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전봉석 2023. 9. 13. 04:57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불이 목장의 풀을 살랐고 불꽃이 들의 모든 나무를 살랐음이니이다들짐승도 주를 향하여 헐떡거리오니 시내가 다 말랐고 들의 풀이 불에 탔음이니이다
욜 1:19-20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시 124:7-8
 
 
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이르신 말씀이다. 요엘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 즉 ‘아도나이 엘로헤이누’란 뜻으로 ‘여호와는 우리 하나님이시다.’ 하는 신앙 고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4-5).”
 
요엘은 어김없이 ‘여호와께서 이르신 말씀’을 강조한다. 말씀의 기원이 여호와께 있음을 명백히 한다. “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지어다.” 할 때 ‘늙은 자들’에 해당하는 ‘장로들’은 경험이 풍부하다는 점을 배경으로 갖는다. 복수형으로 사용되어 공적인 직책을 가진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다. 이어서 “땅의 모든 거민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지어다.” 하고 외친다. 이는 장로들이나 땅의 모든 거민들이나 “너희는 귀를 기울일지어다.” 하는 데 집중시킨다. 이는 오늘 날 즉 ‘너희의 날에’나 ‘너희 조상들의 날에’나 ‘이런 일’이 있었느냐? 하고 주의를 환기시킨다.
 
모든 역사는 반복되고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다. 그렇다면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신 32:1).” 이는 언제나 먼저 말을 건네시는 하나님을 연상하게 한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사 1:2).”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말씀을 건네실 때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 17:10).” 우리는 듣는 자의 자세를 바로하게 하신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1-2).”
 
늘 우리 주님이 하신 말씀 가운데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심과 같다. 우린 듣고 이를 준행한다. 또한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말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말하고 그 자녀는 후세에 말할 것이니라(욜 1:3).” 우리 후대로 알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말하고’, ‘말하고’, ‘말할 것이니라.’ 할 때, 계시의 말씀은 그렇게 전달되어 전수되었고, 그 연속성과 역사성은 성경으로 완성되어 우리 앞에 말씀이 있다. 우린 어느 시대보다 원활하게 말씀을 들을 수 있고, 전할 수 있는 은혜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마 10:40).” 곧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이를 듣고 묵상하며 삶으로 되새길 때,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마 24:32-33).” 이에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엡 5:17).” 듣고 전하여, 고하고, 고하는 일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그들로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계명을 지켜서
그들의 조상들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들의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이 하나님께 충성하지 아니하는
세대와 같이 되지 아니하게 하려 하심이로다
(시 78:7-8).
 
그러므로 우린 “훈계에 착심하며 지식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잠 23:12-14).” 한데 오늘에 이르러는 주객이 전도되듯 아직 사리분별이 어려운 아이들이 왕 노릇하고, 더 나아가서는 비인격적인 애완동물이 주인행세를 한다. 스스로를 ‘집사’니 ‘견공’이니 하며 스스로의 권위를 상실하고, 바른 교훈을 행사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한다. ‘아픈 아이’들이 늘고, 주인인 줄 아는 개들이 판을 친다.
 
후대에 말씀을 전하고 말씀으로 교훈을 세워야 하는 일은 마땅히 행할 성도의 의무다. 어려서 이를 바로 알게 하지 못하면 어른이 되어 세상 풍파에 속수무책이다. 하여 성경은 누누이 강조하신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 6:6-7).” 그런 거 보면 나는 어릴 때 반 강제로 설교를 받아 적게 했고, 교회 일에 일찍부터 참여시킨 부친의 강요가 이제는 감사할 따름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주일이면 교회 청소를 해야 했고, 고등학교 때 벌써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운전을 하면서 교회 차량을 운전해야 했다. 그땐 그게 참 어쩔 수 없는 것이어서 지겹기도 하였는데 돌아보면 그때가 은혜였다.
 
함께 자랐던 형들이 목사가 되고 선교사가 되고 신학교 교수로 헌신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나와 세례를 받았던 예닐곱 명의 아이 중에 둘이 목사가 되고 하나는 사모가 되고 하나는 선교사로 나갔다. 투덜거리면서도 우리가 함께 했던 그와 같은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아서 어쩔 땐 그때의 신앙이 기초가 되어 나를 붙들었음을 인정한다. 곧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요즘은 이 일이 무슨 상전 모시듯 하고 있으니, 말씀을 물려주지 못하면 죄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어서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욜 1:4).”
 
