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전봉석 2023. 11. 10. 04:42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시 31:24

 

 

앞서 5장에서 우리 성도가 지켜야 할 의무를 가르치셨다. 이어서 오늘은 실제 생활에서 범하기 쉬운 어리석음을 밝혀 ‘사람에게 보이려는’ 외식하는 자의 그릇됨을 알리신다. 구제(1-4)와 기도(5-15)와 금식(16-18)에 대하여 더욱 그러하다. 이는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3대 의무이기도 하였다. 경건의 능력은 없고 경건의 모양만 있는 외식주의에 대한 경계의 말씀이다.

 

또한 우리가 물질에 대하여 올바로 사용하고 청지기적인 사명으로 이를 사용해야 할 것을 알리신다. 흔히 배금주의(拜金主義)라 하여 돈을 최고로 여기고 숭배하여 삶의 목적으로 돈을 모으는 태도를 일컫는다. 실제 돈이 귀한 세상이다. 돈이면 못하는 게 없는 시대이기도 하다. 이를 우리 주님은 ‘하늘에 쌓아두는 보물’로 간주하고 계신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마 6:20).” 이는 우리 마음이라는 게,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21).” 하심과 같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릴 상급과 축복을 구하며 사는 일은,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1-12).” 그러므로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딤전 6:17-18).”

 

이에 따라 우리의 구제나 기도나 금식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도, 재물을 가지고 사람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누리고 부족함이 없이 살고자 하는 일은 모두 헛것이다. 그러므로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잠 11:24).” 이에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약 5:2-3).”

 

오늘 우리가 말세라 여기고 살면서 돈을 모으고 재물을 축적하는 데 혈안이 되어 산다면 하늘에 쌓을 것이 없게 허비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 6:38).” 이에 바울은 더욱 들어가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딤전 6:17-18).”

 

그렇다면 하늘에 쌓는 보물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줄까? 다시 오늘 20절을 보면 “…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하셨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이 땅에 축적하는 재물은 좀이나 동록이 해하고, 도둑이 이를 가져가지 일쑤다. 지혜자는 이 땅에서의 누림이 헛된 까닭은 기껏 모으나 그것을 하나님이 임의로 그의 기뻐하시는 자에게 주신다는 것이다.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전 2:11).” 왜냐하면 “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다하여 수고하였어도 그가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그의 몫으로 넘겨 주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며 큰 악이로다(21).”

 

실제 5만 원 권의 상당부분이 시장에 풀리지 않는다고 한다. 모두가 어디에 비축하고, 또한 금이나 보석으로 바꾸어 이 땅 은밀한 곳에 축척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이를 어리석게 보고 “기록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고후 9:9-11).” 그러므로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잠 11:25).”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왜들 그렇게 돈돈거리며 살 수밖에 없는지 알 수 있었다. 이사를 하고 새로 가구를 들이거나 바꾸고, 교회를 이전하려 할 때도 결국은 돈이 문제였다. 가정이든지 교회이든지, 사람이 사는 동안에 모두는 돈을 귀히 여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나는 십 수 년 전, 그러니까 주의 부르심에 응하고 교회를 지키는 자로 살면서 그전에 추구하던 돈부터 내려놓았다. 적게 주시면 적은 금액으로, 보다 많이 주시면 조금은 윤택하게(?) 이를 사용하면서 나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물론 그에 따른 여파로 아내의 수고와 아이들의 부족함에 있어서는 왜 주눅이 들지 않을까만… 살아온 날을 돌아볼 때, 많았어도 늘 모자랐고 부족할 때는 더 없이 갖고자 하였다. 그러느라 돈 벌 궁리를 하고, 실제 누구를 대하는 데 있어 순수한 마음보다 손익계산을 따지게 된다.

 

이상하기는 교회로 글방이 거듭나면서 무료로 글쓰기를 가르치고, 어디 출품이나 공모전, 입시를 돕겠다고 하는데 이를 꺼려한다. 나는 이상한 돈의 생리를 잘 안다. 예전에 글방을 할 때 나의 전략은 다른 데보다 교육비는 비싸고, 수업 시간은 인색하게 하였다. 일주일에 한 번, 월 4회 기준으로 일대일로 하면 곱절을 받았다. 그건 사람들의 이상한 심리 때문이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래서 수업시간은 늘 꽉 차서 다음 순번의 대기자도 여럿이었다. 물론 그때는 인정하지 못하고 살았으나 모두가 주의 은혜였다. 나름 공부 잘하고 수준 있는 아이들이 모여들었고, 내가 잘 가르쳐서가 아니라 저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학의 논술을 풀어낼 수 있는 능력들이 있었다.

