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시편 135편 /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전봉석 2023. 6. 11. 06:57

230611 주일

시편 135편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시 135:1 할렐루야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여호와의 종들아 찬송하라

시 135:2 여호와의 집 우리 여호와의 성전 곧 우리 하나님의 성전 뜰에 서 있는 너희여

시 135:3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의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들어가는 말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20).”

 

기도하는 자에게 응답하시고 크고 은밀한 일을 알게 하신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사 다니엘과 친구들이 바벨론의 다른 지혜자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시기를 그들로 하여금 구하게 하니라 이에 이 은밀한 것이 밤에 환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니라(단 2:18-19).”

 

흔히 우린 무엇을 구할 때 기도한다. 구하는 것은 믿음을 가진 자로서 가장 기본적인 자세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 그러나 이에 앞서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이는 어떤 단서나 조건이 아니라 기도의 기본 수칙과 같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2-3).” 오늘 본문의 핵심이다.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 시편은 열다섯 편의 <순례자의 노래>에 따른 에필로그 같다.

 

곧 모든 신들(사람이 그리 불러 섬기는)보다 높으신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라’ 한다. 본문 5절,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께서는 위대하시며 우리 주는 모든 신들보다 위대하시도다” 할 때, 다음 주일에 본문으로 삼을 136편에서도 동일하게 “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주들 중에 뛰어난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2-3).” 하고 연결된다.

 

다시 말하면 오늘 시편은 134편의 시와 짝을 이루고 다음 시편인 136편과도 짝을 이룬다.

 

‘할렐루야 시’로 시편 119편과 <순례의 노래> 열다섯 편을 사이에 두고 시편 113편에서 118편까지를 ‘할렐루야 시편’으로 연결한다. 오늘 시편은 ‘감사 시편’이면서 <순례의 시편>이고, ‘할렐루야 시편’으로 여러 각도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이를 보면, 오늘 시편은 창작 시편이라기보다 ‘율법서’와 ‘선지서’와 ‘시편’을 부분적으로 발췌한 것 같다. 물론 그 주제는 모두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라 하시는 이, 우리의 유일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오늘 시편은 크게 전반부(1-3절)와 중심부(13-14절), 후반부(19-21절)로 나뉜다. <순례의 시>에 따른 에필로그이면서 시온을 향해 가야 하는 성도의 ‘찬송 시’와 ‘할렐루야 시’라 하겠다. 이는 곧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선민으로 삼으시고 우리로 찬송하게 하심이다. 이에 전반부, 중반부, 후반부를 중심으로 ‘그 이름의 의미’와 ‘우리의 찬송의 의미’를 살펴보겠다.

 

1. 전반부: 그의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할렐루야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여호와의 종들아 찬송하라 여호와의 집 우리 여호와의 성전 곧 우리 하나님의 성전 뜰에 서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의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135:1-3).”

 

우리를 창조하신 제일 목적은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시는 것’이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이것 때문에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세상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모두 일시적이다. 더 좋은 것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그 이름’은 우리가 영원히 누릴 좋은 것, 즐거워할 수 있는 복이다.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3).” 그러므로 시편의 세계는 송축의 세계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103:1-2).” 즉 하나님의 경사에 초대되는 것보다 좋은 일은 없다. “찬송하라 하나님을 찬송하라 찬송하라 우리 왕을 찬송하라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송할지어다(47:5-6).”

 

우리가 찬송하는 이유는,

 

첫째, 우리는 여호와의 종들이기 때문이다.

둘째, 우린 하나님의 성전 뜰에 서 있는 자들이다.

셋째,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의 이름은 아름다우시다.

 

그러므로 찬송은 우리 입술의 열매이고 영원히 누릴 즐거움이고 좋고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 13:15).”

 

2. 중반부: 주의 이름이 영원하시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이 영원하시니이다 여호와여 주를 기념함이 대대에 이르리이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며 그의 종들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으시리로다(13-14).”

 

이 땅에 사는 동안 가장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좋은 직정과 권세로 상위 0.1%를 사는 것? 세상에 이름을 떨치며 영광과 찬사를 한 몸에 받으며 사는 것? 이를 가만히 생각해보자. 앞서고 밝힌 것처럼 그 무엇도 영구적이지 않다. 이 땅의 모든 것은 낡고 죽고 사라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왜? 우리의 그 속사람은 영원한 즐거움을 영원히 송축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성경은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9:23-24).”

 

우리가 영구적으로 충만하게, 질리지 않고 무궁히 만족할 수 있는 것은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기뻐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으로 만족할 때 하나님도 우리들로 기뻐하신다. 이를 위하여,

 

첫째,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주를 기쁘시게 하라.

둘째, 모든 선한 일(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에 열매를 맺어라.

셋째, 하나님을 아는 것에 날마다 자라가라.

 

그렇게 할 때,

 

첫째,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신다.

둘째,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신다.

셋째, 우리로 빛 가운데서 천국을 소유하기에 합당하게 하신다.

 

이를 위하여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찬송이다. 이는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골 1:10-12).”

 

3. 후반부: 여호와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이스라엘 족속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아론의 족속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레위 족속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예루살렘에 계시는 여호와는 시온에서 찬송을 받으실지어다 할렐루야(19-21).”

 

우리의 영원한 나라 ‘예루살렘’에 대하여, “여호와는 시온에서 찬송을 받으실지어다 할렐루야” 하는 것이 오늘 시편의 결론이다. 우리가 들어갈 나라에서 우리 각자는 ‘이스라엘 족속’과 ‘아론의 족속’과 ‘레위 족속’으로 모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다. 곧 여기서 지칭하는 그 대상은 우리의 신분과 역할이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이를 살고 있는지? 우리의 신분에 맞는 삶을…!

 

상대적으로 “백성 중의 어리석은 자들”이 있다. 저들로 생각하라 하신다.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도대체 우린 어떻게 지혜로울까? 이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까?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 뭇 백성을 징벌하시는 이 곧 지식으로 사람을 교훈하시는 이가 징벌하지 아니하시랴?” 하고 시편은 묻는다. 그리고 우리의 됨됨이를 아신다.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84:8-11).”

 

우리가 이를 인정하는 것, 회개에서 시작하여 주의 도우심을 바랄 담대함으로 주 앞에 나가는 것이다.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엡 3:12).” 이에 우린 ‘그 이름’으로 영생을 얻는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자인가? ‘그의 이름’을 신뢰하고 의지하는가? 저가 나를 죽이신다 해도 믿는가?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욥 13:15).” 또한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시 63:3).” 이와 같은 고백이 우리 자신의 것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살고 있는가?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게, 겸손이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 17:10).”

 

나오는 말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께서는 위대하시며 우리 주는 모든 신들보다 위대하시도다(시 135:5).”

 

우리는 ‘수많은 신들’에 둘러싸였다. 평소 무의식적으로 우린 오만 가지 잡신들을 섬긴다. 하여 오늘 시편은 ‘그 이름’,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명확히 지칭하면서 “여호와께서 그가 기뻐하시는 모든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 데서 다 행하셨도다(시 135:6).” 그러므로 “열국의 우상은 은금이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15).” 하여 “그의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