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전봉석 2023. 6. 17. 05:26

 

내가 또 애굽 땅에 머물러 살기로 고집하고 그리로 들어간 유다의 남은 자들을 처단하리니 그들이 다 멸망하여 애굽 땅에서 엎드러질 것이라 그들이 칼과 기근에 망하되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까지 칼과 기근에 죽어서 저주와 놀램과 조롱과 수치의 대상이 되리라

예레미야 44:12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시편 44:26

 

 

애굽 곧 믹돌과 다바네스와 놉과 바드로스 지방에 정착하여 사는 유다 민족에게 이르신다. 결국 애굽으로 가서 이방신을 섬기며 온갖 우상을 숭배하는 저들에게 심판을 경고하고 불순종을 지적하신다. 이는 돌이켜 주의 이름을 다시 부르기를 바라시는 마음이었다. 한데 저들은 이내 이를 거절하였다.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하는 말을 우리가 듣지 아니하고, 우리 입에서 낸 모든 말을 반드시 실행하여 우리가 본래 하던 것 곧 우리와 우리 선조와 우리 왕들과 우리 고관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던 대로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리리라(16-17).” 이는 저들이 당장의 일로 만족스러워 “그 때에는 우리가 먹을 것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였더니” 이를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 드리던 것을 폐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궁핍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을 당하였느니라.” 하는 다른 두려움으로 주를 경외는 마음을 대신하였다(17-18). 저들은 문제를 바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여인들은 이르되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릴 때에 어찌 우리 남편의 허락이 없이 그의 형상과 같은 과자를 만들어 놓고 전제를 드렸느냐 하는지라(19).”

 

애굽 생활 채 얼마 되지 않아 하나님을 향한 저들의 마음이 이토록 상실된 것은 영적인 무지와 완고함이 저들의 영혼을 상하게 하였고, 당장의 현실적인 문제가 저들의 주의 은혜를 망각하게 하였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 속에서도 오늘 1절에 보면 하나님이 저들을 찾아가신다. “애굽 땅에 사는 모든 유다 사람 곧 믹돌과 다바네스와 놉과 바드로스 지방에 사는 자에 대하여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그리고 “이르시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2).”

 

본문을 다 읽고도 믿기지 않는 저들의 태도와 그럼에도 찾아가 이르시는 주의 사랑 앞에 먹먹해지는 것 같다. “그는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행악자는 숨을 만한 흑암이나 사망의 그늘이 없느니라(욥 34:21-22).” 주가 다 아시면서도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잠 15:3).” 오늘 시편에서도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렸거나

우리 손을 이방 신에게 향하여 폈더면

하나님이 이를 알아내지 아니하셨으리이까

무릇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

(시 44:21-22).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자의 삶은 황폐하다. 술로 그 마음을 달래고 사람으로 그 외로움을 채우려 하여 외도는 물론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롬 1:26-27).” 흔히 성소수자의 인권을 운운하며 정당화하고, 사랑을 미화하여 자신들이 마음이 좋을 대로 옮겨 다니게 둔다. 좋아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으로 둔갑시켜 일순간 좋은 감정을 사랑이라 착각한다. 그러나 사랑은 희생을 전제로 하여,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 13:4-7).

 

이를 시적 운율에 맞춰 옮겨 적은 것은 그 하나하나가 ‘덧정’으로, 저를 사랑함으로 저의 환경도 그 가정사도 혹은 어떤 걸림돌까지 더불어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8).” 우리의 그 어떤 권능도 다 폐하나 사랑은 영원하여서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13).” 하여 사랑은 서로를 성장하게 하여,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11).”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우리가 그 사랑을 알고부터 더욱 더 그 사랑을 갈구함으로 영원한 나라에서도 찬송으로 화답할 것이다. 한데 그 사랑의 은혜를 잃으면 “대저 견고한 성읍은 적막하고 거처가 황무하며 버림받아 광야와 같은즉 송아지가 거기에서 먹고 거기에 누우며 그 나무 가지를 먹어 없이하리라 가지가 마르면 꺾이나니 여인들이 와서 그것을 불사를 것이라 백성이 지각이 없으므로 그들을 지으신 이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며 그들을 조성하신 이가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시리라(사 27:10-11).”

