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03 주일
시편 97편
환난의 목적과 심판의 의의
시 97:10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그가 그의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
시 97:11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리시는도다
시 97:12 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그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들어가는 말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신기하고 묘하여 미리 예측할 수가 없다. 참으로 신묘막측하시다. 하나님의 구속사역은 환난을 가지고 진행된다. 신앙은 환난 없이 성장할 수 없고, 성장 없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그가 그의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시 97:10).” 곧 우리가 악을 미워해야 하는데, 빈번하게 악의 손아귀에 잡히는 것을 환난이 막아준다.
이를 바울서신에서 ‘불법의 비밀’이라 하였다. 하나님은 이를 막으신다. “너희는 지금 그로 하여금 그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이 있는 것을 아나니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살후 2:6-7).” 우리로 악에서 옮겨지게 할 때까지, 곧 성도를 ‘불법한 비밀’로부터 막으시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환난을 허용하신다. 또한 악의 능력이 발휘하도록 내보려두심으로 세상 권세로 우리가 환난을 겪게 하신다.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8).” 곧 이 모두를 심판의 때에 폐하심으로 만민에게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다. 불법한 것들은 자신들의 불법을 부끄러워함으로, 의인은 하나님의 공의를 확인하며 주의 공의로우신 심판을 찬미한다.
오늘 시편에서 우리는 <환난의 목적과 심판의 의의>를 알게 될 것이다. 이는 ① ‘불법한 자’의 ‘불법한 비밀’로부터 하나님이 자녀들을 보호하며 막으시기 위해 환난을 주신다. ② 심판의 날에 불법을 멸하실 때 더는 구원함을 얻지 못하게 하심이 공의다.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9-10).”
곧 우리의 환난은 우리로 거룩한 자로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고, 저들은 바깥 어두는 곳에서 더는 하나님을 뵈올 수 없게 하신다. 그때 악한 자들이나 하나님의 자녀들이나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 앞에서 경탄한다. “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그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시 97:12).” 환난의 끝에는 우리가 누릴 영광이 예비 되어 있다.
오늘 시편은 이처럼 환난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이고, 심판의 의은 하나님의 얼굴을 뵙거나 뵙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고로 우리는 주의 안식에 들어간다.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 1:6-9).”
본문이해
하나님의 통치를 노래하는 여섯 편의 신정 시(시편 95-100편)에서 ‘주권자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경륜’을 알리고 있다. 앞서 시편 95편에서 우리는 ‘선민으로서 하나님의 통치를 찬양하는 목적’을 알았고, 시편 96편에서는 ‘모든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통치’를 촉구하는 것을 들었다. 95편은 하나님의 절대적 초월성과 공의에 초점을 맞추었고, 96편은 인생들로부터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의 공의와 공평하신 심판을 알게 되었다. 오늘은 이를 토대로, <환난의 목적>과 <심판의 의의>는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며, 만물의 영광이 되고 성도의 거룩과 안식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문 분해는 4연으로 나뉜다. 1연(1절)은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이고, 2연(2-7절)은 여호와의 통치는 의롭고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3연(8-9절)은 성도가 초월자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을 밝히고, 마지막 4연(10-12절)에서는 우리의 통치자 여호와의 사랑이 의인들을 향하여 악을 미워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를 축약하면 두 가지로,
첫째, 우리를 향한 환난의 목적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심으로 악을 미워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그와 같은 능력은 우리의 거룩성을 회복하심으로 전능자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서 영광을 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둘째, 주의 심판은 모든 만민 앞에 선하고 공평하심으로, 성도는 안식에 들어서 주를 찬미하고 악인들은 바깥 어두운데서 더는 하나님을 뵈올 수 없어서 고통 중에 주의 판단이 공정하심을 인정한다.
곧 오늘 시편은 성도인 우리들의 거룩과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심판 후의 안식을 찬미하게 한다. 이를 세 가지로 정리하면 첫째, 우리의 거룩을 위한 환난과 둘째, 하나님의 공의에 따른 심판과 셋째, 영원한 안식과 바깥 어둠의 실상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1.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환난의 목적: 우리의 거룩을 위하여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나니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지어다(97:1).”
환난은 우리의 산만한 주위를 환기시킨다. 부정적인 생각을 떨치게 한다. 악으로 향하던 발길을 돌린다. 주의 사랑을 갈망하게 한다. 진정한 하나님의 통치를 바라게 한다. 곧 이 땅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회복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살후 3:2-3).” 이것이 환난의 목적이다. 즉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그러므로 환난은 병든 영혼을 치료하는 의원 같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이를 환난으로 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 2:10).” 이를 듣고 목자들이 주 앞에 섰을 때,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시 22:5).” 저들 앞에는 구주로 오신 아기 예수께서 강보에 싸여 있었다.
우리의 신앙은 실제다. “구름과 흑암이 그를 둘렀고 의와 공평이 그의 보좌의 기초로다(97:2).” 구름과 흑암은 의와 공평을 가린다. 환난이 아무리 짙은 구름 같다 해도 그 너머에 태양되신 우리 구주가 계시다. 곧 “너희가 가까이 나아와서 산 아래에 서니 그 산에 불이 붙어 불길이 충천하고 어둠과 구름과 흑암이 덮였는데(신 4:11).” 그와 같은 하나님의 위엄은 우리를 지키신다.
2. 환난의 목적은 심판의 의의: 하나님의 공의
“불이 그의 앞에서 나와 사방의 대적들을 불사르시는도다(97:3).”
