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시 138편 / 기도와 응답

전봉석 2023. 7. 6. 15:35

230709 주일

 

시 138편

기도와 응답

 

시 138:1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송하리이다

시 138:2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

시 138:3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

 

 

들어가는 말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시 143:1).”

 

기도는 은사다. 오늘부터 우리는 ‘기도의 사람 다윗’의 시편 여덟 편을 차례로 간직하려 한다(138편-145편). 다윗은 150편의 시편 가운데 73편을 지었다. 정확히 [다윗의 시]라는 표제로 밝힌 것만 그렇다. 작가 미상이지만 다윗의 시로 추측되는 시편들은 여러 편이다.

 

다윗은 누가 뭐래도 기도의 사람이다. 시편은 기도이고 찬송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데 있어 기도가 필수다. 그런데 우린 보통 10분 이상 기도하기도 쉽지 않다. 그것도 자신의 요구와 필요를 구하다 끝난다. 물론 “…많은 사람이 따르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의 병을 다 고치시고(마 12:15).” 즉 우리는 굶주림과 박해와 소외와 갈등과 병마로부터 해결받기 위해 주 앞에 온다. 그때마다 예수님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저들을 배불리 먹이셨고, 간음하다 돌에 맞아 죽을 여자를 구하시기도 하셨으며, 고아와 과부와 창녀와 세리를 찾아가 저들의 소외와 갈등을 같이 하셨다. 이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20).” 주님의 사역 가운데 하나로써 모든 이가 바란다.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21).”

 

그러나 이는 목적이 아니다. 주님의 첫 마디는 회개를 촉구하셨고,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마 4:17).” 천국 복음이 목적이셨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24:14).” 곧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믿음으로 구원을 입어 천국 백성을 삼는 것이었다.

 

우리의 기도는 그의 사랑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이에 우리의 필요를 아뢰는 것도 필요하지만 ‘감사와 찬송’이 빠지면 허사다. 주께 향하는 감사와 찬송은 자연스럽게 중보기도로 이어진다. 중보기도가 자연스러워지면 자신의 문제는 가벼워진다. 가령 글쓰기를 할 때, 내 이야기가 화두였다가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환원되면서, 우리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이야기가 된다. 실제 다윗의 시편은 이러한 특징이 있다. 자신의 문제를 호소하다, 우리의 문제로 전환하였다가 결론적으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형식이다. 우리가 시편으로 살기란,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하게 하소서(시 102:1).”

 

이에 기도는 상달되어 “향연” 곧 ‘천국 잔치’가 시작되면서,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계 8:4).” 그렇게 올려질 때, 기도는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5:8).” 그러므로 우리가 남들보다 능력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 올려지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고전 13:1-2).” 심지어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3).” 하여 사랑을 감출 수 없는 고백, 기도로 드려지는 것이다.

 

<기도의 공식>

 

첫째, 주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한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둘째, 우리의 문제는 가벼워진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셋째, 꾸준한 훈련으로 자라간다.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7:18, 23:10).”

 

넷째, 내 목숨보다 주를 더 바라게 한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시 63:3, 욥 13:15).”

 

본문이해

 

다윗은 누구보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다. 저의 일상은 광야였다. 늘 쫓기고, 공격의 대상이었다. 광야는 메마르고 황폐하다. 저의 광야는 일상이었다. 그럼에도 저는 역대 누구보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였다. 저의 기도는 수시로 응답받았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도 받은 줄로 여기는 기도였다.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시 27:13).” 예수님도 일러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오늘 시편은 주변국을 평정하고 나름 안정기에 지은 시이다. 사무엘하 7장과 역대상 17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윗은 국내외적으로 평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삼하7:1).” 그러므로 오늘 시는 감사 시다. 베푸신 은혜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찬송한다.

 

앞서 순례의 시편(120-134편)과 감사와 예배의 시편(135-136편)에 이어 저주 시편(137편)이랄 수 있는 ‘후회와 탄식의 회개’ 시를 지나, 다윗의 여덟 편의 시(138-145편)를 간직하는 데 있어 오늘은 ‘기도와 응답’에 따른 시적 특징이 있다. 시적구성은 3연으로, 1연(1-3절)은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께 감사. 2(4-6절)은 모든 열왕들이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올릴 것을 촉구하고, 3연(7-8절)은 그 어떤 환난과 시험이 와도 하나님이 도우실 것을 확신하며 기도에 따른 하나님의 응답을 공식처럼 나타내고 있다.

