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30 주일
시편 110편
주의 권능의 날
들어가는 말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우리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던 아브라함 같다. 믿을 수 없는 중에 믿고 바랐던 ‘허다한 믿음의 사람들’과 같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 23:19).” 곧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내 입에서 공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세하리라 하였노라(사 45:23).” 즉 오늘 우리에겐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의 날을 준비하게 하신다.
이를 위하여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이 놀라운 진리 앞에 우리는 무릎을 꿇는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면, 왜 나 같은 죄인을 이처럼 사랑하시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공통된 믿음의 마음이다. 예수님은 이를 설명하시면서 바라새인들에게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마 12:7).”
또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마 21:16).” 이는 대제사장과 서기관을 향한 말씀이었다. 첫째, 하나님은 그 자비를 원하신다. 둘째, 우리 주님은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순전한 마음으로 믿는 이)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좋아하신다. 그런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그렇지 못했다.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요 37:38).” 이는 사두개인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곧 저들은 당대의 종교지도자들이었다. 학자요, 권세 잡은 자들이었다. 예수님은 이들을 반박하시면서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 하는 호세서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하고 저들의 음란과 탐욕과 위선을 지적하셨지만 저들은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눅 16:14).” 하여 오늘 우리가 겪는 어려움의 목적(다섯 가지)와 각각의 실제가 있다.
첫째, 우리로 경건하게 살게 하려 하심이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 3:12).” 이는 천국이 우리의 것이기 때문이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 5:10).”
둘째, 우리로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세움 받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살전 3:3).” 곧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려는 것인데,
① 먼저 우리가 세상과 함께 정죄당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다.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1:32).”
② 진리의 하나님의 능력을 무기로 삼고 살게 하려 하기 위함이다.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고후 6:7).” 그래서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8-10).”
③ 우리로 말씀을 잊지 않게 하려 하심이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히 12:5).”
셋째,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에서 합당한 자로 세우심을 받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살후 1:4-5).”
넷째, 우리 모두 몸의 속량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롬 8:22-23).” 이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다.
① 세상을 사랑하지 않게 된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5-16).”
② 더는 몸의 지배를 받지 않고 말씀을 사랑하게 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4-25).”
③ 이를 위하여 스스로 자신을 날마다 죽인다. 즉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이는 자기부인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다섯째, 환난을 통하여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과 그 소망이 이루어질 줄을 알게 된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본문이해
오늘 시는 다윗의 시 가운데 일곱 편의 메시아 예언 시로 통한다(2, 16, 22, 24, 45, 72, 110편). 예수님은 이를 신약의 여러 부분에서 인용하셨다(마 22:41-45, 막 12:35-37, 눅 20:41-44, 행 2:34-35, 고전 15:25, 히 1:13). 오늘 시편은 두 연으로 나뉜다. 1연(1-4절)은 하나님의 섭리와 불변의 권세에 대해 메시아의 왕과 제사장 사역을 예언한다. 2연(5-7절)은 종말론적인 메시아의 심판의 날에 이루어질 원수들을 향한 예언이다. 오늘 본문에 이에 따라 두 가지를 살피려고 한다.
첫째, 하나님의 섭리와 권세 곧 메시아의 왕과 제사장 사역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110:1).”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고 신앙고백을 하자, 예수님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6-17).” 하고 저의 대답을 인정해주셨다. 마리아를 찾아와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 1:35).” 곧 저는 성령으로 이 땅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한다.
이를 오늘 시편으로 이어가면,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2).” 여기서 ‘주의 권능의 규’란 ‘규’란 말이 지팡이란 뜻으로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계 11:1, 6).” 곧 하나님의 권능과 권세를 말한다.
곧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죄와 사망 권세에서 건지시고 승리하셨다. 저는 “싸울 때에 용사 같이 거리의 진흙 중에 원수를 밟을 것이라 여호와가 그들과 함께 한즉 그들이 싸워 말 탄 자들을 부끄럽게 하리라(슥 10:5).” 하고 구약은 이미 예언하셨다. 바울은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6-37).” 하고 확언하였다. 곧 우리는 역경과 고난을 통해 참된 이김을 맛보게 된다. 우리가 아무리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잠 21:31).” 그러므로 오늘 시편은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3).” 곧 우리는 ‘주의 권능의 날’에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사 1:19).” 하며 승리와 만족함을 약속하였다. 이를 오늘 시편은,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4).”
즉 우리로서는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히 7:17).” 하여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21).” 하며 오늘 본문 말씀을 따르고 있다.
둘째, 종말론적인 심판의 날에 원수들을 향한 예언(5-7)
“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께서 그의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것이라 뭇 나라를 심판하여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깨뜨리시며(110:5-6).”
이를 우리가 다음 주일에 좀 더 나눌 텐데, “그의 손이 하는 일은 진실과 정의이며 그의 법도는 다 확실하니 영원무궁토록 정하신 바요 진실과 정의로 행하신 바로다(111:7-8).” 이것이 심판의 목적이다. 곧 이미 다 정하여진 일로 곧 있을 저 엄청난 심판을 두려워할 줄 아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저는 우리의 평강의 왕이시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 하고 구약에서 이사야는 예언한 바 있다.
곧 주의 권능의 날에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벧후 3:6-7).” 즉 노아의 때에 홍수로 심판하신 적이 있으나 그때는 본보기였다면 이제 남은 심판은 마지막 때로 불로 심판이 이뤄질 것이다.
곧 모든 세계는 새로워질 것이다. 이사야는 다시 예언의 말씀을 남겼다.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사 66:22).” 그러므로 오늘 시인의 종말론적인 예언처럼, 앞서 아삽의 시에서도 “또 악인들의 뿔을 다 베고 의인의 뿔은 높이 들리로다(시 75:10).” 하고 예언하였다. 영원한 안식을 예언하며, “그러나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 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을 부으셨나이다(92:10).” 하고 우리의 구원과 영광을 찬송하였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로 예비하고 준비하게 하시는 ‘권능의 규’ 곧 ‘주의 권능의 날’에 이루어질 것이다.
곧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가난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사 29:10).” 우리는 ‘이 날을 주의 기쁘신 주의 날’로 섬길 것이다. 이를 기다리며 오늘도 여러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도 주를 찬송한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시 25:2).” 이처럼 주를 의지하면서,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143:8).” 하고 아뢴다. 아니면 우린 무엇으로 이 엄위하신 ‘권능의 날’을 견딜 것인가? 심판의 때를 견딜 수 있는 피조물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들을 믿었사오니 좋은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119:66).” 하고 오늘도 주 앞에 기도하는 것이다.
나오는 말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요 12:31).”
보면 악인이 흥하고 의인이 망하는 세상 같다. 권력을 잡은 이가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군다. 어느 집단에서나 ‘갑질’이 쉴 새 없다. 하지만 곧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골 2:15).” 이와 같은 승리가 이미 실현되었다.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아 악이 강하고, 부자가 최고고, 권세가 모든 것을 다스리는 것 같다. 그러나 곧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계 12:9).”
주의 권능의 날에는 이 모든 것이 드러날 것이다. 저들의 거짓과 위선과 모든 어둠의 세력들은 물러갈 것이다. 곧 하나님의 나라는 회복될 것이다. 이미 승리하셨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이를 붙들고 ‘주의 권능의 날’을 고대하는 성도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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