불과 바람은 항상 성경에서 성령의 역사를 의미한다. 이때 우리를 대적하는 것, 구름과 흑암 같은 환난 곧 우리의 대적을 불사르실 것이다. 이로써,
첫째, 환난은 우리로 주의 영광을 받게 한다.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살후 1:12).” 둘째, 환난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알게 한다.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6)” 셋째, 환난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우리의 안식이 된다.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7).”
다시 말해 환난은 우리의 병든 영혼을 치료한다. 환난으로 우리는 더러움을 벗고 거룩을 사모한다. 세상으로 향한 마음을 거두고 소홀히 여겼던 하나님의 사랑을 갈망한다. 우리의 세속성이 씻음 받는 것이다. 환난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를 소망한다. 하나님의 공의는 우리로 환난을 받게 한 자들을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견딘 우리로 하나님과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게 한다. 이때 가장 끔찍한 형벌이 더는 하나님을 뵈올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환난 중에 욥의 체험이었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욥 23:8-9).” 이보다 더 끔찍한 형벌은 없다. 지금은 모든 자에게 빛과 바람과 공기와 즐거움과 기쁨도 허용되는 일반은총이 가능하다. 하나 장차 심판이 있은 후에는 이 모든 자연은총은 말소된다. 바울은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왜?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신 32:4).” 성경의 일관된 증언이다. 그러므로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정의로우시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일컬음을 받으시리니, 그 때에는 어린 양들이 자기 초장에 있는 것 같이 풀을 먹을 것이요 유리하는 자들이 부자의 버려진 밭에서 먹으리라(사 5:16-17).” 이를 오늘 시인은, “그의 번개가 세계를 비추니 땅이 보고 떨었도다 산들이 여호와의 앞 곧 온 땅의 주 앞에서 밀랍 같이 녹았도다(시 97:4-5).” 곧 그날이 온다.
사도들의 한결같은 심정이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2-13).”
3.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의 의의: 영원한 안식
“하늘이 그의 의를 선포하니 모든 백성이 그의 영광을 보았도다 조각한 신상을 섬기며 허무한 것으로 자랑하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너희 신들아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시 97:6-7).”
환난을 통해 우리는 공의로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것을 확신한다. 불의한 자들은 부끄러움이 더하여 다시는 하나님을 뵈올 수 없다. 우리는 심판의 날에 주의 영광에 참여하고, 불의한 자들은 그제야 주의 안식에 들어가려 하지만 들어갈 수 없다. 이를 다니엘은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 12:2-3).” 하며 심판 때를 예언하였다.
정리하면, 오늘 시편은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한다. 그 가운데 믿는 자로 사는 우리의 환난에는 목적이 있었는데 첫째, 우리로 거룩하게 하여 주의 영광에 들어가게 한다는 것과 둘째, 우리로 악인들의 자리에 들지 않게 함으로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소망하게 한다는 것과 셋째, 심판의 의의가 결국은 우리로 주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게 하고, 불의한 자로 바깥 어두운 데서 영원한 부끄러움을 당하게 한다는 것이다. 불의한 자들의 결국이다. “너희가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말미암아 너희가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너희가 택한 동산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할 것이며, 너희는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 같을 것이요, 물 없는 동산 같으리니, 강한 자는 삼오라기 같고 그의 행위는 불티 같아서 함께 탈 것이나 끌 사람이 없으리라(사 1:29-31).”
이를 오늘 시편은 “여호와여 시온이 주의 심판을 듣고 기뻐하며 유다의 딸들이 즐거워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온 땅 위에 지존하시고 모든 신들보다 위에 계시니이다(8-9).” 곧 주의 날에 두 그룹의 사람들로 나뉠 것이다. 한 그룹은 환난을 겪으며 주를 더욱 알고, 공평하신 하나님의 심판을 소망하며 기다렸던 우리들이고, 다른 한 그룹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부인하고 부정하였던 불의한 자들이다. 저들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롬 1:21).” 결국 저들은 몰랐다는 소릴 할 수 없다. 자신들이 선택한 것으로 어두운 가운데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며 주의 공평하심 앞에서 할 말이 없다.
나오는 말
“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그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97:12).”
하나님의 심판은 엄연히 죄를 벌하기 위한 게 아니다. 저들도 주의 공평하심 앞에서 자신들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눅 13:28).” 이는 오늘을 살며 외면하고 부정하였던 저들의 선택이다. 다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그것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스스로 옳다 하는 대로 살았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로우시다. 우리는 환난을 겪으며 이를 알았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사 43:5).” 나로 그릇 행하지 못하게 하셨다는 것을 말이다. 시인은 자주 노래하기를,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시 73:23).” 이를 어찌 알았겠나? 환난 중에 나의 편이시라는 것을, 주가 나의 오른 손을 붙들고 계셨다는 것을, 그러므로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그가 그의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시 97:10).”
고로 환난은 우리로,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롬 12:9).”는 말씀을 붙들게 하였다. 하나님의 공정하신 사랑은 누구를 버림이 아니라, 모두를 구원하시고 하심인데… 저들은 이내 주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 마음에 모시기를 싫어하였으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2-23).”
별 수 없다는 말, 갈 데까지 가야 한다는 말, 우린 이를 두려워할 줄 안다. 시인은,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리시는도다(11).” 이를 바울은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이것이 우리로 환난이 믿음의 성장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장성하신 믿음의 분량에까지 자라가게 한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비로서 “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그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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