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내가 응답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하리라
호 2:21-22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시 118:7
이스르엘의 날에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들이 서로 형제, 자매임을 확인하게 된다. 여기서 ‘너희’는 이스르엘이 개인이 아닌 미래에 회복될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구체적으로,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1).” ‘암미’는 ‘나의 백성’라 하고, ‘루하마’는 ‘나의 사랑하는 자’를 의미한다. 곧 호세아의 자녀들을 통해 선언되었던 이스라엘에 대한 징벌과 저주가 ‘언약이 완전히 성취되는 날’에 축복과 화해로 반전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을 나타낼 것이다.
이때 ‘어미’는 이스라엘 전체 백성 곧 나라를 가리키며, ‘자녀’는 이스라엘 백성 개개인을 의미한다. 곧 “너희 어머니와 논쟁하고 논쟁하라 그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그의 남편이 아니라 그가 그의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2).” 서로 논쟁할 것을 명령받는다. ‘논쟁하고 논쟁하라.’ 이는 ‘다투다’, ‘싸우다’란 뜻으로 개인이나 집단 간의 사법적인 논쟁이나 송사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내로서 이스라엘이 음행함으로 결혼 관계를 파괴시켰기 때문에, 이제 그 자녀들인 백성들이 어미를 고소하도록 한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결혼 관계’가 파괴되었음을 알린다. 이혼을 위한 공식 선언으로 이해된다. 결혼의 도덕적 붕괴, 진실성과 순결함이 무너진 것을 묘사한다. 우상을 숭배하고 온갖 불의와 탐욕을 따랐다. 이러한 죄악들을 ‘그 얼굴과 유방 사이’에서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얼굴’과 ‘유방’은 창녀의 호색과 방종을 의미하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상태, 죄의 실상을 말해준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시고, 거대한 민족으로 성장시키셨다. 온갖 권세와 부와 능력을 부여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언약과 은혜를 저버렸다. 출애굽 이후 광야 생활을 연상시킴으로 여전히 음란한 행위와 우상 숭배에 빠져 있음을 알게 한다. 즉, 호세아의 아내인 고멜과 같이, 하나님의 아내가 된 이스라엘의 음행이 매우 뻔뻔스럽다. 이방 나라들, 애굽, 앗수르의 정치와 권세와 부를 의지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섬기는 거짓 신과 우상을 숭배하였다.
우린 거룩함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요 2:15-16).” 교회로 곧 우리 삶으로 스스로 부정하였던 것을 인식하고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을 떠난 삶은 광야와 같이 척박하다.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렘 17:13).” 하여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시 107:9-11).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이미 우상 숭배자인 셈이다. 누구라도 무엇이든지 의존하지 않고 이에 따라 섬기며 살지 않는 사람은 없다. 사소하나 그 사소함으로 비는 대상이 바알이고 아세라 신상과 다를 게 없다. 하다못해 생일케이크의 초를 끄면서도 소원을 빈다. 곧 하나님께 향하지 않는 이 마음은 모두 우상을 섬김이다. 오늘 5절, “그들의 어머니는 음행하였고 그들을 임신했던 자는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이는 그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그들이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음이라.” 곧 오늘의 나를 이롭게 하는 것으로 만족함을 얻을 때, 하나님 외에 모든 것은 우상이다.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6).”
곧 그와 같은 우상 숭배의 길,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외의 다른 길을 걷겠다는 것을 두고, ‘가시나무’와 ‘담’을 쌓아 막으시겠다고 한다. 견디기 어려운, 사는 게 고단한, 광야 같은, “그가 내 길을 막아 지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내 앞길에 어둠을 두셨으며 나의 영광을 거두어가시며 나의 관모를 머리에서 벗기시고 사면으로 나를 헐으시니 나는 죽었구나 내 희망을 나무 뽑듯 뽑으시고 나를 향하여 진노하시고 원수 같이 보시는구나(욥 19:8-11).” 그래서들 사는 게 지옥이란 말이 여기저기서 곡소리 같이 터져 나온다. 이를 둘러, “나를 둘러싸서 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내 사슬을 무겁게 하셨으며 내가 부르짖어 도움을 구하나 내 기도를 물리치시며 다듬은 돌을 쌓아 내 길들을 막으사 내 길들을 굽게 하셨도다(애 3:7-9).”
실제 늘 이를 하소연하는 이가 있다. 매번 기도 부탁은 하는데 그 생활은 나아지는 게 없다. 보면 저와 하나님 사이에 막힌 담이 있다. 누구에 대한 미움과 서러움이 응어리져 원망으로 들끓는다. 들어보면 그의 구차한 삶이 그럴 만도하다 싶은데, 그대로 두고 주께 구하기만 하니 저의 믿음이 죽은 것이라. 교회도 신앙생활도 없이 그저 ‘비나이다’ 하는 말로 읊조리며 소원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 저에게 나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권면하고 저는 먼저 자기 삶의 문제 개선을 요구한다. 그러니 보면 스스로 우상을 만드는 형국이다.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 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무익한 것이거늘 그것들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사 44:9).”
