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왕이 하만에게 이르되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
에스더 6:10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알아 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기에 그를 생각하시나이까?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시편 144:3, 15
모르드개의 과거 공적(5:8-14)이 밝혀진다. 이를 알지 못한 채 자신의 영달을 꾀하던 하만이 왕의 명령을 따른다. 저는 눈엣가시 같은 모르드개를 장대에 매달 계획이었다. 오늘 말씀의 한 부분은 박장대소하게 하고 통쾌한 반전을 보인다.
아하수에로 왕이 잠이 오지 않아 궁중일기를 읽고 있었다. 그러다 예전에 모르드개가 왕을 시해하려는 음모자를 고변한 사실을 읽는다. 왕은 신하에게 물어 저에게 어떤 상을 주었는가 물었다. 아무런 포상도 없었음을 알고 아하수에로는 밖에 누굴 찾는다. 마침 하만이 모르드개를 장대에 달아 죽이고자 하여 왕 앞에 나서려던 길이다. 왕이 저에게 물었다.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 그러자 하만은 속으로 그것이 자신을 두고 묻는 말이라 심중에 생각한다. “나 외에 누구리요?” 그러자 저는 “왕께 아뢰되 왕께서 사람을 존귀하게 하시려면, 왕께서 입으시는 왕복과 왕께서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가져다가 그 왕복과 말을 왕의 신하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맡겨서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 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게 하소서 하니라(6-9).”
독자로서 물론 말씀을 묵상하는 입장에서 이와 같은 상황에 웃음 짓지 않을 수 없다. 왕은 아직 하만의 속셈과 소행을 모른다. 다만 하만이 고한 대로 “이에 왕이 하만에게 이르되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10).” 이 무슨…! 자신이 고한 말이니 달리 변경할 수도 없고, 저는 울며 겨자 먹기로 “하만이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모르드개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 성 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되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니라.” 하고 성읍을 돌았다.
이와 같은 이야기의 전개가 우스우면서도 슬프다. 오늘 시편의 한 부분과 연관되면서 참으로 그러하다는 데 저절로 감복하게 된다.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알아 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기에 그를 생각하시나이까?
…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시 144:3, 15)
우리의 복은 이와 같은 반전이 있다. 오늘 에스더의 첫 구절은 “그 날 밤에”로 시작한다. 그 날 밤은 우선 여러 모로 바쁘고 분주하고 시끄럽고 요란한 밤이다. 하만은 에스더 왕후의 다음 잔치를 기다리며 아내와 친구들과 함께 모르드개를 죽일 모의를 꾸미고 있던 밤이고, 에스더와 모르드개에게 그 날 밤은 금식과 기도로 무장하고 다음 날 국운을 걸고 왕께 아뢰기 위해 긴장하고 기도로 마음을 졸이는 풍전등화의 밤이다. 하만이 아침 일찍 누구보다 먼저 궁중에 들어가 왕 앞에 서게 되는 모습도 시쳇말로 ‘웃프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사람의 한계를 드러낸다.
바로 그와 같던 그 날 밤에 하나님이 왕을 잠들지 못하게 하고 맥락도 없이 예전의 궁중일기를 읽게 하신 일도 기이하다. 곧 모르드개를 구원하시고 유다 민족을 살리시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가 그 날 밤에 전개되어 절정에 이르고 있었다. 시인의 노래처럼,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121:4).
앞서 에서가 칼을 차고 군병을 이끌고 나올 때 이스라엘 앞에 ‘하나님의 군대’가 선다.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창 32:1-2).” 하나님의 계획은 결코 실수하시는 법이 없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사 42:2).” 성경은 이를 두루 찬송한다.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살후 3:3).”
이와 같은 말씀을 묵상할 때면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히 13:6).” 곧 우리의 우연은 엄청난 주의 섭리를 내포하고 있다. 이래저래 마음이 어려운 날들이다. 이를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으나 오늘도 일찍 잠들었다가 자정이 되어 눈을 뜨고는 교회로 올라왔다. 이런저런 상황에서 각각을 돌아보면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닌데… 저마다 그 사정과 여건은 우연처럼 포장되어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반전이 숨겨져 있다. 어느 훗날 요셉의 고백처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창 45:7-8).” 요셉도 이 사실을 ‘그 날 밤’에는 알기나 했을까?
숱한 밤들 그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모순과 억울함과 답답함을 부여잡고 주 앞에 고하는 날들이 있었다. 그때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즉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매우 깊으시니이다
어리석은 자도 알지 못하며
무지한 자도 이를 깨닫지 못하나이다
(92:5-6).
그런데 무슨 창조과학이니 무슨 신학이니 하며 마치 다 알 수 있고 아는 것처럼 구는 꼴을 보면 가관이다. 마치 그런 우리의 어리석음을 보고 계신 것처럼,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일에 은혜로우시도다
(145:17).
