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시리로다

전봉석 2023. 7. 31. 05:17

 

너의 영광과 위대함이 에덴의 나무들 중에서 어떤 것과 같은고 그러나 네가 에덴의 나무들과 함께 지하에 내려갈 것이요 거기에서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 가운데에 누우리라 이들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라

에스겔 31:18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등록하실 때에는 그 수를 세시며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시리로다 (셀라)

시편 87:6

 

 

애굽에 대한 다섯 번째 예언이다. 앗수르의 영광과 몰락을 애굽에 알린다. 애굽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패망을 예견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앗수르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권세와 풍요로 열국을 지배하였으나 그로 인해 교만해졌다. 에스겔은 앗수르의 흥망을 통해 바로에게 경고한다. 애굽의 멸망에 대한 당위성과 필연성을 강조하고 있다. 앗수르의 영광을 백향목에 비유한다(1-9절). 교만으로 인해 앗수르가 멸망한다(10-14절). 앗수르의 몰락을 음부에 내려간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15-18절). 이러한 앗수르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경고함과 동시에 애굽이 앗수르와 같이 멸망하게 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는 것이다.

 

때는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 된 지 11년 3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당시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의 침략이 막바지에 이른 상황에서 애굽에 의지하려 할 때, 하나님이 곧 애굽을 심팜하실 것을 밝힘으로 택한 백성을 위로한다. 하나님은 결정적인 순간에 교만하고 악에 찬 이방의 멸망을 선언함으로 주의 백성을 위로하고 하나님만 섬기도록 독려하신다. 커다란 나무에 비유하여 앗수르의 영광을 묘사하고 있다(3-9절). 곧 앗수르는 모든 나무보다 높다. 많은 새와 동물들의 서식처가 되었다. 그러나 결국은 음부로 내려가게 되며 비웃음과 조롱을 당한다(15-18절). 이와 같은 앗수르의 흥망을 선명하게 연결지어 애굽의 현재를 일깨운다. 영광에 안주하여 교만하지 않도록 강력히 경고한다.

 

두로와 시돈도 자신의 경제적 풍요를 믿고 신격화 하다 멸망하였다. 하나님을 망각한 앗수르의 패망을 묘사함으로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더욱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이 말씀의 목적이다. 앗수르의 영화와 결국은 애굽을 책망하고 있다. 이들의 결국은 유다를 일깨우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 겸비하도록 믿는 자들을 일깨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오직 겸손한 자에게 은혜가 있다.

 

에스겔은 어떤 나무보다 아름다운 레바논의 백향목과 같던 앗수르가 파멸하게 되었음을 알린다. 이에 교만한 세력은 반드시 패망하게 된다. 유다도 그러했고, “네가 교만하던 때에 네 아우 소돔을 네 입으로 말하지도 아니하였나니(겔 16:56)”, 두로도 같았다. “너는 두로를 향하여 이르기를 바다 어귀에 거주하면서 여러 섬 백성과 거래하는 자여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두로야 네가 말하기를 나는 온전히 아름답다 하였도다(27:3).” 교만의 끝은 멸망과 심판뿐이다.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레바논은 부끄러워하고 마르며 사론은 사막과 같고 바산과 갈멜은 나뭇잎을 떨어뜨리는도다(사 33:9).”

 

이처럼 인간적인 힘과 능력을 의지하는 자는 동일한 결국에 이른다. 애굽의 바로가 앗수르 왕과 귀족들이 자신들과 동일하게 죽어서 음부에 온 사실에 위로를 받았다. “바로가 그들을 보고 그 모든 무리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을 것임이여 칼에 죽임을 당한 바로와 그 온 군대가 그러하리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2:31).” 어이없는 일이지만 “아래의 스올이 너로 말미암아 소동하여 네가 오는 것을 영접하되 그것이 세상의 모든 영웅을 너로 말미암아 움직이게 하며 열방의 모든 왕을 그들의 왕좌에서 일어서게 하므로 그들은 다 네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도 우리 같이 연약하게 되었느냐 너도 우리 같이 되었느냐 하리로다(사 14:9,10).” 서로 같은 처지에서 저런 대화를 나눌 것이라니!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알게 한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 11:36).” 또한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고전 8:6).” 이에 이 땅에서의 강대함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허락 하에 잠시 지속될 뿐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신속히 처벌하신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상대적으로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이러한 결국을 보며 공의로 세계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게 된다. 땅의 모든 영광은 죽음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집착할 것도 의지할 것도 아니다. 음부는 다분히 죽은 자의 거처다. 어둡고 그늘진 장소로 묘사된다. “내가 돌아오지 못할 땅 곧 어둡고 죽음의 그늘진 땅으로 가기 전에 그리하옵소서 땅은 어두워서 흑암 같고 죽음의 그늘이 져서 아무 구별이 없고 광명도 흑암 같으니이다(욥 10:21-22).”

