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101 주일
시편 117편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
시 117:1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할지어다
시 117:2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시고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들어가는 말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시 37:5-6).”
신년 첫 날, 첫 주일을 맞이하며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볼 필요를 느낀다. 신앙생활을 하며 교회를 다니면서도 안 믿는 사람과 견주어 낙심의 빈도가 높고 상실감이 크다면 믿음의 확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또는 이 길이 맞나? 하는 회의감이 자주 들고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면 구원의 확신을 점검해야 한다. 때로는 포기하고 싶고, 낙심이 올 때도 있다. 그러할 때 우린 외적요인과 내적요인을 들여다보며 주의 영이 내 안에 함께 하시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 6:9-10).”
여기서 두 가지 주목하게 되는 표현은 ‘착한 일’과 ‘더욱’ 믿음의 가정에 해야 한다는 것이다. ‘착한 일’은 흔히 선을 행하고 의를 구하는 자선행위 정도가 아니다.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것은 ‘믿음을 주심’이다. 곧 내 안에 믿음이 있는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가? 하는 것으로 이를 우리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 하신 말씀을 듣는다. 믿음은 마음의 일로 어떤 느낌, 설명하기 어려운 확신의 감정이다. 하면 이를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것은 믿음의 확신은 있는 것 같은데, 구원의 확신이 없는, 또는 희미한 신자들이 많다는 반증이다. 그런 경우 나타나는 증상을 다섯 가지로 정리해보았다.
첫째, 닥친 현실에 대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다.
둘째, 가시적인 성과로 하나님의 섭리를 판단, 증명하려 한다.
셋째,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안 믿는 자들과 같이 대처한다.
넷째, 막연하여 자주 오락가락하며 의심하게 된다.
다섯째, 죽음을 두려워하고 천국에 대한 확신이 없다.
신학적으로 기본구원은 이뤘으나 성화구원을 이루지 못하고 사는 신자들이다. 마치 자라지 못하는 아이처럼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히 5:12).” 즉 교회 다닌 연수는 오래 되었는데 그 믿음은 성장하질 못했다. 이를 한 가지 이유로 단정한다면, 확신하지 못함으로 맡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다른 하나, “‘더욱’ 믿음의 가정”을 위해 해야 한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동참하는 것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이에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1-3).” 곧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존경할 정도로 능력은 뛰어나고,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 정도로 희생적이라 해도, ‘사랑이 없으면’ 곧 ‘주의 영으로’ 함께 하지 않는 것은 ‘아무 유익이 없다’는 소리다. 하여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마 7:22).”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벧후 1:10).”
부르심과 택하심, 소명과 사명을 분별하여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우리의 역할과 사명이 여기 있다.
첫째,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
둘째, 하나님이 행하시게 해야 한다는 것.
셋째, 공의와 정의를 빛 같이 나타내실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
본문 이해
오늘 본문은 단 두 구절로 된 할렐 시(특별절기 찬송)이다. 신년 첫 주일에 맞게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찬송하며 감사한다. 본문을 로마서 15장의 말씀과 연관지어,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롬 15:11).” 야기서 두 가지, 첫째는 만민에게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알게 한다. 둘째는 오늘 하루를 더 연장하신 데 따른 하나님의 진실하심과 선하심이 있다.
1. 만민으로부터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할지어다(1).”
모든 상황 속에서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이것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이유이고 목적이다. 주의 가장 큰 기쁨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말씀으로 충만하여 만족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고로 “너희 민족들아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들에게 복수하시고 자기 땅과 자기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시리로다(신 32:43).” 이를 이사야는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사 11:10).” 곧 이새의 뿌리는 다윗이면서, 다윗의 혈통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사다.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49:6).” 이것이 만유의 주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광이시다.
그리하여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호 2:23).” 곧 만민들이 구주의 인자하심에 대하여 찬송하고 경배해야 하는 이유이다.
2. 우리가 존재하는 근거는 하나님의 진실하심과 선하심이다.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시고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2).”
