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23 주일
시편 139편
전능하신 하나님
시 139: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시 139:2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시 139:3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시 139: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들어가는 말
나의 모든 일상을 다 아시는 하나님. 일상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생각까지도 다 아시는 하나님. 우리 영혼을 지키시고 살피시는 하나님. 심지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 일생 이전의 나와 일생 이후의 나를 이미 다 아시고 계신 하나님. 나를 지으셨고, 섭리 가운데 오늘을 살게 하시는 하나님. 궁극적으로 이 시간을 통해 우리들이 살아갈 영원한 시공간의 하나님……. 어떤 이는 두렵고, 어떤 이는 부담스럽고, 어떤 이는 그래서 편하고 안정감을 느낄 테고! 과연 우리는 어떠한가? 설마 그 어떤 느낌도 와 닿지 않아서 그저 무덤덤하니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소리로 들리지는 않는지?
오늘 시편은 우리들로 하여금 ‘너는 어떠한가?’ 하고 묻는 것 같다. 시편 139편은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이다. 기이하여 추상적으로 살피지 않고, 이해하기 어려워서 관념적으로 서술하지 않는다. 다윗은 그 하나님을 직설적이고 실제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실제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는 오늘 시편을 누군가는 <시편 중의 왕관>이라 하였다. 실제 우린 우리 신체의 비밀도 다 알지 못한다. 우주와 지구의 비밀도 아주 미비하게나마 과학적으로 접근한 게 전부다.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알 뿐이다.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우리의 언어와 표현으로 다 묘사할 수 있을까? 오늘 시편은 다윗이 겪은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하나님으로 우리가 이를 인정할 수 있는지 묻는다.
본문이해
다윗의 왕정 말기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 다윗 특유의 신앙고백과 인생여정이 배여 있다. 하나님이 늘 함께 하셨던 경험을 토대로 하였다. 주를 인정하고, 고백하고, 찬송하고, 경배하는, 다윗은 ‘창조주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나타내면서 그의 구원사역을 다루고 있다. 그 가운데 놀라우신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를 감격스러워하며 찬양한다.
시적구성은 4연으로 나뉜다. 각 연은 여섯 구절씩으로 묶인다. 1연(1-6)은 하나님이 우리의 일상을 알고 계신다는 것. 2연(7-12)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에 항복해야 한다는 것. 3연(13-18)은 창조주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우리는 찬양함으로 영광을 올려야 한다는 것. 4연(19-24)은 세상 모든 악함을 통하여 하나님은 최후 심판을 준비하셨음을 알리면서, 우리로 영원으로 영생을 준비하게 하셨음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들이시기를 간구한다.
1.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살피시는 하나님(1-6)
‘감찰하시다’, ‘살피시다’ 하는 표현을 여러 번 사용하고 있다. 다윗의 의도는 전능신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관계와 감정과 의지와 생각을 살피시고 판단하시는 하나님을 저는 말한다. 마치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창 16:13).” 하나님은 사라의 몸종 하갈이 이스마엘과 쫓겨난 뒤에 저를 찾아오셔서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8).” 하고 먼저 물으셨다. 또는 처음 살인자 가인이 살인을 저지르기에 앞서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4:6-7).” 하고 경고하셨다.
오늘 시편에서도 다윗은, ① 우리를 살피시는 하나님과 ②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우리의 생각을 밝히 아시는 하나님. ③ 우리의 가는 길과 눕는 모든 행위를 아시는 하나님과 ④ 우리 혀의 말을 다 듣고 계시는 하나님. ⑤ 우리의 앞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다 아시는 하나님과 ⑥ 우리로 그러한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오늘도 이처럼 지식을 주신 것이 기이하고 너무 높아서 능히 다 알 수 없다고 고백을 한다.
2. 어디든지 함께 하시는 하나님(7-12)
무소부재(無所不在)란 모든 상황과 역사, 모든 존재 가운데 한 번도 없어본 적이 없는 하나님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① 우리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피할 수 없다는 것과 ② 우리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또는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다는 것. ③ 심지어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한다해도 함께 하신다는 것. ④ 그러므로 어디라도 주의 손이 우리를 인도하시며, ⑤ 혹은 흑암이 나를 덮고, 두른 빛은 밤이 됨 같을지라도, ⑥ 그 어떤 흑암도 주 앞에서 우릴 숨길 수 없음을 찬양한다.
