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성전 공사를 막지 말고 유다 총독과 장로들이 하나님의 이 성전을 제자리에 건축하게 하라
에스라 6:7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시 121:3
바사 왕 다리오는 총독 닷드내의 보고서를 받고 바벨론 문서고 기록들을 조사하게 한다. 메대가 악메다궁에서 예루살렘 재건을 지시하고 지원을 밝힌 내용을 찾아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린 증거를 찾는다. 다리오는 예루살렘 성전재건을 지시하고 적극 지원한다. 이는 스가랴의 예언을 성취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슥 4:6-7).”
이를 보면서 하나님이 이루시는 역사는 반전에 반전의 연속인 것 같다. 더는 가능성이 없다고 여겼던 것에서 그 뜻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어떤 때, 어떤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스스로 증명하신다. 이에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롬 4:20-21).” 곧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 6:17-18).”
가령 어제는 친구가 담낭제거 수술을 받았다. 거기에 무슨 혹이 생겨서 그리하는 것이라 하였다. 수술에 앞서 오전에 일찍 통화를 하고 전화로나마 기도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인 것 같았다. 중1 때부터였으니 서로가 알 거 모를 거 없는 사이로 함께 한 세월이 길었다. 기도 중에 나는 울컥하였고, 서로가 이처럼 주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수 있는 사이가 되어서 감사하였다. 그런 거 보면 우리가 서로 이리될 줄 알았나? 멋대로 굴며 겁 없이 지내온 세월인데… 돌이켜 보면 어느 것 하나 ‘은총, 은총’ 하고 소리 쳐 외치지 않을 것이 없었다. 이제 서로를 본받아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
이는 마치 이인위경(以人爲鏡)이란 말처럼 ‘사람으로서 거울을 삼는다.’는 말고 같이 서로에게 ‘그리스도의 편지’와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고후 3:3).”,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 2:15).” 삶으로 이를 비춰줄 수 있다는 거울과 같다면… 곧 서로에게서 그리스도의 산 증거를 찾아가는 것이 서로의 복이겠다. 그렇게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살후 3:9).” 곧 하나님 앞에서는 그 어떤 거짓도 묻힌 채 가려질 수 없고, 어떤 진실도 밝혀지지 않을 것이 없다.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면서 천성을 가는 길에 서로 격려가 되고 동행이 된다면 이보다 값질 게 있을까?
이를 자랑하고 싶었는지 나는 초등학교 선생으로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그러한 사실을 말하며 감회가 새로웠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2).” 이에 서로가 잘 알면서 주의 은혜로 같이 했던 세월을 돌아보며 주를 바란다는 것,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눅 12:2).” 이는 참 무서운 말씀이면서 귀하고 감사한 일이다. 은연중에도 믿는 자로서 티가 난다는 게 언젠가 그 작은 티에서 불꽃이 일어 성령의 역사를 이루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전 4:5).”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하나님은 묵묵히 참고 기다리시며 순종하기를 바라신다. 오늘 본문 3절에 “고레스 왕 원년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대하여 이르노니 이 성전 곧 제사 드리는 처소를 건축하되…” 저는 이방 나라의 왕으로 이와 같은 일을 행하는 것이 말이 되나? 그래서도 호세아는 기록하기를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 그러므로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하나님이 가장 바라시는 것, 오직 우리가 겸손하게 주와 함께 행하는 것!
나는 복에 복이 많다. 나 하나 주 앞으로 돌이켜 이처럼 주의 은혜를 알게 하시고 바라게 하시고 은혜 가운데 살게 하시는 것도 유익인데, 하나둘 예전의 각별했던 친구들이 함께 주의 이름을 부르며 누구보다 주를 갈망하는 삶으로 살게 하셨으니…. 오늘 본문 4절, “큰 돌 세 켜에 새 나무 한 켜를 놓으라 그 경비는 다 왕실에서 내리라.” 이와 같은 놀라운 역사가 사람에 의해 인위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님을 알게 한다. 곧 내가 한 게 없어서 나는 송구할 따름이고, 모든 게 다 감사할 것뿐이었다. 이에 오늘에서 말씀에 두고 산다는 일, 친구의 수술에 앞서 기도했던 내용도, 이제 우리의 남은 생애가 주의 쓰임에 합당하게 하시기를.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7).”