 

이번에도 교회 이전을 두고 마땅한 장소를 물색하는데 늘 걸리는 문제가 돈이었다. 마음에 들면 터무니없이 비쌌고, 우리 수준에 맞추려니까 너무 낙후되거나 외진 곳이 대부분이었다. 결국은 주가 두시는 곳에서 주가 주시는 만큼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새삼 인정하는 시간이 되었다. 내가 어찌 하려고 할 때는 수고와 애씀은 마음 상하는 일로 돌아왔다. 처음 교회를 시작하며 가졌던 마음, ‘한 영혼’의 씨름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주가 두신 곳에서 나는 다만 지키는 자로 그 섬김을 다하는 것이다. 다들 무슨 기도회니 어떤 전도 집회니 하면서 교회를 일구고 확장하나 나에게 두신 사명은 이로써 족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필요하면 주가 들어 옮기시라, 하고 더는 내가 나서지 않기로 하였다.

 

사람의 생각은 정직하지 못하다. 교회를 위한다하나 남을 의식하고 사람을 위하여 우선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 안에 실은 그와 같은 마음이 들어찼던 것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 사람들의 시선과 나의 마음의 족한 것을 구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결국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고, 마음이 있는 곳에 몸이 머무는 것은 당연하였다. 어제 8절 말씀에서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에 대해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 하시는데, 내가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나의 마음이 청결하다는 의미이고, 나의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나의 생각과 의지가 앞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흔히 기도 받고, 어떤 응답에 따라 행한다는 소리에 나는 종종 의아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우리가 기도를 받고 행한다는 것은 때로 무모하고 황당하기 때문이다. 미련하고 답답할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노아나 아브라함과 같이 성경의 선진들은 그러하였다. 사람들은 모두 아니라 할 때, 저는 오늘도 나무를 베고 격자로 엮어가며 방주를 지었는데 무려 120년이었다. 또는 일가친적이 모두 모여 살던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애매한 말씀을 따라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길을 떠난다는 게 어이없다. 요즘 우린 그게 주의 일이라 해도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하고 손해 보지 않는 장사꾼처럼 대비하고 준비하고 차선책도 마련하고 하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고 말씀을 이어가면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마 6:22-23).” 여기서 눈은 혜안이 있는 남다르게 신통한 것이 아니다. 앞서 ‘마음이 청결한 자’로 말씀만을 의지하고, 예수만을 바라보고 가는 ‘제자의 길’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것,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딤전 6:17-18).”

 

우리가 그럴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그러할 때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24).” 오늘의 수고로 족한 삶이어서 이는 최소한 들꽃보다 귀하고, 참새보다 귀히 여기심을 받는다는 사실에서 확실하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26, 30).” 그러므로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시 25:15).

 

여러 어려움과 변수가 우리 앞에 있다. 이를 최소화하려 다들 기를 쓰고 돈을 가지고, 재물을 쌓아둔다. 그러나 오늘 기도한다.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119:37).

 

우리의 영적인 눈을 어둡게 하는 제일은 돈이었다. 물질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물론 교회도 돈이 필요하다. 먹고 사는 일에서는 물론 의를 행하고 선을 구하는 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에 앞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실은 자기만족을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닌지. 분명히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 그런데 무엇이 문제이겠나? 돈이 없어서? 사람이 없어서? 흔히 말해 부흥이 안 돼서? 하면 그걸 왜 내가 짊어져야 한담?!

 

나는 못한다고 할 때 주가 강권하심으로 끌어다 세우셨다. 그리고 오늘 여기에 두셨다. 그런 주님이 하실 일이다. 나는 다만 내 자리를 지키고, 오늘도 이처럼 주의 말씀 앞에 앉히시고 나로 하게 하신 것을 감당하며… 새벽에 30여 분 달려서 교회로 오는 길이 익숙해지면서 그 시간이 기도가 되고 누구를 생각하며 주께 아뢰는 시간이 되었다. 그런 것이다. 주가 하시는 일이란, 사소한 것 같으나 그와 같은 사소함으로 주가 살아계심을 알게 하신다. 그러므로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하여 나는,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영원히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주의 공의로 나를 건지소서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31:1, 3).

 

그러할 때에,

 

내가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는 자들을 미워하고

여호와를 의지하나이다

(6).

 

오늘은 아이가 온다. 여러 번 아이를 생각함은 주가 저를 돌이켜 주의 자녀로 그 가정을 변화시켜주시기를. 그리하여,

 

내가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은

주께서 나의 고난을 보시고

환난 중에 있는 내 영혼을 아셨으며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8, 14).

 

어떠하든지,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15).

 

그러므로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23-2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