곧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아시고, 일생의 목적과 계획과 욕망까지도 다 알고 헤아리시는 하나님을 다윗은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욥은 그래서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하였고, 그의 친구 엘리후도 “그는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34:21).” 하고 인정하였다. 예레미야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여 “이는 내 눈이 그들의 행위를 살펴보므로 그들이 내 얼굴 앞에서 숨기지 못하며 그들의 죄악이 내 목전에서 숨겨지지 못함이라(렘 16:17).” 하고, “…인류의 모든 길을 주목하시며 그의 길과 그의 행위의 열매대로 보응하시나이다(32:19).” 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대해 고백은 실제 모든 성도들의 공통된 진술이고 고백이다. 우리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그때마다 지키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며 산다.
3.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13-18)
우릴 우리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고, 그 안에서 우리를 ‘직접’ 만들어 모든 만물을 다스리게 하셨다.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7-28).” 이를 다윗은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① 주께서 우리의 내장을 지으셨고 모태에서 이미 만드셨다는 것, ② 그렇게 우리를 지으심이 매우 기묘하고, 기이함을 우리 영혼이 아는 것에 대하여 감사한다. 곧 ③ 우리가 지음 받은 때에 주의 앞에서 숨겨지지 않았음 고백한다. 결국 ④ 우리의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하나님은 이미 다 아시고 주의 책에 기록하셨다는 것과 ⑤ 그 하나님의 생각이 보배롭고,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 감탄할 수밖에 없고, 더 신기하고 놀라운 것은 이것이 하나님의 세계라는 사실을 ⑥ 곧 그가 하신 일을 우리가 세려고 해도 셀 수가 없어 이는 마치 바다의 모래보다 많아서 놀랍다. 오늘도 우리가 깰 때에 여전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알고 놀라며 감사하고 감격한다.
이를 이사야는 마치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그릇을 굽는 것으로 비유하면서, “…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 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사 29:16).” 하면서 우리의 패역함을 지적하였다. 바울도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음을 알았고 이에,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하는 충격적인 고백을 하였다. 현대 사회를 사는 사람치고 이런 고백을 감격스러워할 이가 몇이나 될까?
우린 이처럼 하나님의 은총을 헤아릴 수 없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시 40:5).” 다만 주의 오묘하신 솜씨에 감탄하고 찬송할 뿐이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4. 우리의 영혼을 영원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19-24)
마지막 연에서는 공의의 하나님을 설명한다. ① 하나님은 반드시 악인을 죽이시고,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들을 우리에게서 멀리 떠나게 하신다는 것과 ② 그들이 주를 악하게 말하고, 주의 이름으로 헛되이 맹세하는 것을 지적하면서, ③ 주를 미워하는 자들을 우리가 미워하며, 주를 치러 일어나는 자들을 우리 또한 미워하게 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곧 ④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은 우리의 원수다. 이런 우리를 ⑤ 하나님이 살피시고, 내 마음을 감찰하여 그 마음을 하나님이 알아주시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⑥ 우리에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떤 잘못이 있는지를 알게 하시고 회개하여 우리로 ‘영원한 길’로 인도하시기를 주께 간구하도록 한다.
하나님은 빛이시다. 빛은 모든 어둠을 밝힌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시 27:1, 84:11).” 그러므로 우린 이를 알고,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요일 1:5).” 하는 확신을 가진다. 그 하나님은 위선적인 것을 싫어하시고 가면과 가식도 통찰하신다.
나오는 말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눅 12:2).”
어느 훗날,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이를 우리는 의식하고 산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모든 시공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한다. 악인들의 악함을 증오하면서 자신을 성찰한다. 그날에는 반드시,
1) 악인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질 것이다(19, 20절)
2) 우린 우리의 영원한 인도에 대해 소망을 가진다(21-24절)
그러므로 우린 우리의 연약함으로 주를 바란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우리로 바른 길을 가게 하신다. 오늘 시편은 겸허하게 생활해야 할 것과 악을 경계해야 할 것을 알리고 있다. 다윗은 이와 같은 시편을 주로 썼는데,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생각하셔서 평탄한 길로 나를 인도하소서…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주의 영은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시 27:11, 143:10).”
오늘 우린 시편 139편을 통해 우린, 첫째,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분이라는 사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우주만물과 우리 사람을 창조하신 신묘막측한 분이시라는 사실. 셋째,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에 부합되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 그러므로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출 19:5, 벧전 2:9).” 이에,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 139:2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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