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호 5:15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시 119:49-50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 119:67, 71).
말씀 앞에 앉아 주의 일을 생각한다. 마땅히 가르치고 준수하도록 훈계해야 하는 책임을 더하신 데 따른 두려움이 앞선다. 더욱이 이를 저버린 오늘 본문의 제사장들을 본다. 저들에 대한 경고다.“제사장들아 이를 들으라 이스라엘 족속들아 깨달으라 왕족들아 귀를 기울이라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 너희가 미스바에 대하여 올무가 되며 다볼 위에 친 그물이 됨이라(1).”
‘들으라, 깨달으라, 귀를 기울이라’ 하시는 말씀에서 주의 마음을 생각한다.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에 대한 경고를 주의 깊게 살피게 한다. 성경은 누누이 이를 외친다. “이러므로 예루살렘에서 이 백성을 다스리는 너희 오만한 자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사 28:14, 23).” 이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은 오만하여서다. 그러므로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라(렘 13:15).”
곧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 이를 피할 자는 아무도 없다. 여기서 ‘미스바’는 요단 동편 길르앗에 있는 미스바를 가리킨다. 이곳은 야곱과 라반이 언약을 세웠던 곳이다. “라반의 말에 오늘 이 무더기가 너와 나 사이에 증거가 된다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갈르엣이라 불렀으며 또 미스바라 하였으니 이는 그의 말에 우리가 서로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를 살피시옵소서 함이라(창 31:48-49).” 그리고 ‘다볼’은 요단 서편에 있는 다볼 산을 가리킨다. 이 두 곳이 우상 숭배의 중심지가 되었다. ‘새를 잡는 것처럼 백성들에게 올무와 그물을 놓고 있음’을 책망하고 있다. 미스바와 다볼 산에서 거짓 우상을 섬기라고 부추겼다. 백성들을 악한 길로 인도하였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이방 신을 따라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될 것은 자명하다. “패역자가 살육죄에 깊이 빠졌으매 내가 그들을 다 벌하노라(호 5:2).” 곧 우상 숭배를 위하여 고의적으로 짐승을 살육하고 희생 제물을 바친 죄악을 말한다. 서로를 위하고 실족하지 않게 하는 것은 성도의 사명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렇지 않고 되레 살육을 일삼는 일에 대하여 경고하신다. 우리의 사명은,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사 35:3-4).”
성도로 사는 일에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롬 14:13).” 이와 같은 말씀에 주의하고 또 민감하게 받을 수 있는 것이 신앙이겠다. 우린 주 안에서 자유하나 또한 조심한다.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전 8:9).” 그러므로 내버려두는 것, 방임과 무관심도 죄다. 싫어해도 우려를 나타내고 때론 징벌해야 한다. 하물며 자녀에게는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 13:24).”
그런데 요즘 다들 인권이 어떻고, 참 교육이 어떻고 하며 자유롭게 방임하다 오히려 그릇된 길로 가게 한다.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고 그저 돌아서서 혀를 끌끌 차는 게 전부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숨길 수 있는 것은 없다. 오늘 본문은 이에 따른 말씀으로 들으라, 깨달으라, 귀를 기울이라 하시며 말씀에 주의할 것을 경고한다. 같이 묵상하는 시편의 내용과도 같은 맥락이었다.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119:49-50).
그러므로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마 18:15-16).” 서로의 잘못을 두고 눈 감아주면 안 된다. 하나님은 이를 다 아신다.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 데에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단 2:22).” 곧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살피시는도다
그는 그들 모두의 마음을 지으시며
그들이 하는 일을 굽어살피시는 이로다
(33:13-15).
이를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이 우리로 주를 경외하게 한다. 오늘 호세아서의 독자는 온 이스라엘 백성 곧 오늘의 우리 그리스도인을 대상으로 한다. 이때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아비의 훈계를 업신여기는 자는 미련한 자요 경계를 받는 자는 슬기를 얻을 자니라(잠 3:11, 15:5).” 이와 같은 말씀 앞에 섰을 때, 내 안의 교만을 돌아보는 것이 주를 온전히 바라게 하였다. 이에 “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의 대로이니 자기의 길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보전하느니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7-18).”
