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전봉석 2024. 3. 24. 03:32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고전 8:6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시 14:2-3

 

 

덕을 더하며 사는 삶이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 5:39-42).” 하시는 주의 명령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므로 주의 사랑이 없이 행하는 지식은 덕을 세우지 못한다. 자기만족에 그친다.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약 3:15-16).”

 

누구의 일을 두고 생각하고 또 무엇을 향하는 데 있어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여러 각도로 주의하게 한다. 가령 누가 글을 쓰는 데 있어 나는 저의 글쓰기가 저의 상한 심령을 주의 사랑으로 치유할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한다. 어떤 주제로 어느 공모전을 추천하면서 혹시나 하여 그에 앞서 독후감 공모를 권하였다. 나의 여러 생각이 무색하게 저는 일거에 거절하였다. 전혀 무엇을 해보려는 의지가 없는 저에게 나는 다가가기가 조심스럽다. 같이 기도하며 저희의 생활을 돕는 이들에게 부탁하였던 마음도 무색하게 되었다. 그러니 또 하나의 고심이 생긴 셈이다. 이대로 그만둘 것인지, 다르게 권하여 저의 글쓰기가 저의 상한 영혼을 주 앞에 내어놓을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아이 일로 어떤 이를 만나고자 하는 일에서도 나는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권하여 좀 만나자고 해야 하는 것인지, 그냥 두고 보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 때를 더 기다려야 하는 일인지… 내가 굳이 연애하는 사람처럼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인데, 이것이 오늘 본문으로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알게 하신다. 가령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고전 8:4).”

 

우리가 알고 모든 것에 자유하나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3).” 하여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5-6).” 이는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9).” 바로 이 때문이 더욱 주의하고 때론 참고 또 다시 새로운 각도로 접근하여 저를 주 앞에 세우려고 하는 것이니,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롬 15:14).”

 

우리가 주 앞에서 주의 하고 또 생각하는 것은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2-3).” 이 모든 게 주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저를 오늘 내 곁에 두심으로 나로 저를 신경 쓰고 돌아보아 서로 돕고자 하는 마음을 주심은 주의 뜻이다. 주가 보내시는 사명으로 받아 이를 행함으로 혹시나 저의 영혼을 앞서 염려하는 것이었으니,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

 

그러므로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11).” 어쩌면 저로 인하여 나는 주를 더욱 사랑하고 주의 도우심을 바라고 간구한다.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를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를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12).”

 

결국 이 모든 일이 우리를 위한 것이어서,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은 그 길로 다니거니와 그러나 죄인은 그 길에 걸려 넘어지리라(호 14:9).”

 

마침 그 공모전의 주제가 ‘효’였다. 소재가 자신이 불효한 것이어서 혹시 저가 자신을 돌아보며 아직 살아계신 여든이 넘은 부모의 심정을 헤아리며 저의 삶이 변화될까 하여. 나아가 저들이 곧 병들어 죽기 전에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알게 할 수만 있다면……. 나의 바람은 한 곳으로 이어져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 3:17-18).”

 

곧 우리의 덕은 단순히 선을 행하는 것으로 하나님 없는 의로움은 자신의 보람으로 그치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으로 전부일 수 있어서,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막 12:33).” 우리가 선을 행함도, 누구를 위하여 저를 생각하는 일에서도 그 이유와 목적은 하나이다. 곧 살아계신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려 하는 것인데, 나는 누구의 거절을 두고 나 혼자 두 마음이 싸우는 전쟁터 같아서 어렵다.

 

이와 같은 싸움이 우리로 주를 더욱 바라게 한다. 굳이 내가 저를 위하고 생각하며 그 아이와 부모의 영혼까지 생각함은 주의 사랑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럴수록 필요한 것은 사랑이어서, 내가 지금 이 일을 해서 뭐하나 싶을 때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지금은 희미해도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13).”

 

그런즉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이 모든 일에서 주를 더욱 믿음으로 한다. 비록 저들이 지금 바라고 구하는 것이 우상인 것을 알 때에,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

(시 115:4,8).

