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12 주일
시 122편
잘 짜여진 예배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3 예배]
시 122:1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시 122:2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시 122:3 예루살렘아 너는 잘 짜여진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시 122:4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시 122:5 거기에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의 보좌로다
시 122: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시 122:7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시 122:8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시 122:9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들어가는 말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1-12).”
교회는 여러 다양한 사람이 각각의 재능과 성격과 환경과 여건을 달리하면서도 하나로 모인 그리스도의 지체다. 결국 교회는 “내가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잃어 버리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23:4).”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자녀들로 양육하고 성장시켜,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하는 목적을 가졌다.
<열한가지의 예배의 목적과 예배를 향한 여정>
첫 번째, 예배는 말씀으로 하나 되게 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두 번째, 예배는 우리의 능력이 된다.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말 3:16).”
세 번째, 예배는 서로 섬기는 일이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7).”
네 번째, 예배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사는 일이다.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그리하여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 네가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신 4:9).”
다섯 번째, 예배는 찾으시는 이의 찾음을 받은 일이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
여섯 번째, 예배는 하나님의 영광이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일곱 번째, 예배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증거다.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사 43:6-7).”
여덟 번째, 예배는 하나님의 기이한 일을 아는 것이다. “우리의 조상들이 애굽에 있을 때 주의 기이한 일들을 깨닫지 못하며 주의 크신 인자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바다 곧 홍해에서 거역하였나이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구원하셨으니 그의 큰 권능을 만인이 알게 하려 하심이로다(시 106:7-8).”
아홉 번째, 예배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이다.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사 48:9).”
열 번째, 예배는 영생의 시작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열한 번째, 예배는 복음에 대한 복종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 1:8-9).”
본문이해
순례자의 길에서 시편 120편 ‘회개’와 121편 ‘신뢰’에 이어 오늘 122편 ‘예배’로 이어지는 여정은 하나의 길이다. 시적 배경은 ‘다윗이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고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신 후에 <영원한 영광을 소망하며 부른 노래>이다. 곧 ‘여호와의 집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표제를 삼을 수 있다. 시적구성은 3연으로 1연(1절)은 순례의 길이 멀고도 험한 길이나 잘 떠났다는 안도와 만족을 표출하고, 2연(2-5절)은 우리가 하나 되어 하나님께 예배함으로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음을 암시하고, 3연(6-9절)은 예루살렘 곧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전이 있는 곳에서 우리의 영원한 평안과 형통이 이루어지는 것을 알려준다.
예배는 영원한 안식의 전부다. 우리의 평강과 형통이 예배에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성을 향하는 여정에서 예배는 온전하게 예배하는 자들로 우리를 성장시킨다. 곧 우리의 예배는 그리스도의 장성하신 분량에까지 자라게 한다. 성전을 향해 올라가는 이유는 예배하기 위한 것이고, 예배를 통해 영원한 예배로 들어가는 길이다. 순례자의 길에서 예배란 무엇인가?
1. 예배로 나아가는 길에서 예배의 기쁨을 먼저 느낄 수 있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1).”
예배는 단순히 주일 날 모이는 시간만이 아니다. 성도 간의 모임도 예배다. 서로 문안하는 것도 예배다. 주의 이름으로 하는 모든 것은 예배다. 예배가 없으면 우리 영혼에 기쁨도 없다. 형식적으로는 친절할 수 있으나 친밀한 기쁨은 아무하고나 나눌 수 없다. 예배가 빠진 그리스인의 모임은 사교적이다. 예배가 없는 섬김은 자기만족이다. 예배가 없으면 우리의 일상은 허무하다. 예배가 없는 공동체는 헛되다.
예배는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우리 삶의 틀이다. 예배 없는 영광은 없다. 예배 없는 영생은 없다. 예배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다. 하나님 없이는 살 수가 없다는 것을 예배를 통해 알게 된다. 예배는 우리의 모든 결정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데 집중시킨다. 예배는 여호와의 집, 교회를 중심으로 확산한다. 누가 우리에게 교회 다닌다, 하면 우린 기뻐한다. 저를 신뢰할 수 있다.
2. 예배는 우리 생활의 조화다.
1) 교회는 예배하는 곳이다.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예루살렘아 너는 잘 짜여진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2-3).”
우리가 교회로 모이는 것도 영적으로는 예루살렘이다. 장차 들어갈 영원한 하나님의 도성을 예시한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짜여진 성읍 같다. 예배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준다. 슬픈 자에게 기쁨을, 근심하는 자에게 평안을, 기뻐하는 자에게는 영구적인 희락을…. 예배는 우리 영혼의 허기를 채우고 목마른 영혼을 달랜다. 예배는 상처받은 심령을 위로한다. 새 힘을 얻고자 하는 영혼에는 주의 권능을 제공한다. 예배는 우리가 서로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잘 짜인 성읍’과 같이 하나가 된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0).” 이것이 우리를 ‘창세전에 이미 택정하시고 예정하신 부르심의 목적’이다(4-6). 이에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21-22).” 그래서 우리는 흩어져 살면서도 각자 그 삶 가운데서 예배하는 자들이다. 주일에 교회에 모여 예배하고, 잘 짜인 도성과 같이 각자의 생활에서 일상을 예배로 산다. 그렇게 우리의 생활 속에서 천국은 확장된다.
2) 예배는 심판의 보좌이다.
“거기에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의 보좌로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5-6).”
누구도 예배를 강제할 수 없다. 하나님도 이를 강제하지 않으신다. 예배는 명령이다. 하나님은 찾으신다.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 누구는 복종하고, 누구는 불복종한다. 어거스틴은 말하길, ‘그리스도인이라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할렐루야다.’ 예배에서 우린 슬픈 일에 기도하고, 기쁜 일에 찬송한다.
일상은 주어진 날을 예배다. 하루하루가 예배가 되어 반응한다. 어제와 다른 나로 산다. 모든 게 다 예배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예배이어야 한다. 저의 사연이 나로 주께 감사하게 한다. 혹은 호소하며 기도하게 한다. 어떠하든지, 우리는 주를 생각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며 하루를 예배로 산다.
예배란 주의 심판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예배를 멀리하거나 모를 때는 심판의 보좌는 두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에게는 예배가 있음으로 은혜의 보좌이고, 긍휼하심의 보좌이고, 우리의 애통함을 아뢰고 그에 따른 판결이 이루어지는 심판의 보좌다. 그러므로 이제 우린 예배로 심판이 보좌 앞에 선다.
3. 예배는 평안과 형통이다.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7-8).
주의 심판의 보좌 앞에서 우리는 평안하다. ‘내 영혼, 평안해’ 하는 찬송과 같이 예배는 우리의 형통함이다. 무슨 일에든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대언자시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그러므로 우리는 무서운 보좌 앞에서나 불통의 시대에도 형통하며 평안하다. 오늘 시편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시 122:9).” 하여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신다(전 2:26). 곧 우리가 사는 땅에는 영구적인 평안과 형통함은 없다. 솔로몬은 이를 ‘바람을 잡는 일’처럼 헛되다고 하였다.
결론은 우리가 잘 짜여진 성읍 같이, 우리는 예배를 살고, 일상은 예배가 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잘 짜여진 예배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한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 12:5).” 하는 말씀을 이루어 “평안이 있을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8).” 우리는 오늘도 예배로 산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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