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교회의 속성
교회의 속성들은 주로 무형교회에 속한다. 그러나 로마 캐톨릭파 에서는 그것들을 유형교회에 속한 것으로 만들었다.
1) 교회의 통일성(統一性),
로마 캐톨릭에 의하면 교회의 통일성은 전 세계를 포함하는 웅대하고 거대한 조직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특히 교직정치의 중심으로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개신교의 교회통일성은 기본적으로 영적성격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한 몸의 통일체로 신자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신비로운 지체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는 공통된 신앙고백과 행위에서, 공중예배에서, 또는 외부적 조직에서, 그 자체를 나타내 주고 있다.
* 롬12:4~5,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 고전12:12~13, 27,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 갈3:26~28,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 엡1:22~23,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 이니라.”
* 골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2) 교회의 성성(聖性),
로마 캐톨릭은 교회의 성성을 외부적 형식에서 찾고 있다. 그것은 신자의 내면적 성결이 아니라 교의 도덕적 교훈, 예배의식, 권징, 등 의식적 성결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개신교에서는 이 성(聖)의 개념을 교회회원들에게 적용한다. 객관적으로는 그리스도안에서의 거룩함을 보는 것이고 주관적으로는 그 원리적으로 본다. 그것은 신자들에게는 새 생활을 소유함으로써 완전한 성결을 가지도록 결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성결은 곧 하나님께 받쳐지는 생활에서 밖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 엡1:4~5,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 엡5:26~27,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 살전5:23~24,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3) 교회의 보편성(普遍性),
로마 캐톨릭은 스스로의 보편성을 주장한다. 또한 그 자체의 사도성을 주장하며 교회의 기원을 사도들에게 두고 교황과 감독들이 사도의 법적계승자로 삼기 때문에 그렇게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 개신교는 무형교회만이 진정한 보편적 교회라고 주장 한다. 그 이유는 그것만이 모든 시대의 모든 신자들을 포괄적으로 포함 할 수 있고, 그것만이 인생의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7, 교회의 기호(記號), 혹은 특정적 표지(標識),
교회의 표지(標識),는 유형교회에만 구한된 것으로, 이것으로 참된 교회와 거짓된 교회를 구별 할 수가 있겠다. 개혁파 교회에서는 항상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표지를 말 하게 되는데, 곧 교훈과 실천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의 표준에 신실하게 행하는 그것이다.
1) 참된 말씀전파,
이것은 교회의 가장 중요한 표지인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전파가 근본적으로 진실해야 한다는 점과 또한 신앙과 행위에 지배적인 감동과 감화를 주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한 교회가 필연적인 최상의 교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요7: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 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 요8:31~32,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 요14: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 요이1:9~10,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10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2) 정당한 성례집행,
성례(聖禮),는 로마캐톨릭과 같이 말씀과 분리시켜서는 안 된다. 이 성례는 말씀의 유형적 전파인 것이다. 성례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행하시고 제정하신 것으로 말씀에 합법적인 사역자들에 의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집행되어야 한다.
* 마2626~28,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 고전10~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 고전11:23~26,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3) 신실한 권징시행,
권징(勸懲),은 기독교교리를 순수하게 유지하며, 성례를 거룩하게 보수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이 권징(勸懲),을 등한히 함으로 진리의 빛을 상실하게 되고 경건한 삶이 희석되어지고 있다.
* 마18:15~18,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 고전5:1~5,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 도다. 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 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5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11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12 외인들을 판단하는데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마는 교중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치 아니하랴 13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
* 고전14:33, 40,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40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B, 은혜의 수단,
1, 은혜의 수단으로서의 말씀,
1) 하나님의 말씀은 은혜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은혜의 수단’ 이란 말은 일반적 의미에서 말씀전파, 성례, 안식의 주일성수, 기도, 등 신자들의 영적향상을 도모해주는데 일체의 것들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특수적인 의미에 있어서는 말씀과 성례를 은혜의 수단이라 하고 권징도 은혜의 수단으로 사용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은혜의 수단으로 생각 할 때, 그것을 인격적인 말씀(三位一體의 2위), 혹은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유지하시는 능력의 말씀으로 보는 것이지, 선지자들이 받은바 어떤 종류의 계시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 시33:6~,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 히1:3~,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2) 말씀과 성령의 관계,
말씀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의 관계에 대한 의견은 항상 통일되지 못하고 있다. 펠리기우스파와 같은 합리주의자들은 새 생명을 산출해 내는 데는 말씀의 지적인면과 도덕적역사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보며, 여기에 더하여 성령의 역사는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반면에 율법폐기론 자들은 성령의 역사에서만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상 말씀으로만 신앙과 회심을 일으키기에 충분치 못 할뿐더러 성령도 역시 말씀이 없이는 역사 하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씀과 성령은 함께 일하신다. 다시 말하면 성령은 말씀을 도구로 사용하시고 또한 말씀은 성령의 능력으로 그 효력을 나타내어 생명의 열매를 결실 하게 되는 것이다.