어쩌면 저의 오늘의 고충은 스스로 놓지 못하는 뜨거운 냄비 같다. 내려놓아야 할 텐데 든 것에 미련이 남아 쥔 것을 놓지 못하고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러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2-23).” 나는 저에게 하나님을 권하고 저는 다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같은 하나님을 바라는 것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형국이다. 그때 우리 가는 길을 막으신다는 것, 이를 깨달아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것이 은혜이고 복일 텐데… 자주 느끼지만 우리의 적당함이 우릴 허비한다.
적당히 건강하고, 적당히 돈도 있고, 적당히 견딜 만한 당장의 상태가 저로 하여금 ‘다음에, 다음에 같이 예배드릴게!’ 하고 또 미룬다. 오늘 본문의 고멜의 음행과 고멜이 당할 낭패가 우리 삶을 엄습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또한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속이고 그것을 그들의 물건들 가운데에 두었느니라(수 7:11).” 오늘 우리의 형편이 그러한 것도 실상은 우리 안의 ‘아간’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모를 줄 안다. 그러니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히 12:5).”
어려운 말이지만 징계가 복이다. 적당함이 저주다. 그럭저럭 견딜만하다는 것, 그만큼 우리 영혼이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는 반증일 텐데… 아직까지 자각의 능력이 없다. ‘따라가다’의 히브리어 ‘라다프’는 ‘어떤 대상을 뒤따르는 것’으로 ‘찾다’의 히브리어 ‘바카쉬’는 ‘무엇을 발견하거나 획득하기 위하여 열심히 추구하고 찾는 것’을 의미한다.
즉 환난과 고통을 당할 때 우리 영혼이 병들었다는 것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기보다, 몸에 밴 익숙하고 친밀한 ‘앗수르나 애굽’으로 보호를 삼으려 따라간다. 그것, 남들 다 그러고 사는 것 같은 ‘일상의 힘’을 찾는다. 스스로의 위로와 평안을 얻고자 주일을 사이에 두고 여행을 가거나 휴식을 취하고자 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우상들의 헛됨’에 대해 우린 너무 안이하다. 믿는다고 하는 자기 신념으로 스스로 허용하고 사는 것들의 숭배와 추구하는 삶이 ‘본 남편인 여호와께로 다시 돌아오는’ 길을 가로막는다. 오늘 7절, “그가 그 사랑하는 자를 따라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그들을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그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 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와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잠 14:16, 28:14).”
이 단순명료한 말씀을 어쩜 우린 그리도 어렵게 설명하고 비비꼬아서 듣는 것인지. 누군 주식을 투자하는 데 있어 전문가(?)에게 얼마씩을 주고 정해진 시간에 저의 말에 따라 사거나 판다. 당장의 이익과 직결된 문제여서 다른 데 관심을 둘 수 없다. 그러니 자기 영혼이 좀이 설고 곰팡이가 펴서 썩는 줄도 모른다. 저는 마치 신앙을 의무감으로 하고, 방어수단으로 여긴다. 교회를 다닌다는 것, 여기서도 남들처럼 믿는 자 행세를 하는 것으로 최소한의 의무방어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말씀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오늘 말씀은 여전히 또 다른 형태의 우상 숭배가 지속되고 있음음을 상기시킨다.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그에게 준 것이요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그에게 더하여 준 것이거늘 그가 알지 못하도다(호 2:8).” 주께 받은 것으로 ‘바알’을 위해 쓴다.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왕하 10:29).” 여기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더하여 주신 것들, 그 축복의 풍성함을 허튼 데 쓰고 있었으니, “이제 내가 그 수치를 그 사랑하는 자의 눈 앞에 드러내리니 그를 내 손에서 건져낼 사람이 없으리라(호 2:10).” 이와 같은 말씀 앞에 두려워할 줄 아는 능력을 상실하고 산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고전 4:7).”
오늘의 적당함, 그 이상의 축복이 누가 더하여 주신 것인지를 잊고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겨 사는 자가 성도라 하면,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사 1:13).” 하나님은 이를 못 견뎌하신다. 이에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4).”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돼야 한다. 부디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그러므로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엡 1:21-23).” 이에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2:20).‘ 오늘 우리에게 부여하신 사명을 되새기며,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18:1).
그리하여 오늘 하루도 주가 또 기다리신다. 멸망과 심판의 경고를 알리는 므두셀라가 969세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살았던 것을 되새겨야 한다. 그만큼 오늘도 참고 또 기다리심이다. 그러므로 “네가 그의 목소리를 잘 청종하고 내 모든 말대로 행하면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출 23:22).” 우리는 듣고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이를 회복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오늘도 주어진 것들에 대하여,
이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4).
곧
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30:12).
이는 능력이다. 주의 권능으로 사는 새 힘이다. 이를 위하여,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118:5-6)
다른 말 필요없이,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7).
이 분명하고 지극히 확실한 약속을 붙들고,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8, 14).
이에,
내게 의의 문들을 열지어다
내가 그리로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
(19-20).
고로,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8-2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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