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전봉석 2023. 6. 15. 05:02

 

유다의 남은 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를 두고 하신 말씀에 너희는 애굽으로 가지 말라 하셨고 나도 오늘 너희에게 경고한 것을 너희는 분명히 알라

예레미야 42:19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편 42:11

 

 

 

사람의 마음은 이중적이다. 그 갈피를 가눌 길 없다. 유다에 남은 자들은 가야할 길과 해야 일을 알기 위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요청한다. 그 응답이 어떠하든지 그대로 행할 것을 약속한다.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하니라(렘 42:6).”

 

기도를 부탁한 지 십일, 그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었던가? 저들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 것과 애굽으로 가서 의탁하지 말 것을 경고하시는데도 저들은 애굽으로의 이주를 감행하였다. “너희가 나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보내며 이르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에게 전하라 우리가 그대로 행하리라 하여 너희 마음을 속였느니라(20).” 어찌 자신의 마음을 추스를 수 없을 정도로 변심이 오락가락한다. 애굽은 우리가 의지해서는 안 될 대상을 말한다. 과거 애굽의 종 되었던 저들로 돌이켜 주의 은혜로 구속하신 바 있는데, 여전히 그 속에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는 마음이 그러하다.

 

익숙한 것들, 늘 하였던 대로 행하기를 바라는 우리 안의 고질적인 의존성이 우리를 흔든다. 기도를 의뢰하곤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들 뜻대로 결정하기 일쑤인 가운데… 상대적이기는 하겠으나 십일이란 시간이 길었다면 길었을 시간이기는 하겠다. 당장, 성급히 바라는 마음은 예나지금이나 우리의 조급함을 알게 한다. 우리 신앙의 제일 덕목은 기다림으로 아뢰고 그 후 받은 줄로 알고 사는 믿음으로만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그런데 이게 쉽지 않아서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잠 8:34).” 사정이 급하여 당장 무슨 일이 어찌 벌어질지 알 수 없는 때에도,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사 30:18).”

 

하여,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소서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시 85:7-8).

 

하루가 천 날 같을 수 있다. 고통의 무게는 저마다의 것이라 누구도 뭐라 하기는 어렵다. 그런 가운데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이에 우리 신앙의 첫 수련은 기다림이겠다. 곧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합 2:3).”

 

마음이 어려워 생각은 빠르고 시간은 더딜 때, 나는 말씀을 손으로 쓴다. 붓을 들고 먹물을 적셔 글자를 쓸 때면 그 한 자 한 자가 새로운 표정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같은 구절을 여러 번 옮겨 적으면 글자는 표정을 바꾸듯 말씀을 하신다. 기다림은 누구나 어렵다. 더욱이 말에 조급함은 세 치 혀의 농간으로 뜻하지 않은 판단을 이끌기도 한다. 그것이 말로 표현되었을 때 마음은 또 그리고 쓸려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네가 말이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잠 29:20).” 더욱이 누구의 말을 듣는 일에 있어서 더디고 다소 느린 편이 이르고 조급하여 설익은 말을 주워 삼키는 것보다 낫다. 그럴 때 나는 종이를 꺼내서 글자로 성경을 접하여 쓴다. 한 자 한 자 표정을 갖추어 성경이 말씀하시게 한다. 하면,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사 32:4).”

 

해서 나는 항상 기도하기를,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50:4).

 

이는 내가 나를 마주하는 일에서도 필요하여서, 하나님이 세우시면 우린 견고하다. 오늘 본문 10절, “너희가 이 땅에 눌러 앉아 산다면 내가 너희를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너희를 심고 뽑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내린 재난에 대하여 뜻을 돌이킴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너희가 두려워하는 바벨론의 왕을 겁내지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를 구원하며 그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리니 두려워하지 말라(10-11).” 하시는 말씀 앞에 묵묵하고 무던하기를. “내가 너희를 불쌍히 여기리니 그도 너희를 불쌍히 여겨 너희를 너희 본향으로 돌려보내리라 하셨느니라(12).” 하시는 약속을 붙들고 사는 것이 신앙의 두 번째 수련이겠다.

 

기다림을 온전히 지탱하는 것은 약속이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 7:1).” 약속을 가진 사는 묵묵히 그 길을 간다. 맡기신 일을 수행한다. 노아와 같이 언제 어디서쯤 끝날 지 알 수 없는 일에서도 무던하게 같은 하루를 견디며 예비하고 준비할 수 있다.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그들이 굶주릴 때에 그들을 살리시는도다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33:18-19).

 

이와 같은 기도가 내 것이기를. 이와 같은 믿음으로 오늘도 기다림으로 소망하며 살기를… 그러할 때,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5-37).”