이를 알게 하시려고,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마 5:45).” 이는 자연은총이다. 모든 삼라만상, 사람과 짐승과 식물과 모든 만물이 이를 찬송한다. 또한 이제 오늘 우리도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애 3:22).” 이를 알고 감사하며 주를 경외하고 찬송하는 우리는 특별은총을 덧입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출 34:6).” 이를 알지 못하여 끝까지 완고해지는 사람들도 허다하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은 긍휼하시므로 죄악을 덮어 주시어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그의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의 모든 분을 다 쏟아 내지 아니하셨으니, 그들은 육체이며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라(시 78:38).” 즉 오늘도 참고 기다리시는 것이다. 이와 같은 긍휼하심과 인자와 진실하심 앞에 승복해야 할 자들을 기다리신다.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신 4:31).”
이를 붙들고 찬양할 수 있는 것이 우리에게 향하신 불가항력적인 은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 이를 우리가 앎으로 찬송과 경배를 올려드리는 것일 텐데,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시 22:27-28).” 아직 구원의 방주 문은 열려 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주님은 오늘도 참고 또 기다리신다.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 45:22).”
나오는 말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22:27-28).”
우리가 신앙을 지키며, 믿음으로 산다는 일은 분명히 여러 시험과 유혹에 시달리는 일이다. 이에 야고보 사도는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약 1:2-3).” 즉 우리 안에 갈등조차 없다면 더는 가망이 없다. 새해 첫 날 첫 주일에 ‘우리가 지켜야 할 일곱 신앙’의 주제다.
첫째, 믿음의 시련이 우리에게 있어야 인내를 이루고, 인내는 연단을 이루어 소망이 우리에게 이루는 줄을 알게 한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둘째, 미혹의 영은 세상 끝날 때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약 5:20).” 여기서 놀라운 역설은 그와 같은 미혹의 길에서 우린 우리 영혼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실을 알게 된다.
셋째, 우리에게는 생명의 경계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
“생명의 경계를 듣는 귀는 지혜로운 자 가운데에 있느니라(잠 15:31).” 어느 때보다 훈계를 싫어하는 시대에, 지혜자는 “훈계 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경히 여김이라 견책을 달게 받는 자는 지식을 얻느니라(32).” 곧 들을 수 있는 귀와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이 점점 희박해져 간다는 것이다.
넷째, 하나님은 우리로 마땅히 행할 길을 알게 하신다.
“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이신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사 48:17).” 이를 위하여 때론 징계를 나타내신다. 하여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1:32).”
다섯째, 우리가 주를 신뢰함으로 범사에 주를 인정하게 한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 가야 할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에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 4:9).” 즉 우리가 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찬송하며 사는지… 보고, 듣고, 배우는 데서 겸손으로 순종하는 법도 알게 된다.
여섯째, 먹고 사는 일에 연연하기보다 주의 영광을 위해 살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곧 우린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1:26).” 이를 의도적으로 ‘나 같은 죄인’으로 이 ‘보잘것없는 자’에게 이 귀한 사명을 맡기신 이유가 있었다. 오직 주만 바라고 찬송하게 하시려고,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27-29).”
일곱째, 주는 우리보다 항상 앞에서 걸으신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출 34:6).” 우리는 모두 사는 오늘이 처음이다. 생의 시작부터 끝나기까지 오늘은 언제나 처음이고, 내일은 항상 두려움과 같이 미지에 가려져 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신 4:31).”
이와 같이 올해도 믿음의 시련은 우리로 인내하게 할 것이고, 인내는 연단을 통해 소망을 알게 할 것이고, 죽을 때까지 우리를 미혹하는 영은 우리로 주를 바라고 그의 도우심을 바라게 할 것이며, 우리에게 영생의 경계를 들을 수 있는 귀를 열어주심으로, 우리가 마땅히 가야할 길을 걷게 하시고, 더욱 주를 신뢰함으로 범사에 주를 인정하는 자로 살면서, 이 땅에서 먹고 사는 일에 연연하기보다 영생을 사모하여 구원이 자라가고, 그 여정을 주는 우리보다 항상 앞서 걸으시며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그렇게 하여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시 22:27-28).” 하는 말씀에서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고 크시다는 사실을 재차 확신하며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시고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시 117: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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