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전봉석 2023. 11. 12. 04:53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마 8:8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그들이 굶주릴 때에 그들을 살리시는도다

시 33:18-19

 

 

주가 우리 곁으로 오셨다. 낮고 천한 자리로 전능왕이 오셨다. 그것은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3-4).”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8:9).”

 

예수님 곁에는 항상 주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늘 1절은 앞서 말씀하신 산상 설교를 듣고 이에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그런 가운데 절박한 사람들이 예수 앞에 나오는 것을 본다.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2).” 이에 주님은 이를 거절하지 않으신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3).”

 

여기서 우리가 주를 따른다는 것에 새삼 그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이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곧 자신의 필요로 예수를 찾고 주 앞에 나오나 곧 주를 사랑하는 자들로 그의 말씀에 순종하게 된다.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요일 2:5).” 하루하루의 삶이 느닷없는 일로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결국 그것으로 주를 찾게 하려 하심이었다.

 

“너희는 거기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 바 보지도 못하며 듣지도 못하며 먹지도 못하며 냄새도 맡지 못하는 목석의 신들을 섬기리라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신 4:28-29).”

 

스스로 만들어 이로써 위안을 삼으려는 사회에서 정작 우리는 ‘목석의 신’을 섬기는 게 아니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고 만날 것이다. 새로 이사 간 곳에는 유난히 교회도 많고 보살들도 많다. 그만큼 우리는 살면서 우리 이상의 어떤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는 것일 텐데, 예수 앞에 나오는 사람들도 여러 가지라 자신들의 절박함과 그 필요로만 주 앞에 오는 이들도 있고, 이로써 주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가운데 ‘가버나움’에서 만난 백부장이 인상적이다. 저는 군인으로 로마인이었다. 예수를 알고 찾아와 자신의 하인이 중풍병에 걸린 것을 말하며 괴로워하는 저를 고쳐 주시기를 바란다. 곧 이는 예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에 그리 바랐다. 예수님은 저와 같이 가서 고쳐주려 하셨는데, 백부장은 명령만 하시면 된다고 아뢴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 이유는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9).” 곧 저는 예수님의 권능을 알았고 뿐만 아니라 그의 권세 또한 인정하는 것이었다.

 

이를 듣고 예수께서 놀랍게 여기신다. 말씀하시길,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10).” 다들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주의 권능에는 신기해하면서 정작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의 권세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이를 보면서 예수님이 무서운 말씀을 하신다.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11-12).”

 

오늘의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에서의 전쟁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저들이 과연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그의 권세를 인정하기는 하는 것인지…. 우린 오직 믿음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 27:25).”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로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시고 그 이상의 도우심으로 나를 붙들고 계심을,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13).”

 

오늘의 어떤 어려움, 혹은 염려와 근심으로 주를 바라나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주는 나를 귀히 다루시며 함께 하셨다. 고로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29).” 내 안의 어떤 회의와 갈등, 그것으로 주 앞에 엎드려 절박하게 주를 부를 때 필요한 것은 오직 믿음이었다. 이를 백부장의 이야기에서 확신하게 된다.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마 8:13).” 곧 오늘 나의 ‘믿음대로 될지니라.’ 하실 때 이를 점검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어떠한지? 여러 생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갈 3:11).” 그 누구도 율법에 적합하여 구원에 이를 사람은 없다. 이를 오늘 시편은 이렇게 찬송한다.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

구원하는 데에 군마는 헛되며

군대가 많다 하여도 능히 구하지 못하는도다

(33:16-17).

 

곧 우리의 능력과 그 어떤 권능으로는 구원을 이룰 수 없다. 다만,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그들이 굶주릴 때에 그들을 살리시는도다

(18-19).

 

주가 우릴 살피시고 건지시며 살리신다. 그때 우리 안에 드는 어떤 의심 또는 갈등에 대하여,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막 9:23).” 우리의 믿음이 가진 놀라운 능력을 일깨우신다. 믿음으로 능치 못할 게 없다는 사실, 곧 우리의 바람이 그 이상의 것으로 주어질 것임을 알게 한다. 이는 곧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곧 우리에게는 믿음만이 필요하다.