 

넉넉히 이기는 하루. 그 하루하루가 모여져서 어느덧 세월은 쌓여 경건한 자로 주를 바라기를. 비록 우리 마음은 조석(朝夕)간으로 바뀌고, 금세 누구 말에 혹하기 일쑤지만…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

곧 그의 언약을 지키고

그의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103:13-18).

 

나는 어떤 자인지, 그러나 주는 그런 나를 어찌 참고 또 기다리시는지를 시편은 찬송한다. 비록 늘 헛발질하듯 혼자 다른 궁리에 빠지곤 하나 그럴 때면 말씀이 나로 다시 마음을 가다듬게 하신다. 그럴 때면 성경을 손으로 적어 글자의 표정으로 마주한다. 여러 장을 책상에 펼쳐두고 되새기다 이면지로는 그 뒤에 다시 성경구절을 옮겨 적는다. 묵상은 되새김으로 소가 여물을 되새김질하듯 때론 느긋하게 앉아 입을 오물거리기도 하고, 때론 밭을 갈고 수레를 끌면서도 여물을 되새긴다. 나는 누구의 성급한 말씀 읽기에 응원하면서도 저가 곧 이 맛을 알기를 동시에 기도한다. 친구는 결국 성경어플을 깔고 성우가 읽어주는 말씀을 눈으로 보면서 출퇴근을 한다고 했다. 저의 모습이 상상이 안 가지만 그러는 그 자체로 주가 이루시는 일에 놀라울 따름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56:3-4).

 

종종 나는 억장이 무너지는 연애소설이나 영화를 본다. 얽히고설킨 이야기 속에서 나 역시 길을 잃고 마음을 졸이기를… 사는 일이란 한 치 앞도 알 수 없듯 사람의 마음도 그와 다르지 않으서 말이다. 하여 나는 누구의 마음도 신뢰하지 않는다. 굳은 결심이니 결연한 자세 따위에도 연연하지 않는다. 그러느니 나는 자빠져 그 심정으로 주의 이름을 부른다. 실제 자주 넘어지곤 하는데, 희한한 것은 아픔 전에 찾아오는 것이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일이다. 수치는 모든 고통에 앞서 자리한다. 그런 거 보면 사람이 왜 하나님을 닮았는지를 알 것도 같다.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달리 행하였었나니 내가 그들을 인도하여 내는 것을 본 나라들 앞에서 내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려 하였음이로라(겔 20:14).” 그리하여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는 줄로 인정하지 아니하리라(신 5:11).”

 

주는 반드시 ‘그 이름을 위하여’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사 48:9).” 행하신다. 어느 훗날 우리가 주 앞에 섰을 때,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계 2:3).” 곧 하나님이 우릴 알아주시는 이유, 그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셨던 것,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23:3).

 

이 놀라운 발견을 나는 종종 넘어졌을 때, 어떤 창피함과 부끄러움에서 깨닫고는 한다는 사실. 그런 뒤 새삼 찾아오는 어떤 고통이 낯설기도 하면서. 이에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사 12:2).”

 

오늘 본문은 기도를 부탁하고 주의 뜻을 바라나 그 기다림을 다하지 못하여 받게 되는 더 큰 낭패를 느낄 수 있다. “유다의 남은 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를 두고 하신 말씀에 너희는 애굽으로 가지 말라 하셨고 나도 오늘 너희에게 경고한 것을 너희는 분명히 알라(19).” 하였는데도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너희에게 명하신 말씀을 내가 오늘 너희에게 전하였어도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도무지 순종하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가서 머물려고 하는 곳에서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줄 분명히 알지니라(21-22).”

 

어떤 답답한 심정은 괜히 누구 때문이 아니라 내가 자주 그러한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히 13:6).” 그러므로 주께 바라기를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42:1-2).

 

당장의 조급함을 누그러뜨리는 게 갈급함으로가 아닐까? 내가 서둔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사실 앞에서 나는 나에게 두시는 불안증과 몸의 통증과 일상의 답답증을 내버려둔다. 내버려두는 그 자리에서 주의 권능을 찾는다. 성경을 글자로 쓰며 손으로 옮겨 적고 있노라면, 눈으로만 보던 때와는 달리 말씀이 말을 건다. 글자가 표정을 짓듯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이를 실제 모든 오감으로 느낄 때, 눈으로는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실제 우리의 생활에서 곧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이 충만함, 항상 부족하고 모자란데 하루가 저물 때면 모자람이 없었다는 것,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5).

 

그리하여,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8).

 

할 때에, 말씀이 내게 보이시고 글자가 내게 들려주는 것은,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11).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