* 딤후3:15~17,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3) 은혜의 수단으로써의 말씀의 두 부분,
하나님의 말씀에는 윱법과 복음의 두 부분이 있다.
(1) 율법과 복음의 차이점,
① 율법의 기능,
오늘날 율법과 복음이 절대적으로 반대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렇게 보는 사람들은 율법을 행위언약의 조건으로만 보고 또 다른 관점으로의 인식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율법이 단순한 행위언약의 조건으로만 고려된다면 그것은 은혜의 수단이 될 수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을 은혜의 수단으로 말 할 때, 그것이 하나님의 성격과 의지의 필연적 표현이라고 생각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율법은 죄를 제재하고 의를 증진시킴으로써 하나님의 보통은혜의 목적을 달성한다. 그러나 이것은 은혜의 수단으로써 특수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은혜의 수단’은 특별은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능으로 율법은 먼저 인간으로 하여금 죄가 죄 된 것과 죄의 형벌을 인식하게 함으로 복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한다.
* 갈3:19~24,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20 중보는 한편만 위한 자가 아니니 오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니라. 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다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② 복음의 기능,
우리가 복음을 말할 때는 율법 안에서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복음은 하나님의 약속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복음에 있어서 가장 앞자리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하나님의 은혜언약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율법은 우리에게 복음을 믿을 것을 요구하고, 복은은 우리인간의 생활 속에서 율법의 완성을 목적으로 한다. 복음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구원의 길에 대한 명백한 표시인 것이다.
그것은 죄인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에게로 와서 믿고 회개 할 것을 권고하며, 믿고 회개한자들에게 현재와 미래에 있어서 구원과 모든 축복들을 약속하고 있다. 이것은 믿는 모든 자들에게 구원으로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이다.
* 마5:17~18,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 롬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 약2:8~11,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 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 롬1:16~17,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 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2, 은혜의 수단으로서의 성례,
1) 말씀과 성례와의 관계,
하나님의 말씀은 성례 없이도 존재 할 수 있고, 은혜의 수단으로 완성적이지만, 성례는 말씀 없이는 존재 할 수도 없고, 완성적일 수도 없다. 이와 같은 견해는, 성례가 죄인을 구원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로마 케톨릭파에 대한 성경적인 대변이다. 말씀과 성례는 하나님이 창시자요 그리스도가 중심적 내용인 것이다. 오직믿음으로 충용되는 데는 일치하지만 본질적 중요 점에서는 각각 다른바가 있다. ① 말씀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성례는 그렇지 않다. ② 말씀은 신앙을 일으키고 강화하지만, 성례는 신앙을 일으키거나 강화 하지 못한다. ③ 말씀은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되지만, 성례는 언약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만 시행된다.
2) 성례의 기원과 의미,
‘성례’ 라는 말은 성경에서 문자적으로 발견 되지 않지만, 이 말이 기독교적용어로 사용하게 된 경로를 다음과 같이 찾아볼 수 있다. ① 군인이 사령관에게 엄숙한 복종을 서약할 때 쓰는 군중선서로 지시 하는 군사적용법에서 찾아볼 수 있다. ② 그것은 라틴어 번역 성경에서 헬라어의 신비라는 말로 번역된 것으로, 복종의 서약과 신비로 간주한다. 성례란 그리스도 말미암아 제정된 거룩한 제도로서, 이 제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안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의 감각적 표호로 신자들에게 제시되고, 날인되며, 적용되는 것으로 신자들은 하나님께 신앙과 순종을 표현 하게 되는 것이다.
