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보라 이번에 그들에게 내 손과 내 능력을 알려서 그들로 내 이름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예레미야 16:21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시편 16:2
하나님은 ‘이 땅’에서 결혼과 출산을 금하신다. 가족이 죽어도 슬퍼하거나 매장할 자가 없음이다(1-4). 다음은 초상집에 가는 것과 애곡하는 것을 금지하신다. 이는 모든 집이 초상집 같고 죽은 자가 넘쳐날 것이기 때문이다(5-7). 그리고 잔칫집에 가는 것을 금하신다(8-9). 유다에 웃음소리가 사라지고 신랑신부의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될 것이다. 상징적이나 함축적으로 이 세 가지 금지령은 저들이 악행으로 자초한 일이었다.
이와 같은 일은 조상의 때부터 있었고 이를 알리려고 이사야는 3년 동안 벗은 몸, 벗은 발로 살며 애굽을 의지하던 유다의 수치를 알려야 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하시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니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종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징조와 예표가 되었느니라(사 20:2-3).”
또한 에스게은 좌편으로 또는 우편으로 누운 날 수에 따라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당할 징계의 날 수를 알리었다. “너는 또 왼쪽으로 누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짊어지되 네가 눕는 날수대로 그 죄악을 담당할지니라 내가 그들의 범죄한 햇수대로 네게 날수를 정하였나니 곧 삼백구십 일이니라 너는 이렇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고 그 수가 차거든 너는 오른쪽으로 누워 유다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라 내가 네게 사십 일로 정하였나니 하루가 일 년이니라 너는 또 네 얼굴을 에워싸인 예루살렘 쪽으로 향하고 팔을 걷어 올리고 예언하라 내가 줄로 너를 동이리니 네가 에워싸는 날이 끝나기까지 몸을 이리 저리 돌리지 못하리라(겔 4:4-8).”
오늘 본문을 보다, 세상 어떤 일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바른 삶이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묵상하게 되었다. 이를 알리려 예레미야를 인륜대소사에 금족령을 내려 고립시킨 이유는 사회적 타락과 영적 상실의 시대를 알리려 하심이었다. 곧 우리가 주의 일을 바라고 사명자로 산다는 것은 인생의 그 어떤 대소사(大小事)보다 하나님을 우선하는 믿음으로 사는 일이겠다. 가령 노아의 때에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장가가고 시집가며 출산하고 장례하고 잘들 살았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전까지도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흥에 겨워 살았다. 이에,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 24:37-39).”
결국 갈 데까지 간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되새기게 된다. 노아의 때나 오늘이나, 예레미야의 때나 이사야, 에스겔 때나 다를 게 없는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이러한 때에 주를 알고 주를 경외함으로 자신을 돌보고 위하여 주를 바라는 신앙은 귀하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 21:18).” 그야말로 나의 날들이 그러하였음을, 그러나 이제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하는 고백이 나의 것, 우리의 것이 되기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누릴 때 현실은 어떠하다 해도 우리 안에는 평안이 있다. 이는 언약에 따른 것으로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사 32:17).” 이를 안다면 가장 어리석은 생각이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눅 12:19).” 모든 게 다 잘 될 거라 위로하며,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 5:3).” 이를 대비하는 사람들이 믿는 자들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
그의 영혼은 평안히 살고
그의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시 25:12-13).
이와 같은 약속의 말씀으로 산다. 성경은 예언이다. 사람들이 무엇을 봤다, 들었다 하는 소리가 예언이 아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 우리 모두는 정답을 알고 있다. 이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거나 인생의 대소사는 끝도 없고, 생사화복은 거듭된다. 할 때에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잠 1:32-33).” 하여 성경이 제시하시는 바를 바로 알고 이를 느긋하게 또한 분명하게 명심하고 살 수 있다면,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사 26:3-4).” 우리 또한 바람에 나는 겨와 다를 바 없이 요동할 때가 있으나,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55:22).
말씀을 보고 나를 돌아보고 주위를 살필 때, “그러나 우리가 당한 모든 일에 주는 공의로우시니 우리는 악을 행하였사오나 주께서는 진실하게 행하셨음이니이다(느 9:33).” 이를 인정함으로 우린 우리의 실체를 숨기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재앙을 간직하여 두셨다가 우리에게 내리게 하셨사오니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이 공의로우시나 우리가 그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단 9:14).” 주를 인정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이고, 이를 인정한다는 것은 주의 공의와 긍휼하심을 바람이어서,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신 32:4).”
그리하여,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3-14).”
이는,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고전 7:29-31).”
곧 우리가 하나님을 우선하는 삶이라 일상을 살며 일상 위의 일상으로 사는 것이다. 하여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눅 21:34-36).” 스스로 조심한다는 것, 이것은 불안도 강박도 아닌 주를 바라는 자로 사는 길의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처사였다. 그럴 수 있는 것이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 3:13-14).”
곧 우린 무엇을 위해 사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오늘 본문은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 조상들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서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나를 버려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였음이라(11).” 곧 우리가 늘 그래왔던 것으로 사사로이 여기는 죄의 온상이 우리 가정에서 이어지고 있었고 사회전반의 의식을 사로잡고 있었다. 이제라도 이 끈을 끊으려면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들의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이는 그의 손으로 행한 대로 그가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사 3:10-11).”
아닌 건 아닌 거고, 악은 악이다. 악을 선하다 하고 선을 악하다 하는 세상에서,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겔 3:18-19).”
곧,
“여호와 나의 힘, 나의 요새, 환난날의 피난처시여 민족들이 땅 끝에서 주께 이르러 말하기를 우리 조상들의 계승한 바는 허망하고 거짓되고 무익한 것뿐이라(렘 16:19).”
같은 이야기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를 바라는 고백은 있었으니, “사람이 어찌 신 아닌 것을 자기의 신으로 삼겠나이까 하리이다.” 할 때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보라 이번에 그들에게 내 손과 내 능력을 알려서 그들로 내 이름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20, 21).” 아무리 세상은 어떠하다 해도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 곧 내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 여호와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있음이니라(민 35:34).” 하심을.
이에 우리의 진정한 복은,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16:1-2).
이러한 고백이 아무나의 것이 아니었다는 데서 새삼 감사와 영광을 올린다. 곧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그러할 때에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34).” 우리의 염려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 13:15).”
다들 참 아등바등 사는 것이 안타깝다가도 한편으로는 경이롭기도 하다. 이는 우리가 이 땅을 사는 동안 성도로 취할 것이,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3).
주의 즐거움으로 사는 일,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5).
고로,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6).
종종 누구의 사연을 듣고 어떤 일로 힘겨워하는 저를 위해 기도하다, 나의 날이 줄로 재어 주신 구역에서 실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도 된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애 3:24).” 늘 진통제를 먹고 안정제를 달고 살아내는 하루이나 그러는 가운데서 ‘내가 그를 바람으로’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 되신다. 곧 내가 사는 이유와 목적이고, 주를 바람으로 모든 형편과 사정은 단순해진다. 그러므로,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7-8).
이 놀라운 남다름, 나누어주신 구역에서,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9-10).
이로써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 13:17).” 고로,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11). 아멘.
'[묵상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0) | 2023.05.22 |
---|---|
주여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 (0) | 2023.05.21 |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0) | 2023.05.19 |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옵소서 (0) | 2023.05.18 |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0) | 2023.0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