 

어쩌면 우리 안의 죄의 뿌리는 모두가 우상이다. 스스로가 신이 되고자하였던,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였던 천사들이 사탄이 되었고, 사람들이 죄의 원천이 되었다. 하여, “보라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며 너희 일은 허망하며 너희를 택한 자는 가증하니라(사 41:24).” 이를 알지 못함으로 저들은 자기 선택으로 끌려간다. 옆에서 지혜자 일곱이 아니라 해도 자신이 옳다고 여긴다. 그러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겁내지 말라 내가 예로부터 너희에게 듣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알리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나 외에 신이 있겠느냐 과연 반석은 없나니 다른 신이 있음을 내가 알지 못하노라(44:8).”

 

우리로 이를 알게 하심으로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 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무익한 것이거늘 그것들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9).” 하심을 주변의 저들이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주저앉고 제자리걸음을 할 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어리석고 무식하도다 은장이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가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렘 10:14).” 자기가 만든 자기 세계에 산다는 일은 무섭고도 끔찍한 자기아집의 세계다. 누가 뭐라 한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

 

그러니 별 수 없는 것은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26:11).” 이렇게도 권하고 저렇게도 어르고 달래지만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18:2).” 아, 참 어려운 것 같다. 억지로는 할 수 없어 강제할 수도 없는데, 그렇다고 포기하지도 못하게 하시는 이의 뜻은 우리로 이 일이 주를 더욱 바람으로 주와 함께 동역자가 되게 하심이었다. 그러므로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2-23).”

 

우리의 미련함과 어리석음은 별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런 가운데 우리의 섬김으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 나는 요즘 이 일을 자주 목격하고 묵상한다. 내 뜻대로 안 되는 이를 두고 열 번은 포기하고 또 다시는 내가 관여하지 않으려고 하다가도 내 안의 어떤 뜨거움이 나로 하여금 주의 이름을 부르며 저의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시는 일이었다. 실은 어제 여러 곳을 뒤져 어느 글을 씀으로 저의 영혼이 자기 상태를 직면할 수 있을 것 같아 준비하였다가 7월말까지 여유가 있는 공모전이어서, 5월에 있는 독후감 공모전으로 가볍게 접근하도록 하면 좋겠다하여 나름은 꽤 오래 궁리를 하고 전달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거절을 당하자 순간 맥이 풀리고 기운이 빠져서, 싫으면 어쩔 수 없지! 하고 나 역시 체념하려 핸드폰을 멀찍이 두었다가도 그것이 또 못내 안타까워 이 일을 어찌 권하여 유도할까? 하고 주 앞에 아뢰는 결과가 되었다. “그런즉 너는 오늘 위로 하늘에나 아래로 땅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다른 신이 없는 줄을 알아 명심하고 오늘 내가 네게 명령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 없이 오래 살리라(신 4:39-40).”

 

그렇게 더욱 하나님을 바라게 하시려고, 나를 위하여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거짓을 행하여 우리 조상들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 하시고 나무라시는 것은 내가 받는 깨달음이 된다(말 2:10). 곧 누구를 생각하고 저의 일을 두고 마음을 쓰거나 상하거나 하면서 비로소 아멘하게 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 11:34-36).”

 

우리로 주를 더욱 바라고 주만 섬기게 하시려고 오늘 저를 내 곁에 두심이다. 바로가 그 시절 바로의 쓰임을 다하고 소멸된 것 같이, 유다가 유다의 길을 갔던 것 같이…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행 2:36).” 예수를 더욱 알게 하시려고,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6-17).”

 

어제는 그렇게 의기소침하여 일찍 누웠다가 잠이 들어 이른 새벽에 이처럼 서둘러 주 앞에 나와 말씀으로 위로를 얻는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14:1).

 

그러니 별 수 있겠나?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2-3).

 

결코 나는 예외라 할 수 없어서, 수시로 낙심하고 실의 빠지기도 하면서 한 걸음 더 주 앞에 나아가는 일이었으니,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그러나 거기서 그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4-5).

 

저들을 대하면서 주를 더욱 사모하는 일에서, 비록 나는 힘이 없고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능력도 권세도 없으나,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6-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