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

전봉석 2023. 9. 2. 04: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호 4:6

 

나에게 주의 법도들의 길을 깨닫게 하여 주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기이한 일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나의 영혼이 눌림으로 말미암아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

시 119:27-28

 

 

 

오늘 4장부터 14장까지 아홉 개의 교훈을 나타낸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관하여(4:1-5:4), 인간의 교만에 관하여(5:5-6:3), 인애가 없음에 관하여(6:4-7:7), 세속과 혼합된 죄에 관하여(7:8-8:14), 부패의 죄에 관하여(9:1-17), 이스라엘의 두 가지 큰 죄에 관하여(10:1-15), 인간적인 계책에 관하여(11:1-16), 우상 숭배의 죄악에 관하여(13:1-16), 회복에 대한 약속에 관하여(14:1-9). 이 모든 책망과 교훈은 우리가 죄악 된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무궁한 은혜 속에 거하기를 촉구하신다.

 

이에,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1).” 하는 말씀으로 시작하는데, ‘논쟁하신다’는 것을 주목하게 된다. ‘이 땅 주민’은 북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그들과 논쟁하신다. 다투는 것으로 하나님과의 계약을 파괴한 책임을 물어 이스라엘을 고소한다는 의미다. “너희 산들과 땅의 견고한 지대들아 너희는 여호와의 변론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변론하시며 이스라엘과 변론하실 것이라(미 6:2).” 변론하고 논쟁하는 상대는 모두 주의 백성들이다. “여호와께서 유다와 논쟁하시고 야곱을 그 행실대로 벌하시며 그의 행위대로 그에게 보응하시리라(호 12:2).”

 

계약을 위반한, 하나님의 진실하심과 인애하심을 저버린 게 화근이다.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내용에 충실하지 못한 이스라엘의 범죄를 지적한다. 인애 곧 ‘헤세드’는 약속에 기초한 사랑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은총과 긍휼을 부정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하지 않고 감사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1-23).”

 

즉 하나님을 몰라서가 아니다. 그와 같은 지식이 없어서도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 안다고 여기는 그 앎으로 하나님을 부정하는 일이었다. 그 결과로는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호 4:2).” 이는 바울 사도의 설교에서도 같은 문제를 구체적으로 되물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롬 1:28-31).”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오늘 우리의 생활과 다르지 않아 두렵다. 그것으로 우린 거리낌 없이 남을 저주하고 거짓 맹세를 일삼는다.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19:12).” 아니면 점점 강포하게 군다. 오늘 말씀은 이에, “너는 낮에 넘어지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넘어지리라 내가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호 4:5).” 그 원인이 무엇인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6).” 이는 참 비극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그것을 알지 못한다.

 

“오직 내가 이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내가 명령한 모든 길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여 너희 조상들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렘 7:23, 26).”

 

우린가 취하고 버릴 것이 무엇인지를 알 때,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19-22).” 이는 매우 의지적이고 적극적인 일이다. 수동적이지 않고 미적거림이 없다. 그러나 이를 순종하지 않을 때, “땅이 또한 그 주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그러므로 저주가 땅을 삼켰고 그 중에 사는 자들이 정죄함을 당하였고 땅의 주민이 불타서 남은 자가 적도다(사 24:5-6).” 곧 오늘 우리가 사는 이 땅의 문화에서부터 자연이 파괴되고 붕괴하는 이유가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이 식어가듯 지구 또한 병들어 간다.

 

신앙을 가진 우리의 삶이 중요하였다. 왕의 타락이 백성을 선동하고 백성들의 몰락이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게 하였다. 고로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사람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마시자 내일도 오늘 같이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사 56:10-12).” 교회가 병들고 성도가 자기정체성을 상실하면서 사회는 점점 각성이 사라지고, 정화능력을 상실하는 것이다.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에게 반역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들을 따랐느니라(렘 2:8).” 그로 인하여 오늘 말씀은 “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호 4:7).” 이와 같이 우리의 잘됨이 행여 우리 영혼을 나른하게 할까, 나는 한편으로 마음이 어려웠다.

 

아이는 앞서 금감원에 취직을 했고, 4년여 만에 결국 회계사에 합격했다. 어제 그 소식을 듣고 나는 기뻤으며 축복하였다. 동시에 말은 안 했지만, 저의 마음이 부디 지금만 같이 주께 감사하고 겸손히 그 맡기신 귀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를. ‘나의 아버지. 오늘의 이 모든 좋은 소식을 허락하신 아버지. 저가 안 믿는 가족들과 연인에 둘러싸여 행여 지금의 기쁨으로 방종하지 않게 하시기를. 오히려 오늘의 기쁨이 막중한 책임으로 다가와 주를 더욱 경외하였던 다니엘과 같이, 주를 신뢰하였던 요셉과 같이 부디 이방의 땅에서 그 믿음을 잃지 않게 하시길.’ 나는 앞서 한국은행에 입사하여 모두가 기뻐하던 어느 아이를 생각하며, 저가 더는 교회를 하나님을 저버리고 사는 것에 애통해하며, ‘나의 아버지, 모든 것을 아시고 계신 아버지.’ 하고 기도하였다.

