘도 저의 가정을 그 각자의 상한 심령을 다스리실 것을 믿는다.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계 7:17).

 

다시 읽고 또 되새기며 그 의미를 마음에 두는 것은, 내가 누구를 마주하는 일에 있어 행여 나의 섣부른 판단과 그릇된 말들이 사르는 불이 되어 우리 영혼을 훔치지나 않을까 하여… 두렵고 떨림으로다. 누가 온다고 할 때 앞서 내가 이처럼 두려운 것도, 누가 다녀가고 저의 이야기만 맴돌 때도 이처럼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주가 아니시면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우리를 건질 수 있을까? 우리 영혼의 만족은 오직 주에게서이다.

 

강물이 소용돌이칠지라도

그것이 놀라지 않고

요단 강 물이 쏟아져

그 입으로 들어가도 태연하니

그것이 눈을 뜨고 있을 때

누가 능히 잡을 수 있겠으며

갈고리로 그것의 코를

꿸 수 있겠느냐

(욥 40:23-24).

 

주의 이 질문에 누가 답을 할 수 있겠나? 우리의 어떤 노력으로 이 성탄의 기쁨을 대신할 수 있을까? 상품화 되고 이벤트화 되어 버린 이 날에 우리는 오히려 엄숙하게, 그리고 잠잠히… 주를 바람이여!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시 42:1).

 

그리하여 우리 영혼이 은혜를 받기를.

 

가련하고 가난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헐벗은 산에 강을 내며

골짜기 가운데에 샘이 나게 하며

광야가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이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

(사 41:17-18).

 

주가 이루실 것이다. 우리는 기웃거리듯 누구의 도움을 구하나,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 121:1-2).

 

이 명징한 진리 앞에서 묵묵하기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3).

 

주가 나를 지키신다. 우리를 보호하신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곧,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5-6).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7-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