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롬 2:3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하게 하소서 주께서 나에게 갚아 주시리니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이다
시 142:7
생각하기를 멈추기로 했다. 환절기의 바람은 매섭다. 3월의 영하날씨는 한겨울보다 춥다. 홑바지 사이로 칼바람이 들어왔다. 볕이 좋아 장모를 모시고 나오려다 안 그러기를 잘했다. 산책을 하려고 좀 걷다가 딸애와 아내는 널찍한 카페로 숨듯이 들어섰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노트북을 켜고 있거나 책을 읽거나 수다를 떨었다. 창밖으로는 움츠린 사람들이 바삐 걸었다. 나는 무심히 시선을 놓고 있었다. 주께 맡기고 더는 생각하지 않기.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롬 2:1).”
오늘 말씀이 나를 움켜쥔다. 판단은 스스로를 옹호하는 수단이다. 은연중에 상대를 정죄하고 있었다. 정작 그것이 나 자신인 것을 오늘 말씀은 일깨우신다. 남을 판단하기는 자신이 저보다 낫다고 여기는 데서 비롯된다. 저와 다를 바 없이 동일하였다는 데서 이를 멈출 수 있다. 남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나는 옳다고 여기는 한 그와 같은 정죄함으로 정죄를 받는다고 오늘 말씀은 일깨운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2).” 그러므로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눅 6:37).”
그 일이 나로서는 너무 어려워서,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
(시 142:1-2).
하나님께 아뢰기. 저를 향해 또는 누구에게 일러 쑥덕거리는 말이 오히려 나 자신은 물론 듣는 이 또한 죄 짓게 하는 일이었으니, 말하기를 멈추기. 하고 주께만 고하는 것.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1-32).”
말씀 앞에 나를 가만히 세우고 선다. 멈춘 자리에는 볕이 든다. 햇살 좋은 창가에 앉아 친구와 통화하며 감사하였던 내용을 떠올린다. 어려운 처지의 상황에서 주를 바라는 일, 그리하여 새벽예배를 나가고, 말씀 앞에 앉히고, 기도를 하고 주 앞에 예배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게 되는 일. 이런저런 근황을 말하면서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삶은 복되다. 그런 가운데서도 주를 의지하는 일은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남을 말하기에서 자신을 말하며 그 가운데 주가 함께 하심을 고백하는 일은 서로의 감사가 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 12:36-37).”
그러므로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해질 수 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 곧 내가 어찌 주께 용서하심을 받았는지를 인정할 때 누구의 일에 대하여도 함부로 말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전 4:5).”
아직 끝나지 않은 길을 간다. 나는 요셉이 그때마다 가졌을 마음을 생각하고, 노아나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다윗이 가졌을 주를 향한 마음을 짐작해본다. 친구는 어떤 일을 놓고 주께 기도하기를 더하였다. 그러는 중에 주의 은혜가 삶의 곳곳에서 넘쳐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어느 지점에서 문득, 내가 한 게 없는데도 주가 이루어 놓으신 일에 저절로 감사가 넘쳐난다.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62:11-12).
내가 나서 뭐라 떠들게 없다. 주가 행하실 것을, 내가 옳고 그름을 판단할 것도 아니어서 주가 이루실 일을. 그러므로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하게 하소서
주께서 나에게 갚아 주시리니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이다
(142:7).
나의 판단이 나를 감옥에 가두었다. 나의 생각하기와 억울함을 말하는 데서 철창이 두르고 있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출 34:6).” 어떤 어려움으로 우린 고단하고 침울하여 침체된 영혼으로 주 앞에 설 때에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애 3:22-23).” 이와 같은 말씀의 깊이를 알고 새벽 일찍 눈을 뜨면 서둘러 교회로 온다. 잠자리에 들려던 아내는 놀라서 이렇게 일찍 나가는가? 하고 물었다. 눈을 뜨면 주 앞에 우선 세우는 것은,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나는 말씀 가운데서 “주의 성실하심”을 본다.
마치 큰일 난 것처럼 마음은 멋대로 굴고, 생각은 부풀려져 근심을 한껏 쌓아올릴 뿐인데… 생각하기를 멈추기. 말하기를 중단하기. 주가 행하신 일을 묵상하기. 그러고 보면 성경의 여러 믿음의 사람들은 그와 같은 때에 주를 더욱 바랄 수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요나도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욘 2:4).” 고난 속에 던져졌던 욥도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하면서,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13:15).”
시인은 오히려 노래하길,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119:50, 67, 71, 107).
오늘의 고난이 선뜻 감사로 여겨지지 않지만,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는 고난 당하는 자를 변호해 주시며
궁핍한 자에게 정의를 베푸시리이다
(140:12).
비로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게 하신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욜 2:13).” 나로 오늘에 세우시려고 주께서 그처럼 오래 참으시고 또한 기다리셨다.
믿는 친구와의 은혜의 수다는 유익하다. 중년이 다 된 사이에 한 시간 반을 통화하는 동안 주거니 받거니 그간의 일들을 말하다, 어느 대목에서 주 앞에 울컥, 하여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우리의 이 아이러니한 대화는 어찌 설명이 안 된다. 저의 말을 듣다 어느 대목에서 나까지 울컥, 하여 눈시울을 붉히며 주께 오히려 감사하게 되는 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골 3:23-24).”
새로 곁에 두시는 ‘모녀의 이야기’와 저들 사연을 지겨워하다 주가 맡기시는 한 영혼 한 영혼인 것을 새삼 인정하게 된다. 뿌리칠 수 없고 거절할 수 없는 곳에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 21:18).” 주의 강권하심이 오히려 죽고자 할 때 살고자 하게 하신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롬 2:4-5).”
오늘 말씀이 새삼 나의 자세를 바로 하게 하심은,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7, 10).” 그리하심으로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11).” 하여 오늘의 이 모든 일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에겐 그럼에도 가야 할 길이 남아있다. 그러므로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8).” 이에,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39).”
어제 하루 찬바람이 몹시 불던 날,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걷다 들어가 앉은 볕바른 창가에서 주의 위로하심으로 눈이 부셨다. 이 땅의 삶으로 우리 인생이 전부라면 이보다 서러운 일은 없을 것인데, 주가 아신다. 어느 훗날 주 앞에 섰을 때 오늘의 이 이야기가 간증이 되고 찬송이 되어 우리의 영원한 날에 즐거움이 될 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벧전 1:5).” 그러므로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살자, 오늘을 살자. 우리의 더 영원한 날의 한 날이 될 이 날을 기억한자. 비록 이 날은 고단하였고 불온하였고 우리로 쓰러져 넘어지게도 하였으나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결국 이 모든 날은 때가 이르매 거둘 것이어서… 봄볕에 서 있는 길가의 양버즘나무가 꽃샘추위의 날씨에도 새순을 띄우려 겉 가지를 흩어내고 있었다. 얼었다 녹은 땅은 헐거워져 햇살을 땅 속 깊이 스며들게 하였고, 헐거워진 흙의 길을 따라 파릇한 새순이 돋아나고 있었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아 2:10-12).”
우리는 어려운 중에 주를 바라며 주의 나라를 꿈꾸며 소망한다. 그러므로 “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와 …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딤전 1:9-11).”
바람이 차고 유난히 추웠던 3월 어느 날에 나는, 곧 때가 이르러 주의 나라에서 돌아보고 있을 감사와 찬송의 이유들을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사 28:16).” 하여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내가 가는 길에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
(142:2-3).
그러나,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5).
그러므로,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하게 하소서
주께서 나에게 갚아 주시리니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이다
(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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