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는 영원히 있겠고 예루살렘은 대대로 있으리라 내가 전에는 그들의 피흘림 당한 것을 갚아 주지 아니하였거니와 이제는 갚아 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에 거하심이니라
욜 3:20-21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 126:5-6
하나님은 징계하시나 또한 회복시키신다. 선민에 대한 예언에 이어 오늘은 선민의 원수들에 대해 말씀하신다. ‘여호와의 날’ 곧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원수들에게는 준엄한 심판만이 있다. 오늘 1절, “보라 그 날 곧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가운데에서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그 때에” 곧 바벨론이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하고 이스라엘이 해방될 때에,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사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흩으신 그 모든 백성 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네 쫓겨간 자들이 하늘 가에 있을지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모으실 것이며 거기서부터 너를 이끄실 것이라(신 30:3-4).”
바로 ‘그 때에’, “이방들이여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먼 섬에 전파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을 흩으신 자가 그를 모으시고 목자가 그 양 떼에게 행함 같이 그를 지키시리로다(렘 31:10).” 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저는 하나님이심을 온 세상이 인정하게 하실 것이다. 이는 필연적인 것으로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9).” 하여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합 2:14).”
이렇게 믿는 자들이 장차 얻게 될 구원의 은혜를 알린다. 우리 믿는 자를 징계하시는 도구로 사용하시다, 대적자로 규정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원수들이다. 그 때에 “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기업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에서 그들을 심문하리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을 나라들 가운데에 흩어 버리고 나의 땅을 나누었음이며 또 제비 뽑아 내 백성을 끌어 가서 소년을 기생과 바꾸며 소녀를 술과 바꾸어 마셨음이니라(욜 3:2-3).” 악은 결국 선을 단련하는 데에 쓰이고 그 끝은 심판이다. 하나님이 심문하실, 심판하시고, 다스리시고, 결정하는 ‘여호와의 심판’을 우린 염두에 두고 산다.
분명히 거명되면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 사방아’ 하는 이곳은 실제 고대 노예 상인이 많았던 곳이다. 사람을 상품화하고 성과 노역을 착취하는 것은 그 어떤 죄보다 심각하다. 이에 ‘내가 속속히 너희 머리에 돌리리니’ 곧 ‘빠르고도 급히’ 그 머리에 돌리신다함인데,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 사방아 너희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희가 내게 보복하겠느냐 만일 내게 보복하면 너희가 보복하는 것을 내가 신속히 너희 머리에 돌리리니(욜 3:4).”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산성이 되소서
…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시 31:2, 37:2).
이때에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사 58:8).” 하나님은 환난 가운데 있는 성도를 속히 건지신다. 이와 같이 또한 우리의 죄에 대하여도 “만일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언약을 범하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들에게 절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미치리니 너희에게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멸망하리라 하니라(수 23:16).” 그 멸망이 ‘속히’ 하리라는 말씀.
이렇게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만국으로 확장한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벧전 4:17-19).”
이와 같이 그 연결점을 말씀에서 찾아 읽다보면 어느새 그 답이 오래 전에 우리에게는 열려 있었다는 것을 알 게 된다. “그러므로 주께서 주의 일을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하신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시리라(사 10:12).” 그 시작점과 끝점을 알 때 우린 오늘의 어려움이 무조건 어렵고 불편하지만은 않다. 또한 요지경인 세상에서 왜들 저러고 사나, 싶은 의문점에 해답을 알게 된다. “보라 내가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에서부터 재앙 내리기를 시작하였은즉 너희가 어찌 능히 형벌을 면할 수 있느냐 면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칼을 불러 세상의 모든 주민을 칠 것임이라 하셨다 하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25:29).” 결국 우리의 죄로 만국을 도구로 사용하셨던 이가 우리를 회복시키시면서 만국을 심판하심이다.
최종적인 하나님의 심판은 궁극적으로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한 것이었음을.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과 더불어 싸워 그들에게 이겼더니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위하여 원한을 풀어 주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들이 나라를 얻었더라(단 7:21-22).” 이것은 성경의 원리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이에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그가 범람하는 물로 그 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나훔 1:7-8).”
곧 말씀은 하나님과 우리를 동일시하신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영광을 위하여 나를 너희를 노략한 여러 나라로 보내셨나니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에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 이는 내가 와서 네 가운데에 머물 것임이라(슥 2:8, 10).” 그 하나님의 역사는 그 어떤 권능으로도 막을 자가 없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일을 행하신다. 그리하여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6:19-20).” 이는 곧 뿌린 대로 거둔다는 원리, 심은 대로 거둔다는 원리와 같다. 오늘 본문 6-8절 말씀이 이를 설명하고 있다. 그 때에,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갈 5:18).” 그러나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19-21).” 이에 또한 상대적으로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22-23).”