저에게 나는 요셉과 다니엘과 오바댜를 소개하며 이방나라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위정을 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 곧 흔히 말하는 사회생활도 다를 게 없어서 안 믿는 자들 속에서의 교류와 남다름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계신 하나님을 드러내는 사람으로 산다는 일. 저의 생이 그러하기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
모든 게 다 때가 있었다. 돌아보면 아 그래서 그러셨구나, 하고 뒤늦게 알게 되는 놀라운 은총이 수두룩하다. 그러할 때,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벧전 5:10).” 곧 어느 것 하나 은혜 아닌 것이 없다. 서로의 삶을 보면서도 그것을 느끼며 감격한다. 하여 서로가 서로를 위해 기도한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삼상 12:23).”
이를 토대로 오늘 시편을 묵상하면,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121:1-2).
살면서 주로 어떤 문제가 있을 때 두리번거린다. 나의 도움이 어디에 있을까? 하고 저마다의 산을 본다. 누구 변호사를 생각하다, 어떤 의사를 찾아보기도 하고, 예전에 알던 누구에게서 누구를 소개 받기도 하여… 관건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게 능사인데…. 우리가 저들과 다른 점은 하나님만 바랄 수 있다는 것이다. 절실할수록 여기저기 기웃거리기 마련이나,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146:3-4).
그런 거 보면 그때도 그렇게 고마웠던 사람인데 어느 순간 남만 못한 사이가 되어 있는 경우들도 흔하다. 그럴 때면 더욱 더,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118:6-7).
그러면서 시인은 연이어서 강조한다.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8-9).
이처럼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사 12:2).” 하는 고백이 나의 것이어서 감사하다. 언제나 동일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심지어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이신 분,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7).” 결코 변함이 없는 사랑의 소유자,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눅 15:20).”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한결같이 기다리시고 또한 변함없이 사랑을 주신다. 이를 오늘 시인은 어려움 가운데서 발견하였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121:3).
여기서 너는 ‘너’이면서 ‘나’를 향한 말씀이다. 그 하나님이 오늘도 이런저런 낙심과 우울과 갈등과 슬픔 가운데서도 진정한 도움이 누구인지를 알게 하신다. 곧 “보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냐 보라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이 그들을 먹으리라(사 50:9).” 즉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28:7).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55:22).
이는 아는 사람만 안다. 그저 보편적인 감사로는 이를 어찌 받을 수가 없다. 무어라 설명해도 어려운가보다. 공교롭게 오후께 또 한 친구와 모처럼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교회를 멀리하고 그 신앙이 떠나있어 저와의 대화는 어딘가 통상적이었고, 그저 먹고 사는 푸념으로 늘어지다 끊었다. 뭐라 덧붙일 말이 없었다. 가끔은 이런 데서 같은 곳을 향해 가는지, 서로 다른 곳으로 가고 있는지 알 것도 같다. 성경은 분명히 약속하시기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 28:15).” 이 약속은 야곱이 것이 되었다.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31:3).” 그러고 오늘에 이르러 나의 것이 되었다. 하여,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사 43:2-3).”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121:4, 5-6).
이와 같은 약속이 내 것이 아니라면 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이를 알면서부터, ‘나에게 보이는 것이 너에게도 들려지기를, 나에게 들리는 것이 너에게도 보이기를.’ 누군가를 위해 기도한다는 일은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어느새 우리가 함께 동행하고 있었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신 32:10).” 곧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
(17:8).
우리가 살면서 어려움을 당하나…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이를 붙들게 하는 시편이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7-8).
그러므로,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4:8). 아멘.
'[묵상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0) | 2022.11.01 |
---|---|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0) | 2022.10.31 |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0) | 2022.10.29 |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 (0) | 2022.10.28 |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0) | 2022.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