 

믿음으로 파생하여 우리의 순종을 이룬다. 곧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눅 17:6).” 곧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마 8:16-17).” 말씀에 따라 예수께서 순종하신다. 하여 그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다.

 

그런 가운데 누군 일상의 여러 일에 시달린다.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마 8:21).” 그러나 주님은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신다(22). 이는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눅 9:62).” 하신 말씀으로 가름할 수 있다. 곧 우리 신앙은 최선과 차선이 구별될 수 없다. 무엇을 하든지 믿음으로 말씀 가운데서 우선하는 최선만 있을 뿐이다. 곧 그때는 주를 만날만한 때이다. 다른 길, 차선을 모색하게 될 때,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 55:6).” 이를 바울의 고백으로 들으면 이해가 빠르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7-9).”

 

앞서 구하고 바라던 것을 모두 해로 여기고, 배설물 같이 다룰 때 오늘의 선택이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나는 원하고 구하고 믿지만 설령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곧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앞선 믿음의 사람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 하면,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히 11:39-40).” 곧 내가 바라고 구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을 때는 ‘더 좋은 것을 예비’하신 것을 확신한다.

 

나는 자주 이를 느낀다. 내 곁의 사람들도 그런 경우가 많다. 누구보다 열심을 다해 주의 뜻을 구하고 살펴 ‘그 일’을 추진하려 한 것인데 그 결과가 우리를 좌절시키고 넘어뜨릴 때, 더는 소망이 없어 누구는 제 갈 길로 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믿고 나아가는 길, 그리하여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4).” 곧 우리가 성취하고 바라는 것이 이 땅에서의 일이 아니다.

 

예수께서 병든 자를 고치시고 학대당하는 자를 위로하시며 저들과 함께 하심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그 너머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할 때에 우리의 그 의아함이 곳 백부장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었고,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저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도 주의 뜻을 따른 것이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 45:7, 50:20).”

 

이를 우리가 바로 알고 붙들 때 보이는 것 이상의 것을 보고 느끼는 것 이상의 것을 찬송하게 된다. 누구는 일평생 일구어 주의 뜻에 따라 선용한 것인데 오히려 그 일로 어려움을 겪고, 누구는 혼신을 다해 오직 한 가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을 실천하려 하는데 자꾸 막히고 부딪치며 온갖 어려움에 시달리게 되면서….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래서 더욱 주를 바란다. 주밖에 의지할 데가 없다. 결국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 29:12).”

 

그것이 이 땅에서의 일일지 저 천국에서의 일일지 우리는 알 수 없으나, 우리의 푯대 저 궁극적인 본향은 하나님의 나라에서이다. 하여 오늘에 더하시는 어려움이 행여 우리로 그릇된 길로 가지 않도록, “이르시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하겠으나 그들을 따르지 말라(눅 21:8).” 우리가 믿은 자로 살면서 당하는 고충과 남모르는 슬픔을 안고 주 앞에 설 때,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

(32:1).

 

즉 ‘하나님을’ 그러니까 ‘하나님의’ 무엇을 바라고 구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만으로!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대상 29:13).” 이는 어떤 조건이나 현상에 따른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마 19:17).” 오직 선하신 분을 향하여,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아름답게 연주할지어다

(2-3).

 

우리 하나님은 말씀으로 모두 하셨다. 저는 말씀이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바로 그 말씀이 오늘도 우리 가운데 충만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 14).” 이는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 20:1-2).” 이 놀라운 사실이 오늘 우리 삶에서도 말씀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곧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9).

 

그리하여,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12).

 

곧,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그들이 굶주릴 때에 그들을 살리시는도다

(18-19).

 

이에 우리의 믿음은 백부장의 그것 이상으로,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우리 마음이 그를 즐거워함이여

우리가 그의 성호를 의지하였기 때문이로다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소서

(20-2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