 

1.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감사는 ‘전심으로’ 하는 것이다. 형식적인 감사는 예의상 하는 소리로 충분하다. 전심으로 하는 감사는 보란 듯 ‘신들 앞에서’ 하는 것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송하리이다(1).” 전에도 다룬 것처럼 ‘신들’이란 저마다 우선하고 귀히 여기는 것들이다. 그러나 모두 헛되어 바람을 잡는 일 같고,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전 1:14).” 그저 우리의 소원은 먼지와 같다.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103:14).”

 

다윗은 이에 “내가 ①주의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며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2).” 예배는 아무 곳에서나 내키는 대로 하는 게 아니다. 정확히 ‘우린 주의 성전을 향해’ 예배한다. 또한 막연한 예배가 아니라,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감사하는 것이다. 곧 우리 감사의 근거는 ‘주의 말씀’에 의해서이다. 그러므로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3).”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응답’하시고, 우리 ‘영혼의 힘’을 강하게 하신다.

 

2. 온 열방이 하나님께 찬송하고 감사할 것이다.

 

‘온 열방’은 세상의 모든 왕들, 오늘에 권세 잡은 자들, “여호와여 세상의 모든 왕들이 주께 감사할 것은 그들이 주의 입의 말씀을 들음이오며 그들이 여호와의 도를 노래할 것은 여호와의 영광이 크심이니이다(4-5).” 저들이 ‘주의 입의 말씀을 들음’으로 ‘여호와의 도’를 노래할 날이 올까? 앞서 주님은 이 세상의 끝이 언제인지 말씀하셨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그때에 “여호와께서는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굽어살피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심이니이다(6).” 오늘 이 세상의 악하고 더러운 것을 우리 하나님이 모르시지 않는다. 우리가 매일 상대하고 사는 자기 자신과 풀리지 않는 문제와 끌어안고 있는 골칫덩어리를 대할 때, 바울은 이를 단순하게 보지 않았다. 곧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다시 말해 자신을 이기지 못하는 것도 어떤 고단하고 힘에 겨운 일들도 영적 싸움이다.

 

이에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구하라고 하셨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13).”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대상은 없다. 우리가 풀 수 있는 문제는 없다. 그러나 문제 없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3. 주의 보호하심과 보상을 확신한다.

 

인생은 우여곡절의 연속이다. 문만 열면 사연 없는 집 없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전 7:13).” 그 모든 일의 주체가 하나님이시고, 그렇다면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14).” 이를 광야로 겪으며 살았던 다윗은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살아나게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분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시 138:7).” 하고 단언한다.

 

그뿐인가? 이를 잘 견디고 이겼을 때,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보상해 주시리이다(8a).” 이는 우리가 각자 받을 상급 곧 영광이다. 바울은 이를 알았고,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고전 15:41).” 그래서 달렸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 3:12).” 이를 우린 부르심의 상급이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14).” 하여 오늘 다윗은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오니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버리지 마옵소서(시 138:8b).” 이를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나오는 말

 

우린 오늘, 오늘의 은혜로 산다. 은혜를 구할 때, 다윗과 같이 첫째, 하나님의 도움을 확신해야 한다. 둘째, 하나님께 향한 우리의 소망은 완전하다. 셋째, 하나님은 결코 우릴 기대하게 하시고 실망시키시는 법이 없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그러므로 우린 다윗의 확신과 소망을 간직하면서,

 

첫째, 어떤 상황에서든지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에 대하여 찬양드려야 한다.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103:8).”

 

둘째, 우린 이를 전파해야 한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셋째, 사탄의 유혹과 공격에서 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 4:27).”

 

그럼 주가 이루실 것이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오늘 다윗은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보상해 주시리이다(시 138:8a).” 하였고, 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하고 확신하였다.

 

이에 우린 날마다의 은혜를 구하고, 오늘은 오늘의 은혜로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오니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버리지 마옵소서(시 138:8b).”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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