 

오늘 본문에서 ‘이 땅이 슬퍼한다’는 것, 이는 단지 지구오염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죽은 자를 위한 애곡의 의미’로 ‘이스라엘 땅의 황폐함’ 곧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세계가 쇠약하고 쇠잔하며 세상 백성 중에 높은 자가 쇠약하며 땅이 또한 그 주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그러므로 저주가 땅을 삼켰고 그 중에 사는 자들이 정죄함을 당하였고 땅의 주민이 불타서 남은 자가 적도다(사 24:4-6).” 즉 초목이 시들고 동물들이 굶어 죽게 된 것과 같이 우리 영혼이 그러하지 않기를, “밭이 황무하고 토지가 마르니 곡식이 떨어지며 새 포도주가 말랐고 기름이 다하였도다(욜 1:10).”

 

당장의 성취가 복이 될지 저주가 될지, 나는 주께 아뢰며 아이의 마음을 부탁하였다. 우리의 타락은 자연의 파멸과 피조물의 멸망을 가져오듯 어느 순간 문득 그 영혼이 쇠잔하여졌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음은 어찌 됨이냐 내 손이 어찌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게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보라 내가 꾸짖어 바다를 마르게 하며 강들을 사막이 되게 하며 물이 없어졌으므로 그 물고기들이 악취를 내며 갈하여 죽으리라(사 50:2).” 주를 멀리하고 말씀을 저버린다는 것이 이처럼 비극적인 결말을 가져온다는 사실 앞에서.

 

“그러므로 내 백성이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사로잡힐 것이요 그들의 귀한 자는 굶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라(사 5:13).”

 

결국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저버릴 때 오는 것은 비극적이었다. 이는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 1:28).” 아, 나는 하나님이 내버려두심에 대해 아찔하다.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으나 이는 마치 영혼의 암과 같이 서서히 병들이 이내 손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도 하는 것이었으니,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4).” 우린 모두 주 앞에 설 것이다. 이에,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시 107:9).

 

부디 아이가 지금 같이 주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신앙을 지켜야 할 것인데… 나는 한편으로 축복하고 감사하면서 한편으로 저의 위태로운 상태를 두고 주 앞에 아뢰지 않을 수 없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렘 2:13).” ‘누구라도 그럴 리 없다고 장담할 수 없다. 없을 땐 모를까 있으면 더 욕심이 나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게 무엇이든지 사람의 욕구는 스스로의 절제를 능가한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하는 오늘 말씀이 걸린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 4:6).” 그로 인한 것인지 “너는 낮에 넘어지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넘어지리라 내가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5).” 낮에 왜 넘어지겠나? 밝은데, 환한데… "넘어지다"는 ‘비틀거리다’의 뜻으로 죄에 대한 분별이 약해지는 것이다. 형벌과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희미해진다. 롯의 사위들 같이 임박한 멸망의 때에도 ‘농담으로’나 듣게 된다. ‘에이 설마’ 할 때 누구라도 예외일 수 없다. 이는,

 

“그리하여도 이들은 포도주로 말미암아 옆 걸음 치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말미암아 옆 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환상을 잘못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나니…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그들의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들의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들의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도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사 28:7, 렘 6:13, 미 3:11).”

 

우리가 어떤 책임을 맡았다는 것은,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7-48).” 이 땅에서의 출세와 성공이 그만큼의 더욱 엄격한 기준으로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할 의무가 따른다. 이는 결코 권리가 되어 권력을 휘두르며 자기 좋을 대로 살라고 맡기신 것이 아니다. 작은 일에 감사한다는 것이 큰 일에도 감사를 잃지 않는 길이다. 이스라엘은 받은 것으로 감사하지 못했을 때, ‘송아지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되었다. 하나님을 반역하고 우상과 거짓 선지자들이 비례했다.

 

행여, “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호 4:7).” 우리에게 오늘의 이 말씀을 주신 것은 우리 또한 그러할까 하여, “거기에서 너희의 길과 스스로 더럽힌 모든 행위를 기억하고 이미 행한 모든 악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미워하리라(겔 20:43).” M. 스캇 펙의 주장처럼 ‘우린 아직 끝나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저 천국에 이르러,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시며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눅 19:17).” 복에 복이 더하기를, ‘나의 아버지.’

 

주의 종을 후대하여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119:17-18).

 

말씀에 눈을 떠서,

 

내가 주의 교훈들을 지켰사오니

비방과 멸시를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주의 증거들은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충고자니이다

(22, 24).

 

그러므로 남은 길을 가는 동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내가 나의 행위를 아뢰매

주께서 내게 응답하셨사오니

주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치소서

(25-26).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주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나로 하여금 주의 계명들의 길로 행하게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

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에게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

(34-36).

 

‘나의 아버지, 우리의 연약함을 주가 아시오니 주의 말씀을 거두지 마소서.’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주를 경외하게 하는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37-38, 4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