 

나는 주를 사랑하면 할수록 그 사랑을 잃을까 두렵다. 여기서 잃는 것은 나의 바라는 마음으로 소망이 다른 것을 찾고 구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너무 오랜 시간을 하나님을 멀리하며 살았다. 마치 탕자와 같이 떠날 수 있는 최대한 멀리 아버지의 집에서 벗어나 아버지의 사랑을 잊고 싶었다. 그때 마침 문학이란 길이 있었고 나의 글 쓰는 친구들과 예술을 사랑하는 친구들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판단이었고 너무 먼 길을 돌아 비로소 아버지의 사랑을 갈망하게 되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모든 게 쓴 뿌리였고 괴로움이었다. 어쩌면 이를 잊지 않으려 나는 더러 억장이 무너지는 사랑 이야기를 읽는다.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히 12:15-16).”

 

그땐 몰랐다. 그게 전부인 줄 알았다. 오늘 본문의 유다 사람들도 애굽으로 돌아가 그에 사로잡힌 것이다. 우리 마음이 따르고자 하는 것은 이상과 상상의 나래로 그것이 우상의 실체인 것을 한사코 외면한다. 오늘 본문 3절, “이는 그들이 자기나 너희나 너희 조상들이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에게 나아가 분향하여 섬겨서 나의 노여움을 일으킨 악행으로 말미암음이라.” 본디 외도란 사랑의 착시현상으로 평소 소중한 것을 알지 못할 때 자신이 설정한 이상에서 구하고자 한다. 이는 우상이었다. “새긴 우상은 그 새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만든 자가 이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나무에게 깨라 하며 말하지 못하는 돌에게 일어나라 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그것이 교훈을 베풀겠느냐 보라 이는 금과 은으로 입힌 것인즉 그 속에는 생기가 도무지 없느니라(합 2:18-19).”

 

자신이 만든 이상에서 환멸은 쉬 찾아오고 그럼 또 다른 이상을 꿈꾸며 그것에 도취되어 산다. 사는 동안 세월은 흐르고 돌이킬 수 없는 순간들은 사라진다. 이에 성도란 말씀으로 무장하여 자신의 마음조차 경계할 줄 안다.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신 11:28).” 나는 너무 오랜 시간 너무 많은 이상을 바라며 살았다. 사랑예찬론자로 모든 사랑이 사랑이라 여기며 살았다. 돌이켜보면 저들도 나와 같이 외로웠을 뿐이고, 스쳐가는 잎새에도 사랑이 전하여 올까 설렘을 담아 보내고는 하였다.

 

이 얼마나 한심하였는지를,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사 1:3-4).” 그게 나였음을. 주의 은혜 앞에 설 때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고, 송구하고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는데…….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가 너를 보게 하라

너희가 어찌하여 마하나임에서

춤추는 것을 보는 것처럼 술람미 여자를 보려느냐

(아 6:13).

 

이는 산문으로 진술하면,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 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사 44:22).” 하시는 주의 사랑이시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조상들의 날 곧 옛날에

행하신 일을 그들이 우리에게 일러 주매

우리가 우리 귀로 들었나이다

(44:1).

 

오늘 말씀도 이를 듣게 한다. 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 28:15).” 이와 같은 약속의 말씀을 되새기게 한다. 하여서,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성도들은 영광 중에 즐거워하며

그들의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

(149:4-5).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우리 대적을 누르고

우리를 치러 일어나는 자를

주의 이름으로 밟으리이다

 

우리가 종일 하나님을 자랑하였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셀라)

(5, 8).

 

이에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이와 같은 고백이 나의 것이 된 것을 감격하며, “여호와여 주와 같은 이 없나이다 주는 크시니 주의 이름이 그 권능으로 말미암아 크시니이다(렘 10:6).” 하는 삶으로 사는 날 동안 살아서,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7-9).” 이를 나의 남은 날의 중심으로 삼아,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렸거나

우리 손을 이방 신에게 향하여 폈더면

하나님이 이를 알아내지 아니하셨으리이까

무릇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

(44:20-21).

 

그리하여,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2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