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에스더 4:16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시편 142:1
에스더는 구국을 위해 결단을 한다. 왕이 부르지 않은 자가 왕 앞에 나서면 죽음뿐이다. 이를 알면서도 민족의 위기 앞에서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는 마음으로 나선다. 이에 앞서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16).” 기도가 앞서고 행동이 따른다.
모르드개의 말이었다.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14).” 오늘 내게 더하시는 마음, 그 자리에서의 충성은 내가 아니어도 다른 길로 하나님은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하실 것이다. 다만 내가 내 역할을 다하지 못할 뿐이다. 곧 오늘의 나로 여기에 두신 이유가 있다. 나에게 누가 어떤 사연을 전하며 기도를 부탁할 때, 나는 이를 곁에 적어놓고 저를 생각하며 주께 아뢴다.
어떤 일, 누구의 설교, 손에 쥐는 책, 하루 일과의 사소한 일 가운데서도 주의 음성을 듣는다. 서로 그 아픔을 또는 기쁨을 같이 하는 일은 성도의 일이다. “에스더의 시녀와 내시가 나아와 전하니 왕후가 매우 근심하여 입을 의복을 모르드개에게 보내어 그 굵은 베 옷을 벗기고자 하나 모르드개가 받지 아니하는지라(4).” 저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고 저의 근심과 슬픔이 나의 근심이 된다. 이는 모세의 경우도 그러하여서, 저는 결국 자신의 안위와 영달을 위한 길을 택하지 못하였다. 하여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4-26).”
앞서 요셉도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과 아버지께 속한 모든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나이다 하더라고 전하소서(창 45:7, 11).” 하며 주가 하신 일에 대한 확신으로 모든 슬픔과 억울함을 주께 찬송으로 돌렸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50:20, 25).”
이 놀라운 참여는 우리도 마찬가지여서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롬 12:15-16).” 서로의 안부를 묻고 저의 이런저런 일에 귀 기울이며 그 마음을 다하는 일,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자들의 경솔함은 ‘자신은 다르다’는 우월함으로,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눅 18:11).”
하나 성경은 그런 우리가 아닌 것을 밝힌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고전 12:26).” 이를 마치 다르다고 생각하여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따로 둔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 앞에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2).”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길 바라시는 것으로 당신의 뜻을 알고 이를 행함으로 주를 나타내는 일이었다.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엡 6:6-7).” 곧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약 4:5).” 우리가 주춤거리고 머뭇거릴 때 성령은 재촉하신다. 우리에게 맡기신 직분은 그리스도인으로 구국을 위한 기도와 참된 관여와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는 온전한 충성이다. 한데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믿는다 하면서 그 삶이 자신을 위하는 일 외에 다른 길을 외면하는 것이면 허사다. 곧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그리하여 우리는 이 사명을 충성되이 여겨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딤전 1:12-13).”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것이었다. 이후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1-2).” 모세 또한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히 3:5-6).”
우리는 모두 에스더다. 모세이면서 요셉이고 바울이면서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3:1).” 이에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눅 19:17).” 어느 훗날 우리는 잘하였다 충성된 종아, 하는 칭찬을 들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곧 이와 같은 말씀을 묵상하고 이를 글로 쓴다. 전날에 누구의 여러 문자를 읽으며 저의 현재를 생각한다. 그 당하는 어려움과 고통을 두고 주의 이름을 부른다. 저에게 예배를 권하고 주 앞에 평안을 위해 당부한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오늘의 이런저런 어려움이 우리로 주 앞에 바로 서게 할 것이다. 그러기까지 주는 여전히 오늘도 일하신다.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을 것은 없다.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대하 20:6).” 누가 전능하신 자의 일을 가로막을 수 있을까?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이니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를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사람들이 알게 하려 함이라 하였느니라(단 4:17).” 그러므로 말씀 위에 서는 것, 주만 믿고 바라고 외치는 것. 오늘 시편의 다윗도 굴에 숨어 주의 이름을 부른다.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시 142:1).
‘소리 내어’ 곧 마음껏 거침없이 부를 수 있는 이름, 57편과 오늘 142편도 다윗은 굴에 숨어 주와 함께 하였다.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길 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뒤를 보러 들어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삼상 22:1, 24:3).” 굴은 인생에 있어 더는 숨을 곳이 없는, 비참한 현실의 때이다. 인생의 위기에서 우리는 비로소 주의 살아계심을 ‘소리 내어’ 찾는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창 35:3).” 야곱이 다급하여 깨달았고,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 넘기사 그들이 곤고를 당하게 하시매 그들이 환난을 당하여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에게 구원자들을 주어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거늘(느 9:27).” 느헤미야도 외쳐 서로를 돌이키며 외쳤다. 그렇듯이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34:6).
우리의 굴, 그 더는 숨을 데 없는 지경에서 ‘소리 내어’ 주를 찾을 때 우리 주님은 외면하지 않으신다. 이를 알기에 고난의 쓴 감정을 주 앞에 토로하는 것이다.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내가 가는 길에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
오른쪽을 살펴 보소서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나이다
(2-4).
성경의 기도는 우리로 현실의 고단함을 이겨낼 수 있는 ‘소리 냄’을 알린다.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
(39:12).
우리가 주 앞에 아뢰는 일 외에 우리 스스로 해결하려 드는 모든 일은 악하다. 우리로 ‘소리 내어’ 담대히 주 앞에 나아갈 수 있게 하신 이를 업신여기는 처사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55:22)
이와 같은 믿음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어둡고 힘들 때, 우리는 주를 바란다. “내가 맹인들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 그들이 알지 못하는 지름길로 인도하며 암흑이 그 앞에서 광명이 되게 하며 굽은 데를 곧게 할 것이라 내가 이 일을 행하여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니 조각한 우상을 의지하며 부어 만든 우상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는 자는 물리침을 받아 크게 수치를 당하리라(사 42:16-17).” 허튼 길로 들어서서 엉뚱한 것을 붙들고 씨름하느라 힘만 든다. 분명 말씀은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그렇다면,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142:5).
나의 피난처, 나의 분깃. 곧 내 몫의 마땅한 도우심이 있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애 3:24).” 하여,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73:26).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 하였나이다
(119:57).
곧 저 전능자 만유의 주 하나님이 나의 몫이시라니!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사 41:14).” 그런 내게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 4:6).” 그렇게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들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그들은 나보다 강하니이다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하게 하소서
주께서 나에게 갚아 주시리니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이다
(6-7).
오늘 다윗은 확신으로 주께 요구하는 것이다. 나의 분깃,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시온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줄 자 누구인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며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53:6).
그렇게 우리는 비록 굴 같이 어둡고 습한 곳에 갇힌 듯 더는 어쩔 수 없는 인생에서 주께 소리 내어 부르짖는다. 그러할 때에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사 61: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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