하긴 주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가 무슨 수로 하루라도 살 수 있을까?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우리로 그 미래와 희망을 알게 하시려고 오늘의 환난과 고초도 더하신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우리가 이를 알 수 있는 것은 과학적인 증명과 이성적인 판단과 이해로가 아니었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2).” 곧 ‘그로 말미암아’서였다.
믿는 것도 영접하는 것도 이에 날로 속사람이 새로워지는 일도 모두가 다 주의 은혜다. 은혜가 아니면 알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다. 그래서 오늘의 어떤 답답함, 어지러운 마음을 허튼 데 쏟지 않고 주 앞으로 가져온다. 주께 아뢰고 고하며 모든 때와 시기가 주께 있음을 인정한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전 3:1).” 이것으로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10).” 삶은 때로 고단하고 어려워서 이를 대체 누구에게 토로하고 넋두리라도 해본단 말인가?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능히 낮에 대한 나의 언약과 밤에 대한 나의 언약을 깨뜨려 주야로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진대(렘 33:20-21).” 하나님이 하시는 일 앞에 가만히 귀 기울이며 기다리는 일,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단 2:21).” 하나님이 일 하신다. ‘그 날 밤에’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때에 하나님의 반전에 역전을 이루고 계신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16:3).
마음이 어지러워 혼탁하다가도 이처럼 말씀 앞으로 이끄시는 것에 새삼 내게 더하신 은혜가 귀하다. 이와 같은 마음과 시간과 또한 가장 적합한 장소와 여건을 허락하시는 은혜 앞에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곧 스바냐의 노래처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 3:17).” 이를 나는 읽고 듣고 이처럼 글로 쓰면서 감사한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롬 4:20-22).”
하만의 오판은 교만의 결과이고 모르드개의 영광은 저의 오랜 기다림과 그 믿음의 절개로 얻은 결과이다. 즉 말씀이 그때마다 적절한 것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그러므로 “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잠 13:3).” 앞서 말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듣는데 최대한 인내하고,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18:13).” 입과 혀를 지키는 게 복이며,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21:23).” 합당한 말을 하는 게 은사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25:11).” 오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신앙의 덕목들이다. 시대가 악하고 사회는 어지럽다. 가정마다 반목과 부재가 퍼지고, 신음하는 영혼들이 늘고 있다.
자책에 빠진 영혼(시 51편)이나 낙심 가운데 있는 영혼(42편)에 대하여,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51:5-6, 10).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42:5, 8).
자책과 낙심이 우리 영혼을 침울하게 할 때, 오늘 시편은 이에 따른 지혜의 찬송을 노래하게 한다.
나의 반석이신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하게 하시는도다
(144:1).
연단으로 은혜와 축복을 덧입는다. 시련은 우리로 인내하게 함으로 복종을 배우게 하신다. 하여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1).” 주가 아신다. 이를 앎은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48:10).” 어지러운 마음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신다. 나에게는 개인적으로 이와 같은 나 자신이 반전이다. 전에 같으면 친구를 찾고 어디 같이 어울려 회포를 풀 궁리나 했을 것을… 가만히 십자가를 바라보고 앉아 있게 되었다. 이 놀라운 사실이 증명하는 것,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 12:11).” 모든 다 끝장날 것처럼 생각과 마음은 끝 간 데 없이 쓸려 가는가 싶더니, 멈추어 가만히 주를 생각하게 한다.
여호와는 나의 사랑이시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방패이시니
내가 그에게 피하였고
그가 내 백성을 내게
복종하게 하셨나이다
(2).
때론 짧게 혹은 잠시 맛만 보는 정도이나 저 혼자 흐르는 눈물을 그대로 두고 주의 이름을 부를 때,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알아 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기에 그를 생각하시나이까
(3).
내 인생의 은혜가 저절로 고백이 된다.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롬 15:57-58).” 당장은 또 실수하고 넘어져 자책하고 낙담하는 것 같으나 나의 결말은 믿는다.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27:1-3).
날로 새로워진다는 말,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144:15).
그게 나여서 감사하다. 은혜이다. 귀한 은총이다. 그럴 자격도 없는 나로 주를 더욱 알게 하려 하심이었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렘 10:23).” 이는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
…
위에서부터 주의 손을 펴사
나를 큰 물과 이방인의 손에서
구하여 건지소서
(4, 7).
우리가 무슨 수로 이 악한 세대를 살까? 처한 상황을 이겨낼까?
그들의 입은 거짓을 말하며
그의 오른손은 거짓의 오른손이니이다
(8).
그런 가운데 우리로 주께 노래하게 하심이 귀하였다.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열 줄 비파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9).
곧,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24:4).
자격도 기준도 최소한의 실력도 안 되는 나인데도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엡 4:25).” 나로 지체 삼으신 주,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144:15).
그리하여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행 16:31-3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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