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129 주일
시편 120편
순례자의 첫 걸음, 회개
시 120:1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시 120:2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
시 120:3 너 속이는 혀여 무엇을 네게 주며 무엇을 네게 더할꼬
시 120:4 장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로뎀 나무 숯불이리로다
시 120:5 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 중에 머무는 것이 내게 화로다
시 120:6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주하였도다
시 120:7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
들어가는 말
밤길 운전에서 가장 불빛이 필요한 순간은 분기점에서다. 분기점은 하나의 길에서 하나 이상의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지점이다. 인생여정에서 우린 의외로 이와 같은 분기점을 자주 만난다. 순간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모든 여정이 뒤섞이기도 한다. 가령 가인은 아벨을 죽이려 할 때 하나님은 앞서 경고하셨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 4:7).” 이 분기점은 분명 살인 전의 일이었다.
또는 모든 권세를 가진 요셉 앞에 원수인 형들이 섰다. 복수를 할 수 있는 기회다. 아버지 야곱은 죽었다. 자신에겐 그럴 수 있는 권세가 있다. 저는 말한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창 50:20-21).” 하고 저는 복수할 수 있는 분기점에서 오히려 환한 불빛에 형제들을 간곡하게 위로하였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 분기점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4).” 하고 성경은 요구하신다. 이를 그럼 어떻게 이행할 수 있을까?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 그 표지판은 선명하여서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 결국 우리가 가야할 길의 방향을 알게 한다. 이는 확실하여서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5).” 주님은 우릴 위해 기도하신다.
본문이해
오늘 시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열세 편의 시 중에 첫 번째 시이다. 시적배경은 에스라 본문의 시대로 바벨론 포로귀환 후에 ‘독려와 권면의 노래’다. 오늘 시편의 주제는 ‘회개’다.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 곧 천성을 향한 우리의 순례에서 첫 걸음은 회개이다. 이는 첫 구절에 담긴 내용으로 기도와 함께 이어지는 회개의 걸음걸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시적구성은 모두 3연으로 1연(1절)은 기도만이 순례자의 길에서 여러 번의 분기점마다 알림판으로 세워진 표지가 무엇인가를 알게 한다. 2연(2-4절)은 문답형식으로 이뤄졌다. 우리를 수렁에 빠뜨리려는 악의적 회전에서 끝내 악은 무너진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3연(5-7절)에서는 우리가 당도할 저 천성의 평화를 방해하는 것과 맞서 싸워하는 것을 밝힌다.
우리는 오늘 믿음의 순례 여정에서 필연적인 기도와 회개를 중심으로, 어떠하든지 길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살펴보고자 한다.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첫 걸음은 회개다. 그렇다면 <회개의 3요소>는 무언가?
1. 우리로 기도하게 하는 요소는 환난에서다.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120:1).”
우리는 실상 순순히 주를 바랄 수 있을까? 성경은 우릴 가리켜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곧 우리를 양 무리로 비유하셨다. 양은 다른 짐승에 비해 생존능력이 떨어진다. 순하다 못해 게으르다. 서로 밀집하여 화를 자초한다. 그래서 목자는 개나 염소를 우리 안에 같이 둔다. 개는 짖으며 쫓고, 염소는 들이받는다. 양들로서는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래서 건강할 수 있다. 이에 우리에게는 환난을 두신다. 하여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바울은 이를 알았고, 이사야는 그와 같은 연단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사 48:10).” 그리고 당연히 이를 감당할 수 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베드로는 이를 시험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벧전 1:6).” 우리는 환난으로 주께 부르짖는다.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시 18:6).” 다시 말해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118:5).” 어려움으로 부르짖을 때 주의 응답을 듣는다.
독수리는 새끼 독수리가 날갯짓을 하도록 절벽 아래로 떨어뜨린다. 새끼는 바닥으로 떨어지다 날개를 편다. 비로소 자신이 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약 5:13).” 이것은 우리로 기도하게 한다.
2. 악의로 죄악이 가득할 때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아 주께 고한다.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 너 속이는 혀여 무엇을 네게 주며 무엇을 네게 더할꼬 장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로뎀 나무 숯불이리로다(2-4).”
회개 없는 기도는 요구조건만 잔뜩 늘어놓는 청구서 같다. 실제 우리는 악하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약 3:6).” 우리에겐 세 치 혀를 다스릴 능력이 없다.
