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모든 높은 자를 내려다보며 모든 교만한 자들에게 군림하는 왕이니라
욥기 41:34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시편 39:6-7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리워야단 흔히 악어와 같은 위용을 통해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말씀하고 계신다. 통제 불능과 무능력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상대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전 7:13).” 하시는 말씀을 되새기게 한다. 우리가 넘볼 수 없는 위용 곧 창조주의 초월적인 능력을 알게 하신다.
곧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그 능력의 한계가 없으시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을 능가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인간의 통제 밖의 그것 “이제 소 같이 풀을 먹는 베헤못을 볼지어다 내가 너를 지은 것 같이 그것도 지었느니라(욥 40:15).” 순한 하마도 지으셨고 사나운 악어도 지으셨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사 45:7).” 그 하나님은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창 1:4-5).” 모든 게 주의 것이다.
욥은 이를 자신의 고난에서 찾고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욥 2:10).” 저는 알고 있었다. 이를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베드로는 권하였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2-13).” 이를 통하여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알게 하신다.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신 32:39).”
그러므로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삼상 2:6).” 곧 하나님은 못하실 게 없는 존재이시다. 이를 우리가 확신할 때, 요셉은 그 어떤 처지에 놓일 때도 주를 바라였고 훗날에 고백하기를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창 45:8).” 때론 그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납득이 어렵기도 하다. “여호와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는 주께서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렘 12:1).”
그런 하나님이 우리와의 관계에서 사랑을 전제로 하셨다. 하여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이를 안다는 것은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늙으신 장모는 문득 생각난 듯 고백하였다. 자신이 열 살 때 동무 따라 새문안교회를 다녔었는데, 그때 부른 찬송이 ‘예수여 예수여 나의 정신에 오셔서 나로 주께 정결하게 하소서.’ 하는 한 소절의 찬송을 읊조렸다. 그러던 것이 6. 25 동란을 맞고 피난길에 부모를 잃고 세 자매가 뿔뿔이 흩어져 친척집에 살게 되었던 일과 어쩌다 자신은 우상을 숭배하는 가장 어른인 이모님 댁에 맡겨지고 일흔다섯 해 동안 우상숭배를 돕는 자로 살았으니, 돌이켜 늘 찬송하게 되는 것이
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죄 사함받고
주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
(새찬송가 438장).
하는 찬송이 늘 마음에 넘친다고 하였다. 어느 생인들 질곡 없이 순탄하였겠나만 때론 길고 긴 장모의 옛날이야기는 그 모질었을 세월이 모래를 입에 문 것처럼 텁텁하다. 그러니 나는 저의 이러하였던 세월이 그저 그러하였던 기구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에 이르러 더욱 주의 은혜가 크고 귀하다는 사실을… 이에 찬송과 영광이 더 크고 귀하다는 사실을…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그런 와중에도 우릴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 긴 세월 동안 그럼에도 주가 함께 하셨음을… 나는 늙으신 장모의 회환을 끊기 뭐하였지만 단순히 ‘그랬었지……’ 하는 그리움이 아니라, 그 가운데 하나님이 언제나 동행하고 계셨음을 알게 하고 싶었다. 모든 게 주의 것임을,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 2:8).”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남은 목숨까지도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 12:20-21).”
그래서도 우리로 장모의 남은 생을 같이 살게 하셨구나, 하는 생각을 요즘은 많이 한다. 우리 생이 어떠하였든지, 하여 그 일이 만족스럽든지 후회만 가득하든지,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 11:35-36).” 하시는 말씀 앞에서 두 손을 든다.
우리를 향하신 주의 인자하심이란… 죽음을 이기심으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엡 1:20).” 이는 승리 가운데 죽음을 삼키셨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2:5).” 곧 하나님의 우편에 앉게 하셨다.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1:20).” 이로써 우리도 그리하셔서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2:6).”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도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셨으니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1:25).” 우리의 씨름도 더는 이 땅의 혈과 육이 아닌 것을,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6:12).”
나는 에베소서를 통하여 장모의 모질고 긴 세월을 반추하여 그만큼 주의 사랑이 넘치고 크신 것은 그 모든 것을 십자가로 이기셨음을 설명하였다.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골 2:15).” 우리를 짓누르고 통치하고 다스리는 권세들로부터 승리를 거두신 아버지께서 모든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시고, 그 만물 위에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의 머리가 되셨으니 “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1:22).” 오늘 우리가 교회를 섬기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를. 이는 결국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다.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19).”
나는 어쩔 수 없이 늘어지는 장모의 이야기와 그 회환을 끊고 이제 우리로 만물 안에서 만물로 충만하게 하심을,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23).” 이 복된 영광의 날이 고작 이 땅의 시간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영생을 이루며 사는 복의 복인 것을……. 말씀을 설명하다 어머니의 길고 긴 옛 이야기를 듣다 다시 말씀으로 돌아볼 때의 그 긴 세월의 모질었던 날들 동안에도 주가 함께 하시고 오늘에 이르러 이 귀한 축복의 날들로 영생을 누리게 하셨음을…. 세상이 아무리 어떠하였다 해도,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 55:7-9).”
이 은혜가 얼마나 크고 귀한지.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하며 부르는 노모의 구슬픔이 도리어 감사와 환희의 찬송이 되었다. 이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불이 붙으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시 39:3-4).
그리하여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 곧 우리가 누리는 오늘의 이 은혜가 얼마나 귀할 따름인지.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 1:24-25).”
곧,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5).
부디 이를 앎으로,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90:10).
그 일흔다섯 해를 합쳐 곧 아흔인 장모의 긴 세월이 돌아보니 신속히 날아갔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어떠한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인생은 그러하였으나 우리에겐 영생을 주셨다. 그 날들은 예전의 슬펐던 것을 말끔히 씻을 것이다.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3-4).”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6-7).
더는 지난날이 슬프거나 노엽지 않다. 후회되거나 아쉬울 것도 없다. 오직 그때를 돌아보면,
주의 진노로 말미암아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말미암아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
내가 우매한 까닭이로소이다
(38:3, 5).
그러나 이제는,
나를 모든 죄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서
욕을 당하지 아니하게 하소서
…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
(8, 12).
오직 주만 바라고 따라갈 것을. 이는 주께서 이루실 것임을 이젠 알았기 때문이다.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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