3) 성례의 구성구분,
성례는 세 부분으로 구별 하는데, ① 외적이며 유형적인 표호로서, 곧 세례와 성찬으로, 구분하고, 세례에는 물세례와 성령세례로, 성찬에는 떡과 포도즙을 사용하여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몸의 살과 피를 상징적으로 먹고 마시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외적인요소로서 전체를 보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성례의 전체는 아니다. ② 내면적인 영적 하나님의 은혜의 의미로서, 이것은 성례의 내면적요소를 구성한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여러 가지로 표시하고 있다. 곧 은혜의 언약,(창17:11), 믿음의 의,(롬4:11), 사죄,(마26:28), 신앙과 회심,(막16:16), 그리스도와의 연합,(롬6:3~4),등으로 표시되었다. ③ 표호와 의미를 표시하는 요소와 사물과의 연합으로, 성례의 본질을 구성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외적인 사물로 내면적인 영적의미에 포함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또한 이 둘이 동일한 공간에 존재한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다만 이것은 영적인 것으로만 생각해야 된다. 그러므로 이 성례가 믿음으로 받아드려지는 곳에서 하나님의 은사가 수반 되는 것이다.
* 창17:11~,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 롬4:11~,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 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 할례 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마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 롬6:3~4,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 하느뇨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4) 성례의 필요성,
로마 캐톨릭파에서는, 세례를 구원으로 이끄는 절대적 요인으로 하고, 고해성사는 세례이후 치명적인 범죄를 저질렀을 때 필요한 조건으로 하고, 견지성사나, 성체성사, 종유성사는 시행명령을 내릴 때, 혹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 할 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개신교,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성례가 구원에 절대적인 것은 아니나, 다만 하나님의 교훈이기 때문에 의무적인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고의적으로 시행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고의적 불순종이라 생각한다.
5) 구약의 성례와 신약의 성례,
캐톨릭 교회는 구약의 성례와 신약의 성례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구약의 성례들은 단순히 예표 적이어서 영적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다만 법적위치만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성례의 역사는 그것을 받아드리는 사람들의 믿음에 좌우되었다. 그리나 신약의 성례들은 단순히 그 신비적 행위에 의하여 받는 자의 마음속에 영적은혜를 일으켜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상은 구약과 신약의 성례사이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는 것이다. 다만 구약의 성례는 영적의미 외에 국가적 국면을 지니고 있고, 그리스도를 향한 미래적 효과가 나타날 것을 바라보는 은혜의 인호(印號),였으나, 신약의 성례들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적성취와 완성을 적용시키는 것으로 영적은혜가 받는 자에게 풍성히 임하는 것이다.
* 롬4:11~,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 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고전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 고전10:1~4,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 골2:11~12,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6) 성례의 수,
(1) 구약의 성례,
① 할례, : 이방인들은 건강법으로 행해졌으나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것이 죄를 제거 하는 은혜언약의 성례였다.(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세우신 하나님의 언약의 증표),
* 창17:9~11,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1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② 유월절, : 이는 모세시대에 이스라엘의 출애굽 한 증표로 지키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원을 상징하는 예표이다. 할례와 유월절은 다 같은 유혈성례로서 구약의 희생방법으로 조화를 이룬다.
* 출12:5~13, “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6 이 달 십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7 그 피로 양을 먹을 집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8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9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10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11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12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 나는 여호와 로라. 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2) 신약의 성례, : 세례와 성찬,
신약의 성례는, 세례와 성찬으로 무혈성례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위에서 흘리신 보혈로 완전한 희생을 드리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이후로는 더 이상의 피를 흘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① 세례의 의미와 종류,
* 롬6:3~5,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 회개의 물세례,
* 요1:26~27,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27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더라.”
* 마3:16~17,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 능력의 불세례,
* 마3: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요1:32~34,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하였노라. 하니라”
② 성찬의 의미와 종류,
* 마26:26~28,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 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 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 고전10:16~17,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떡,
* 고전11:23~24,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 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잔,
* 고전11:25~26,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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