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행 17:30-31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 밭 가는 자들이 내 등을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사 악인들의 줄을 끊으셨도다
시 129:2-4
‘알지 못하던 시대’에 대해서는 그들이 아는 대로 살다 하나님 없이 있다. 이에 대하여는 더러 여러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나,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하면 우리로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7-8).” 이는 나와 하나님과의 문제다.
어릴 때도 그러했듯이 이와 같은 의문은 어른이 되어서도 같다. 가만히 의문의 출처를 살피면 저희가 믿음에 대해 갈등하면서 비롯된 것을 알 수 있다. 진정 사랑할 때는 어떠하든지 보다 나의 사랑을 갈망한다. 이는 저를 먼저 사랑함인데,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 하시는 것도, 우리에게 향하신 사랑은 우리의 어떤 성과나 결과에 있지 않고, 우리 그 자체에 대해 일관되심을 뜻한다. 그러므로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롬 15:20).”
주를 사랑함은 경쟁의 의미가 아닌 내 안의 절대적인 사랑의 의지에서이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행 5:42).” 삶이 곧 사랑이 되어 주를 생각함이 범사의 일이어서 예배가 된다. 그렇게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사랑함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주어진 상황 속에서도,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 126:5-6).
아직 우리가 닿지 않은 지점에 도달한 듯 산다. 믿음이란 터무니없고 사랑이란 맹랑하여 돼도 않을 것이라 해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요 4:37-38).” 나는 다만 이 마음을 주의 마음에 얹을 뿐, 주가 다 하신 일에서 거할 뿐이다.
이때 바울과 실라와 같이 성경을 근거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한다.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2b-3).” 오늘 본문에서 제일 먼저 눈에 와 닿는 대목이었다. 곧 성경을 근거함은 성령과 믿음으로 충만한 증거이다.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행 11:23-24).”
어느 순간부터 성경을 말할 때 성경으로 말하게 된다. 나의 생각이나 지식으로가 아니라 성경에 이르신 대로 전하기를 원한다. 그렇게 하여서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딛 1:9).” 누구를 대하고 위하는 일은 바라는 것처럼 행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42:2).
저마다 그 속에 주의 영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다. 이것이 죄에 억눌려 더러는 완고함으로, 더러는 거짓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이로 말미암아 땅이 떨지 않겠으며 그 가운데 모든 주민이 애통하지 않겠느냐 온 땅이 강의 넘침 같이 솟아오르며 애굽 강 같이 뛰놀다가 낮아지리라(암 8:8).” 하여 저들은 알게 될 것이다. 두려워도 하다 경외함으로 생명이 있는 사람이다. 이는 가장 원초적인 기초이다. 각종 귀신을 소재로 하고 어떤 샤머니즘을 바탕으로 하여 상상력을 가진 상품으로 영화나 게임의 소재로 팔리는 것도 그와 같은 본능 때문이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4-15).”
이미 우린 들었고 보았고 알고 있음으로, 알지 못하던 시대의 사람들보다 그 책임이 무겁다. 사람은 행위로 그를 알 수 있다. 말이나 능청으로 저를 믿을 게 없다.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말이 아니라 행함으로 저를 본다. 곧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 7:16-18).”
개인적으로 사업하는 이나 장사하는 이들의 말을 흘겨듣는 것은 그 때문이다. 말이 앞서고 스스로 장담하는 사람치고 그 말을 제대로 따르는 행함을 본 적이 없다. 우리 안에 주를 사랑하는 마음도 강하게 드는 말로가 아니라 행함으로다. 행함에는 굳이 말이 필요 없다. 말이 길고 설명이 장황한 것은 자신의 행함을 자신도 장담할 수 없어서다. 거지 나사로와 부자 이야기에서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눅 16:25).” 곧 우리는 ‘이것을 기억하라’ 하심에서 안다.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이미 받았다.’ 행함이 없는 자는 스스로 취하여 이익을 도모하고 손해를 피하려는 자들이다.
미혹은 사탄의 전술이다. “이르시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하겠으나 그들을 따르지 말라(눅 21:8).” 그러므로 “난리와 소요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리라(9).” 시대가 어수선하고 사는 데 따른 어려움이 가중될 때 저의 행함으로 저를 알 게 된다. 좋을 때야 누가 알겠나? 모두가 고상을 떨다 정작 자기 살 길에서 남을 위할 줄 모르는 자는…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 4:1-2).”
정작 문제는 그때에도 저들은 자신을 뉘우칠 줄 모른다. 스스로는 어쩔 수 없었다. 남의 처지는 고려하지 못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요일 4:6).” 그래서도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수 있다는 게 복이다. 오늘 본문에서 어떤 이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어떤 이는 이를 적대시한다. 받을 수 없는 것은 스스로의 말 때문이고 이상 때문이다.
우리 신앙의 근거는 성경이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행 17:11-14).” 유대인들과 같이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알고, 스스로의 선민의식은 강하였으나 말씀은 더디 믿거나 훼방하였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119:9).
이에 우리의 복은,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1:1-2).
말씀을 나누고 그 말씀으로 서로 권하여 같은 길을 가는 동안에 보면 알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 7:24).” 성경에 기초를 두지 않은 어떤 신앙도 끝내 온전하지 못하다. 세상은 아무리 어떠하다 해도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4-17).”
우리는 살면서 스스로 어리석기는 하나,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행 17:23).” 우리 안에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마음은 필연적이다. 저마다의 고집으로 서로 다른 신을 하나님이라 하는 것일 터, 우리의 무지는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하여서이다. 하여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렘 4:22).”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가까운 데에 있는 하나님이요 먼 데에 있는 하나님은 아니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렘 23:23-24).”
고로 우린 숨길 수도 숨을 수도 없이,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하여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행 17:24-25, 26-27).” 그러므로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28).”
오늘도 이 하루를 살게 하시고, 사는 동안에 주를 바라게 하심은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30).” 우리로 주의 이름을 부르고 회개함으로,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 이는 곧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2).”
오늘도 전하거나 듣고, 듣거나 전하면서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3).” 이와 같이 주일 새벽, 다소 이른 시각에 말씀 앞에 앉히었다.
“모든 생물의 생명과 모든 사람의 육신의 목숨이 다 그의 손에 있느니라(욥 12:10).”
그러므로,
그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먹을 것이 나게 하셔서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하게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104:14-15).
왜?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행 17:31).”
이에,
무릇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여 물러갈지어다
(129: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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