이 한 편의 설교원고에서 바울의 사상이 성경의 원리를 고스란히 담아 신학적으로 정립하고, 실제적으로 우리 삶에 적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게 된다. 이를 지혜자의 명료한 진술로 파악하면, “악인의 삯은 허무하되 공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하니라 공의를 굳게 지키는 자는 생명에 이르고 악을 따르는 자는 사망에 이르느니라(잠 11:18-19).” 이를 보면서 하나님은 말씀하신 바 그 말씀을 반드시 이행하신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리하여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사 40:8).” 하심을 명심하면,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 하시는 말씀에서 성경뿐임을 다시금 확신하게 한다. 곧 그 어떤 일보다 말씀을 읽고 적용하는 묵상만이 우리 영혼을 바른 길 가게 하는 것임을 인정하게 된다.
장모는 전날 밤 12시가 다 돼 잠든 나를 깨웠다. 잠결에 무슨 일인가 했더니, 어느 훗날 주 앞에 섰을 때 ‘나는 너를 모른다 악한 종아!’ 하실까 하는 두려움으로 이를 어쩌면 좋은가 하고 물어보고 싶으셨단다. 나는 그 두려움이 유익하다고 여겨 종일 답을 미루고 저녁에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설명하였다. 가령 아들 집에 갔을 때 손위 처남이 누구세요? 우린 당신을 알지 못합니다! 할까 봐 두렵습니까? 하고 물었다. 장모는 그럴 리 없지! 하고 말도 안 되는 소릴 한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런데 하물며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집에 들어갔을 때, 난 널 모른다! 하고 말씀하실까 두렵습니까? 하고 내가 물었다. 장모는 평생을 우상을 섬기는 삶을 살았다. 본의 아니기는 하였으나 여전한 저들의 삶에 의탁하여 어린 시절부터 한 생을 거반 다 바친 셈이다.
이를 두고 내심 죄의식에 매였고, 급기야 자신의 믿음을 확신하지 못하는 지경에서 그와 같은 두려움으로 시달리는 거였다. 나는 그와 같은 두려움이 주를 경외하는 자의 바탕이 된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에녹은 멸망이 올 것을 알고부터 하나님과 동행하다 들림 받았다. 노아는 홍수 심판을 대비하여 한평생을 방주를 지었다. 모세는 애굽으로 들어가 주의 자녀들을 이끄는 일에 두려움이 앞서 몸부림쳤고, 다윗은 늘 광야로 쫓겨 살며 누구보다 절박함으로 주를 바라고 찬양하였다. 바울 또한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이는 믿음의 확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어쩔 수 없는 연약함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어서였다.
이를 일일이 다 설명할 수는 없었으나 지옥을 두려워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자들이고, 주의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두려움에 돌이켜 베옷을 입는 자는 성도들이다. 정작 지옥에 갈 자나 심판으로 멸망당할 자는 이를 두려워하지 못한다. 저들이 두려워한다면 돌이켜 주의 이름을 부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우상(자신들의 신념?)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이는)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115:4-7).
고로 안 믿는 자들은 안 믿는 게 아니라 못 믿는 것이다. 저에겐 이를 허락하지 않으셨다. 다만 저들의 역할은 ‘유다 자손과 예루살렘 자손들을 멀리 떠나게 하였음이니라.’ 오늘 본문 6절, “또 유다 자손과 예루살렘 자손들을 헬라 족속에게 팔아서 그들의 영토에서 멀리 떠나게 하였음이니라(욜 3:6).” 다시 말해 사탄의 존재 이유는 믿는 자로 믿음을 떠나게 하고, 하나님을 아는 자들에게 세상을 알려 더욱 합리적인 이성과 판단으로 우리 영혼을 눈멀고 귀멀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두도다(14-15).”
나는 장모의 두려움은 정상이며 구원 받는 자녀로의 특징이라고 설명하였다. 우리 죄의 문제는 해결되었고 구원은 기정사실이나 그러는 동안 생을 다할 때 우리 안의 두려움과 염려와 근심은 그래서도 찬송이 되게 하고 기도하게 한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13:3-4).
노심초사 우리는,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18:4, 6).
두려움으로 나는 강하다. 주 안에 거함으로 남들은 아무렇지 않은 죄에 대하여 치를 떨며 내 영혼이 죽을까 하여 무섭다.
내가 어릴 적부터
고난을 당하여 죽게 되었사오며
주께서 두렵게 하실 때에
당황하였나이다
(88:15).
날마다 영적전쟁 중에,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계 12:7-8).”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겪는 여러 문제들은 사사로운 게 아니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그럴 때 두려움은 필수고 염려와 근심은 들숨과 날숨 같으나,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126:1).
꿈만 같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오늘의 나의 은혜는 주가 값을 주고 사신 것이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이는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 8:24-25).” 그러므로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2-3).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말씀 붙들고 깨어서,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2).” 그 때에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호 10:12).” 이에 생은 고달프고 마음은 어렵다하나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이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5-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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