 

원수가 내 영혼을 핍박하며

내 생명을 땅에 엎어서

나로 죽은 지 오랜 자 같이

나를 암흑 속에 두었나이다

(시 143:3).

 

또한 음부는 침묵의 장소로도 묘사되었다.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영혼이 벌써 침묵 속에 잠겼으리로다

(94:17).

 

곧 다시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곳이다.

 

죽은 자들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 데로 내려가는 자들은

아무도 찬양하지 못하리로다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주께서 죽은 자에게

기이한 일을 보이시겠나이까

유령들이 일어나 주를 찬송하리이까 (셀라)

주의 인자하심을 무덤에서,

주의 성실하심을 멸망 중에서

선포할 수 있으리이까

(115:17, 6:5, 88:10-12).

 

아무것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깨닫지도 못하는 장소로 묘사한다. “그의 아들들이 존귀하게 되어도 그가 알지 못하며 그들이 비천하게 되어도 그가 깨닫지 못하나이다(욥 14:21).” 그리하여 지혜자는 말하길,

 

“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그들이 다시는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니라(전 9:5).”

 

더는 아무 것도 돌이킬 수 없는 땅, 그저 없음의 나라,

 

“그들의 사랑과 미움과 시기도 없어진 지 오래이니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 중에서 그들에게 돌아갈 몫은 영원히 없느니라(6).”

 

그러므로 오늘을 사는 우리의 지혜란,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들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아니하도록 할지니라(7-8).” 이로써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9).” 그러나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고 살다가는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10).”

 

더는 하나님의 긍휼을 바랄 수 없는 곳, “하나님 앞에서는 스올도 벗은 몸으로 드러나며 멸망도 가림이 없음이라(욥 26:6).” 그러므로

 

오늘 시편을 연결하여 생각하면,

 

나는 라합과 바벨론이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것들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

시온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다고 말하리니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하는도다

(87:4-5).

 

곧 하나님이 계심으로 시온이나 하나님이 더는 상관하지 않으심으로 음부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 하여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7).”

 

우리로 어떠해야 하는가를 앗수르의 멸망으로 애굽을 알게 하고, 애굽도 같다는 것으로 유다를 일깨우시듯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의미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4).” 오늘 우리가 할 일이다. 인생, 그리 길지 않다. 그 끝은 모두가 초라하고 낡아진다. 하면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나는 나의 늙은 장모의 모습에서, 또는 거울 속에 서 있는 낯선 나를 바라보다 결심한다.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져 가야 한다! 속사람을 새롭게 할 능력이 없다면 이는 음부를 예상하고 살아야 할 일이다. 여태 서로 떨어져 살다 다 늦게 몇 해의 삶을 우리 곁으로 보내신 바, 나는 종종 아내에게 장모와의 생활이 우리에게 맡기신 한 영혼을 돌보는 일인 것을 확인시킨다. 같이 말씀을 나누고 예배를 드리면서 장모는 말씀 읽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말씀을 듣고 이를 되새기려는 모습도 선명하다. 예전 일을 돌아보지 말고 우리에게 주실 저 천국을 사모하시라, 나는 자주 언급한다. 천국에 대한 소망, 속사람을 새롭게 하는 일에 대하여,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딤후 2:21).”

 

하나님이 우릴 만민 가운데 택하신 이유는 분명하다. 오늘 시인은 이를 가리켜 바라보게 한다.

 

그의 터전이 성산에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

(87:1-2).

 

시온의 문들,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들을 위하여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하여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약 2:5).”

 

천국 백성으로 보장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사는, 믿는 자들’이 제일 불쌍하다. 어차피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알기를 거부하고 사는 자들의 결국은 음부라, 오늘 ‘앗수르’의 결국이고 ‘애굽’의 결국과 같다. 서로의 결국으로 위로를 삼을 것인가?

 

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 (셀라)

 

시온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다고 말하리니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하는도다

(3, 5).

 

우리가 그의 생명책에 기록되었음을 찬양하며,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하여,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등록하실 때에는

그 수를 세시며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시리로다 (셀라)

노래하는 자와 뛰어 노는 자들이 말하기를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하리로다

(6-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