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호 6:1, 3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나를 보고 기뻐하는 것은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는 까닭이니이다
시 119:74
앞서 5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자 같이 찢으셨다.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바로 내가 움켜갈지라 내가 탈취하여 갈지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14).” 이에 오늘 말씀은 그럼에도 주께로 돌아가자 호소한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6:1).”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야 할 분명한 이유는,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2).” 여호와께서 도로 살리실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우리를 찢으셨다 해도 ‘이틀 후에, 셋째 날에’ 주는 우리를 다시 살리실 것이니,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호 6:3).”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면 하나님이 더하신 징계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한 것이었음을.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사 30:26).” 하여,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147:2-3).
참으로 회개할 때 주는 우리 삶을 참 생명으로 살게 하신다. ‘우리를 찢으셨다’는 것은 심판이 가혹함을 암시한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50:22).
이와 같은 말씀 앞에 두려워할 줄 아는 것, 여호와의 사랑과 주권적인 섭리를 보는 것,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신 32:39).” 이 놀라운 말씀 앞에서 나는 이제 안도한다. 나의 생에서 나를 어찌 다루시고, 함께 하시며 오늘에까지 이르렀는지를 안다. 앎으로 저를 묵상할 때면 이제 두려움은 안심이 되고, 불안은 감사가 된다.
‘이틀 후에, 셋째 날에’ 나를 회복시키시고 나로 하여금 주의 이름을 부르며 기뻐하게 하셨던 것처럼.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눅 15:17-19).” 우리가 돌이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20).” 나는 나의 아버지의 이와 같은 사랑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호 6:2).” 하는 말씀으로 안도하는 것이다. “그들에게서 감사하는 소리가 나오고 즐거워하는 자들의 소리가 나오리라 내가 그들을 번성하게 하리니 그들의 수가 줄어들지 아니하겠고 내가 그들을 존귀하게 하리니 그들은 비천하여지지 아니하리라(렘 30:19).”
이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하는 오늘 말씀의 외침이 크게 들린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호 6:3).” 오늘의 나로 이와 같이 말씀을 사모하게 하시고, 말씀으로 말씀 앞으로 이끄시는 은혜가 있으니, ‘온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너와 네 자손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것을 온전히 따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사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흩으신 그 모든 백성 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네 쫓겨간 자들이 하늘 가에 있을지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모으실 것이며 거기서부터 너를 이끄실 것이라(신 30:2-4).”
내가 얼마나 죄인인가 하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게 은혜와 비례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정도쯤이야!’ 하고 여길 때는 은혜도 밍밍하였는데, 나는 그저 하찮은 존재였음을 인정할 때 상대적으로 주의 은혜는 커지고 놀라웠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행 3:19-21).” 하여,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알아 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기에 그를 생각하시나이까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
(144:3-4).
나는 헛것일 뿐이요 그림자 같이 지나갈 뿐인데, 내가 뭐라고 나 같은 것을 이처럼 알아주시는지… 이 놀라운 은혜 앞에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하나부터 열까지 은혜 아닌 게 없으니,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2-23).”
그때는 알지 못했다. 모든 게 다 막히고, 가까웠던 친구들은 오히려 열 걸음 뒤로 물러설 때, 더는 살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어 죽기를 바라고 있을 때 비로소 주가 내 손을 잡아 이끌어 하늘을 날개 치며 오르는 독수리 같게 하셨으니, 나는 내 안에 주를 더욱 알고자 하는 이 마음의 출처를 깨달았다.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대저 그는 정의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의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잠 2:4-8).” 바로 그것,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이 놀라운 진리로 나는 새벽에 깨우시는 나의 아버지, ‘아버지, 내가 돌아보지 않아도 늘 내 곁을 떠난 적이 없으셨던 나의 아버지. 이제 나로 보고, 듣고 아는 것에서 아버지께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만지고 느끼며 그 품에 안길 수 있게 하시는, 나의 아버지.’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57:8, 108:2).
이처럼 이른 아침이면 눈을 뜨고 하루를 재촉하신다. 새벽 두세 시만 되어도 화들짝 놀라 교회로 온다. 말씀을 열고 오늘은 어떤 말씀으로 이끄실 것인가, 턱을 괴고 앉아 말씀을 더듬게 하신다. 마치 선물을 열면 무엇이 들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상기된 어린아이 같이… 예전엔 몰랐다.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롬 6:20-21).” 그리하여 더는 예전에 즐기던 것으로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
날씨 탓인지 얼마 전 교통사고 때문인지, 허리는 아프고 어깨는 힘이 들어가지를 않는다. 결국 오늘은 좀 더 큰 병원에서 정밀진단을 받기로 했다. 폐쇄공포로 인해 수면으로 MRI검사를 한다고 하는데, 그런 거 보면 내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이 나약한가를 인정하게 된다. 어떤 일로 속수무책일 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과 주의 긍휼하심을 의지하는 마음은 비례한다. ‘주의 인자하심이 나의 생명보다 낫다’는 시인의 고백과 같이, 내 안에 안도하는 마음은 아이러니하다. 그때마다 알 수 있는 것,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늘 그러하였던 나의 지난날들을 인정한다. 나의 아버지, 곧 하나님이 함께 하셨듯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면 알수록,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요일 1:5).” 그러므로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 6:1).” 오늘 말씀은 남은 생을 더하여 영원히 누리게 될 안식에서도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3).” 그래서 말씀은 줄곧 바라였구나.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 고로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11).” 이에,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나를 보고 기뻐하는 것은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는 까닭이니이다
(119:74).
하면,
주의 긍휼히 여기심이 내게 임하사
내가 살게 하소서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내게 돌아오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그들이 주의 증거들을 알리이다
(77, 79).
그렇듯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92).
나는 이제 확신한다. 말씀이 나에게 소망을 주신 것 같이,
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법도들만을 찾았나이다
(94).
오늘 시편으로도 알 수 있다.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야 할 이유는 말씀으로 죄를 죄로 알고 이를 멀리할 수 있었다. 즉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잠 1:32-33).” 하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겔 18:21-22).” 이 또한 은혜 아니면 할 수가 없는 일이어서,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51:3-4).
이에
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들은 심히 넓으니이다
(119:9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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