오늘 시인은 이를 회개한다.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 대하여, 우리가 환난 중에 가장 먼저 놀리는 게 혀다. 원망을 하고 탓을 한다. 순간 말이 밖으로 나오면 이는 분을 더하고 화를 돋운다. 마치 “북풍이 비를 일으킴 같이 참소하는 혀는 사람의 얼굴에 분을 일으키느니라(잠 25:23).” 그러해서 둘째 사망이 목전에 있는 줄도 모른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8).” 이 모두는 스스로들 자처하는 일이다.
우리는 삼가 또 조심하여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시 39:1).” 곧 스스로가 본래 어떠한 존재인가를 인식하고 이를 인정함으로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에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들이여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사 52:11).” 스스로 자신을 점검하고 돌아보아야 한다. 이를 인정하지 못할 때 누구라도 세상을 사랑한다. 세상의 악의적인 것을 대수롭지 않은 듯 받아들인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9).” 이에 우리는 아침저녁으로 씻듯이 매순간 회개를 해야 한다.
3. 아무리 분기점이 어지러워도 우리 가는 순례의 길을 멈춰서는 안 된다.
“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 중에 머무는 것이 내게 화로다(5).”
메섹은 팔레스타인 쪽 남러시아 종족이고 게달의 장막은 이스라엘 변방에 살던 야만족들이다. 이것은 어둠을 의미한다. 실제 게달의 장막은 한낮에도 캄캄하다. 내포하는 의미는 난폭적이다. 야만적이고 몰염치하다. 세상의 문화는 복수다. 자기 안의 노여움을 풀지 않는다. 원한은 쌓여가고 두터워져 은혜의 물결이 스며들 틈이 없다. 복수가 출세와 성공의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과거의 기억으로 모든 고통은 가중된다. 어떤 일에 지나치게 열중한다. 현대인의 대다수가 일 중독자들이다. 또한 적대감이 클수록 자신을 견디기 수월하다. 지긋지긋하였다면 가난으로 부자가 되는 사람들도 있고, 무시당한 기억으로 권위적인 사람도 있다. 모두는 복수하는 일에 꺼리길 게 없다. 세상은 이를 부추긴다.
그러나 “네 길을 그에게서 멀리 하라 그의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 두렵건대 네 존영이 남에게 잃어버리게 되며 네 수한이 잔인한 자에게 빼앗기게 될까 하노라(잠 5:8-9).” 재벌가에 자살자가 많고 공부 잘하는 아이 중에 이기적인 사람이 많다. 돈이 전부가 아니고 최고가 좋은 것은 아니다. 어느덧 우리는,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주하였도다(시 120:6).” 그러는 사이 저들의 습성이 물들었다. 돈이 전부이고, 권세와 명예가 으뜸이다. 자존심이 상하면 보복을 하려하고, 수치를 당하면 죽고 싶다. 부유층에 우울증 환자가 많고, 수면제나 독한 술이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저들은 이런 자신들의 문제에 어떻게 반응할까? “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7).” 그저 억울하다. 이 놀랍지도 않은 반응이 이제는 자연스럽다.
나오는 말
“내가 내 집 들창으로, 살창으로 내다 보다가 어리석은 자 중에, 젊은이 가운데에 한 지혜 없는 자를 보았노라(잠 7:6-7).”
언제 어떻게 우릴 유혹하여 끌고 갈지, 사탄은 틈을 본다. 그러다 분기점에서 잠시 방심할 때 길을 잃듯이 “그 때에 기생의 옷을 입은 간교한 여인이 그를 맞으니(10).” 아차, 하고 정신을 차렸을 땐 “그가 거리를 지나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하여 그의 집쪽으로 가는데, 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에라(8-9).” 그 순간 우리가 돌이켜 회개하려 하나,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함으로 희락하자(18).” 하는 사탄의 유혹은 달콤하기만 하다. 부디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성경은 간곡하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하고 우리의 분기점마다에 표지판을 세웠다. 그리고 외쳐 우리를 부르며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사 52:11).”
우리는 ‘복 있는 사람들’로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 1:1-2).” 예수님은 이에 우리에게 가르치셨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주가 내 안에 내가 주 안에 거해야, 우리 영혼은 산다. 가지는 나무에서 수액을 공급받지 못하면 금세 죽는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8:31-32).”
우리 순례의 첫 걸음은 회개이고 이를 딛고 설 수 있는 길은 말씀에서다. 그러므로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요일 2:24).” 우리가 들은 것,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7).” 우리로 회개하는 세 가지 요소는 환난에서와 악의를 보고 분개할 때와 저 천국을 향해 나아갈 때이다. 우린 날마다 천성을 향해 나아가는 순례자들로서, 오늘도 끝나지 않은 길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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