우리로 말씀 앞에 서게 하시는 이유였다. ‘에브라임’은 종종 이스라엘 전체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 두라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지혜가 없어서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앗수르로 가는도다(호 4:17, 7:11).” 곧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알고 계신다고 선언한다. 결코 아무것도 숨길 수가 없다. 곧 우리의 죄악 된 행위는 그들 자신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로 주를 멀리하게 하는 것은 실제 외부적인 요인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 6:12, 16).”
죄악은 여전히 우리로 하나님을 거리낌의 대상이 되게 한다. 우린 서로를 탓하고 어떤 이유를 들어 핑계대지만 실은 우리 안의 내부적인 요인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 것을 본다. 종종 누가 말하는 것은 섬기던 교회 누구 때문에, 또는 어떤 이유 때문에 주를 떠나 교회를 멀리한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실은 그 속에 죄악이 원인이었다. 죄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해결되었다 해도 본질상 죄의 자녀로 태어나면서 죄악은 수시로 우리 마음을 넘나든다. 그러므로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엡 5:3).” 스스로는 자신 있다 할 때 걸려 넘어지기 십상이다.
성경의 여느 믿음의 사람도 누구 하나 죄에서 벗어난 자는 없다. 노아를 당대 의인이라 하심은 주께서 그를 인정하신 것인지 저가 의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세상이 악할 때,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 6:8).” 곧 오늘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도 은혜로 우리의 믿음 안에서이다. 아브라함이 완전하여 저로 믿음의 조상을 삼으셨던가? 다윗이 허물과 죄가 없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하셨을까?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 5:1).” 이는 전적으로 은혜이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이에 오늘을 살면서도 이와 같은 호세아서의 말씀 앞에 자신을 돌아보며, ‘듣고, 깨닫고, 귀를 기울이는’ 자세로 주를 바란다. 이에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호 5:15).” 이는 죄악 된 우리 신앙의 공식 같다. 누구라도 고난을 따라 주를 되새기며 그 신앙을 점검하게 되는 것일 테니,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119:49).
개인적으로 나는 오늘 이 시편의 말씀을 자주 음미한다. 말씀이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신 것, 스스로 죄인임을 고하고 주의 긍휼하심 앞에 나를 꿇려 주의 도우심을 바라게 하신 것이었다. 앞서 세상과 짝하고 살 때는 나의 그런 삶을 두고 나는 죄라 여기지 못했다. 다들 그러는 줄 알았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싶은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이 나를 치시고, 고난을 더하심으로,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50).
이렇듯 말씀 앞에 나를 세우실 때 다음과 같은 고백은 내 것이 되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67, 71).
이는 모든 성도의 공통된 고백일 것이다. 스스로를 죄인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은 그처럼 구별된다.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히 12:10).” 그러므로
여호와여 주로부터 징벌을 받으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이런 사람에게는
환난의 날을 피하게 하사
악인을 위하여 구덩이를 팔 때까지
평안을 주시리이다
(94:12-13).
곧 우리가 아이의 잘못을 나무라고 징계함으로 저로 죄악을 의식하고 경계하게 하는 것과 같다. 이런 우리의 모습을 세상은 스스로의 교육을 운운하며 악마를 만들고 있는 셈이니… 나는 동생이 겪는 일에서 그 상대 아이의 장래를 생각하다 두려움이 앞선다. 거짓말을 꾸미고 이를 부추겨 전문가의 조력을 받으며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한다. 설령 당장은 이기는 것 같으나 그의 앞날이 두렵기만 하다. 이를 그 어미가 또는 배운 이들이 돈을 받고 같이 합작하는 셈이니… 내가 저들의 승리를 두려워하는 이유다. 서로가 괴물이 되어간다. 돈으로 이를 꾸민다. 부추겨 죄의식을 없이 한다. 오늘 시편은, 그렇듯
교만한 자들이 나를 심히 조롱하였어도
나는 주의 법을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51).
주께 아뢰며 말씀 곁을 떠나지 않는다. 이는 “너는 갑작스러운 두려움도 악인에게 닥치는 멸망도 두려워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는 네가 의지할 이시니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잠 3:25-26).” 우리의 능력은 말씀을 의뢰하는 것이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사 55:11).” 이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 그러니 나는 무엇을 붙들 것인지?
여호와여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들을 지킨 것이니이다
(55-56).
이때에,
내가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밤중에 일어나 주께 감사하리이다
(62).
어렵고 힘들 때, 밤중 같은 날에,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을 선대하셨나이다
내가 주의 계명들을 믿었사오니
좋은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
(65-66).
그러므로,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67, 71-7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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