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전봉석 2023. 6. 10. 05:54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으니 이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유다 땅의 왕으로 삼음이었더라

예레미야 37:1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시편 37:23-24

 

 

시드기야는 바벨론 왕에 의해 여호야긴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이때에 바벨론의 지배에 항거하지 말고 복종하라 하셨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결국 바벨론의 4차 침공을 받게 되었다. 애굽을 의지하고 저들의 도움으로 어찌 회생할까 하였다. 당시 애굽은 어느 때보다 쇠약하였다. 결국 이듬해 B. C. 586년에 바벨론은 예루살렘을 함락하였다.

 

주의 말씀을 흘려들을 때 그의 성취를 보지 못한다. 이에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18).” 곧 말씀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사라지지 않는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눅 1:37).”

 

결국 믿음이 없이 구하는 간구는 효력이 없다. 하나 실제 삶에서 주의 도우심을 구하고 다른 어떤 희망이 없을 때,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눅 5:5-6).” 말씀에 의지하여 한다는 것.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약 1:6-7).”

 

말씀을 보고 기도를 하면서도 어떤 의심, 단지 막연한 불안으로는 온전하게 주를 바랄 수 없다. 사람 마음이 한 겹이 아니어서 마음은 원이지만 육신으로는 약하다. 본문의 이런저런 역사적 사실을 읽을 때마다 당시 유다 백성의 선택이 쓸려 다니는 안개 같았음을 이해한다. 마치 우리나라가 강대국에 쓸릴 수밖에 없는 것처럼,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가 보는 자신의 마음에서도 알 수 있겠다. 죄란 끔찍한 어떤 짓이 아니라 작은 회의와 갈등에서 오는 의심으로 주를 온전히 바라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불안증이 그러한 약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나는 이러한 나를 알면 알수록 나의 나 됨을 회의한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시 145:18-19).

 

하여 나는 항상 시편의 세계를 살고자 한다. 주께 아뢰고 부르짖고 의지하며 찬양하고 자복하는,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37:1-2).

 

우리로 끝에서는 웃게 하실 것을 안다. 악인들의 결국은,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73:18-20).

 

영원한 멸망에 대하여,

 

악인들은 풀 같이 자라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이다

(92:7).

 

오늘 본문에서 시드기야의 결국을 알면서 읽다보니 저의 어쩔 수 없는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가 안타깝기만 하다. 유다가 어찌 이 지경이 되었나? 하고 생각하다 저들의 처음이 자신들에게도 다른 나라처럼 왕을 구하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을 지나 다윗과 솔로몬 이후 분단되어 서로의 왕에 의해 같은 민족까지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 외세의 침략에 저들은 온전히 하나님을 구할 수 없었다. 자신들이 세운 왕에 의해 좌지우지 될 뿐이었다. 이에 사무엘은 분명히 슬파하며 그러할 것을 전하였었다.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삼상 8:6-7).”

 

하여 사무엘은 저들이 청한 그 왕으로 인하여 어떤 일이 있을지, “이르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11-13).” 그러나 듣지 않고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19).” 별 수 없는 것이다. 이에 오늘에 이르러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남유다는 바벨론에 멸망하기까지 저들은 자신들이 세운 왕에 의해 그와 같은 처지를 당하여야 했다.

 

“자기들을 사로잡아 간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주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과 주께서 택하신 성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 있는 쪽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보시오며 주께 범죄한 주의 백성을 용서하옵소서(대하 6:38-39).”

 

이에 오늘 시편의 세계에서,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37:1-2).

 

이는 하나님의 백성도 예외일 수 없다. 자신이 누구인지 바로 알지 못할 때, “악인의 등불이 꺼짐과 재앙이 그들에게 닥침과 하나님이 진노하사 그들을 곤고하게 하심이 몇 번인가 그들이 바람 앞에 검불 같이, 폭풍에 날려가는 겨 같이 되었도다(욥 21:17-18).” 그에 따른 결국은 예외가 없다.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 그 말씀을 준행하며 산다는 일은,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3).

 

이를 실제 생활에서 그리 여기며 주께 모두 맡기며 산다는 것은,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잠 23:17-18).” 세상에 살며 세상을 부러워하지 않고 저들을 따라하지 않기란……. 이를 위하여,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5-6).

 

이에,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6-7).

 

이 삶의 지침은 어려우나 쉽다. 쉬우나 어렵다. ‘남들처럼, 남부럽지 않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야 인지상정이고, 그러나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10).

 

악이란 그 끝을 보면 된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11).

 

곧,

 

악인이 의인 치기를 꾀하고

그를 향하여 그의 이를 가는도다

그러나 주께서 그를 비웃으시리니

그의 날이 다가옴을 보심이로다

(12-13).

 

이러한 말씀의 세계가 우리로 옳은 길을 가게 한다. “악인이 이긴다는 자랑도 잠시요 경건하지 못한 자의 즐거움도 잠깐이니라(욥 20:5).” 그러하다면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우린 무얼 바라야 하는지….

 

어제는 한의원에 갔다. 추나요법으로 척추교정을 하고 앞서 어깨 결림과 뭉친 곳들을 침으로 다스렸다. 의원은 이런저런 몸의 실정을 말하고 나는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서러웠다. 오후께 가정예배를 드리며 늙으신 장모와 나눈 말씀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날로 새로워지는 속사람은 어떠한지? 나는 장모에게 묻는 것 같았지만 나 자신에게 되물었다. 이를 묻고 돌아볼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다. 돌아볼 속사람이 없어 날로 새로워질 것도 없는 그 끝은 끔찍하겠다. 이런저런 진단과 의원의 소견은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절망처럼 들리게도 하지만 주신 날 동안 주를 바라고 산다는 일,

 

여호와께서 온전한 자의 날을 아시나니

그들의 기업은 영원하리로다

(18).

 

이를 붙들고 살 수 있다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23-24).

 

나는 오늘 시편으로 산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25-26).

 

하여,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잠 3:5-7).”

 

그리하여,

 

여호와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똑똑히 보리로다

(34).

 

말씀 앞에 가만히 나를 앉히고,

 

온전한 사람을 살피고 정직한 자를 볼지어다

모든 화평한 자의 미래는 평안이로다

의인들의 구원은 여호와로부터 오나니

그는 환난 때에 그들의 요새이시로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도와 건지시되

악인들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까닭이로다

(37, 39-40).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