여기서 ‘팥중이’, ‘메뚜기’, ‘느치’, ‘황충’ 등은 모두 메뚜기과로 메뚜기를 가리킨다. ‘많은 떼’를 이루고 휩쓸어서 곡물과 식용작물을 해치운다. 급하게 갉아먹는 것으로 ‘끝장을 낸다.’ 메뚜기 재앙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중심으로 흔히 발생하였다. 이는 장차 시행될 심판이 그만큼 철저하고 무차별적으로 감행될 것임을 알린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네 가지로 벌하리니 곧 죽이는 칼과 찢는 개와 삼켜 멸하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으로 할 것이며 유다 왕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예루살렘에 행한 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들을 세계 여러 민족 가운데에 흩으리라(렘 15:3-4).” 곧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내가 나의 네 가지 중한 벌 곧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전염병을 예루살렘에 함께 내려 사람과 짐승을 그 중에서 끊으리니 그 해가 더욱 심하지 아니하겠느냐(겔 14:21).”
 
이에 따른 그 결국을 두려워하며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려야 할 것’을 알게 한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1-22).” 그리하여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 4:1-2).” 하는 데서 우린 선택해야 한다. 안 그러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 1:8-9).”
 
모처럼 ‘보이스피싱 당한 아이’가 왔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으며 자기 차를 구매하다 수천의 돈을 사기 당했다. 말로만 듣던 그 일은 정말이지 순간적이었고 감쪽같았다. 팔뚝이며 허벅지에 문신을 하고 여기저기 멍들고 상처 난 몸을 건들거리며 찾아왔다. 막노동에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 보니 몸짓은 거칠었지만 말투나 그 심성은 여전히 순수하였다. 예배와 말씀을 권해도 더는 ‘그럴 시간이 없다’는 말로 회피하였고, 사는 게 전투인 듯 불신이 가득했다. 사기당해 진 빚만 갚으면 낙향하여 살 것처럼 그리 마음을 먹고 있는 것 같았다. 줌으로라도 같이 예배드리자, 하고 권하지만 대꾸가 없었다. 그야말로 우리 영혼을 순식간에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욜 1:4).” 그런 형국이다. 벌써 곧 서른. 나는 아이의 나이 앞에서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더듬었다.
 
이어서 “취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울지어다 포도주를 마시는 자들아 너희는 울지어다 이는 단 포도주가 너희 입에서 끊어졌음이니(5).” ‘너희는 깨어… 울지어다’ 하는 말씀이 나의 몫이면서 동시에 아이를 위한 것일 거였다. “다른 한 민족이 내 땅에 올라왔음이로다 그들은 강하고 수가 많으며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6).” 마치 잃어버린 아이를 보듯 나는 어루만지려하나 저만치서 그는 무덤덤하였다. 마치 사는 게 다 부질없다는 듯. ‘메뚜기가 큰 떼를 이루어 집단적으로’ 우리 영혼을 갈취한 것처럼 가공할 만한 ‘메뚜기 재앙’ 같은 오늘을 사는 일이 최정방에서의 생이라. 나는 아이를 어떻게든지 붙들어주고 싶어 다시 글쓰기를 권했지만 저는 몸을 혹사시키며 돈벌이에나 전념하려 들었다.
 
“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벗겨서 버리니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도다(욜 1:7).” 곧 우리의 잃어버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여,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더라(왕상 4:25).” 이들 나무 그늘이 하나님의 돌보심이어서, 결국 이를 지키지 못할 때,
 
그들의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치시며
그들의 지경에 있는 나무를 찍으셨도다
(105:33).
 
‘내 땅’, ‘내 포도나무’, ‘내 무화과나무’ 곧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아이의 노여움이 어느 훗날 주의 품에서 찬송이 되기를. 하나님의 택한 백성답게, “농부들아 너희는 부끄러워할지어다 포도원을 가꾸는 자들아 곡할지어다 이는 밀과 보리 때문이라 밭의 소산이 다 없어졌음이로다(욜 1:11).”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내심 속상하여 주의 이름을 되뇌었다. 우리는 ‘농부들’로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들’이다. 그런데 “포도나무가 시들었고 무화과나무가 말랐으며 석류나무와 대추나무와 사과나무와 밭의 모든 나무가 다 시들었으니 이러므로 사람의 즐거움이 말랐도다(12).”
 
어떤 슬픔이 아이를 보내고 남았다 했더니, “슬프다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르리로다(15).” 이에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불이 목장의 풀을 살랐고 불꽃이 들의 모든 나무를 살랐음이니이다(19).” 곧 ‘여호와의 날’ 즉 고통의 심판이 다가오는데, “들짐승도 주를 향하여 헐떡거리오니 시내가 다 말랐고 들의 풀이 불에 탔음이니이다(20).” 하실 때에,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눅 21:34-35).” 이와 같은 말씀 앞에 앉아 그 의미를 묵상하다 누구를 생각하고, 어떤 일을 두고 주께 아뢰게 되는 것….
 
우리를 내주어
그들의 이에 씹히지 아니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124:6-7).
 
궁극적으로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수 1:5-6).” 그러므로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3:5).” 이는 곧,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나는 나의 일과 아이의 일과 우리로서는 속수무책인 여러 일들 앞에서 주께 승복한다. 두 손 들고 주의 도우심을 바란다. 할 때 아무리 삶이 어떠하다 해도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롬 6:22).” 그러므로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