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전봉석 2024. 4. 11. 04:28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고후 10:5-6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시 32:11

 

 

오늘도 하루가 주어졌다. 이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곧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눈에 보이는 우상으로 하나님을 대신하려 높아진 것들이 많다. 둘째, 이에 따른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우리의 흩어진 생각은 곧 마음을 움직이고 마음은 몸을 이끌어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여전한 것에 대하여, 셋째,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주를 경외함으로 섬김과 순종과 찬송과 예배로 온전하여질 때 복종하지 않는 것들을 벌려고 준비하는 중의 하루다.

 

국회의원 선거 결과를 놓고 여러 말들이 많다. 누구도 그리 될 줄은 미처 장담하지 못하다 결과 앞에 놀란다. 봄꽃이 화사하게 피던 날 꽃이 지고 나무들이 비로소 싹을 틔우고 푸르러진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안다. 단지 눈에 화사한 봄날의 꽃에 즐거워하다 보니 화무십일홍이다. 우리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더욱 굳건하기를, 어제 하루 선거와 봄꽃의 결과가 온몸으로 말해주는 것 같았다.

 

우리로 어렵게 하는 시간이 주를 찾게 한다. 소수의 적은 무리로 하나님은 오늘도 이 땅의 한 날의 참고 또 기다리신다. 이는 마치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에 단지 의인 몇이 없어 그리 되었던 것처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7).” 이를 위하여 한 영혼을 두고 씨름하며 저를 두고 마음을 쓴다.

 

예수님은 일러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9-30).” 이를 따라 오늘 바울도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또한 우리를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에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는 것 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고후 10:1-2).” 이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이로써 오늘도 오늘로 나의 하루가 더하여지는 이유가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 4:20).” 그러므로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21).” 이와 같은 말씀 앞에서 나를 돌아본다. 선거를 보며 그 결과에 놀란다. 봄꽃이 바람에 날려 떨어질 때에 정작 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돌아오는 길에 알았다. 오늘 우리의 하루는 곧 선한 싸움의 연속이다. 곧,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고후 10:3-6).”

 

하루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 소돔과 고모라성의 멸망을 알리셨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아뢴다.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창 18:24).” 이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26).” 그러나 결국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32).” 의인 열 명이 없어 멸망의 성이 되었다.

 

오늘을 살면서 우리의 사명이 얼마나 소중하고 놀라운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결과적으로 구약은 그때마다 ‘은혜를 받은 자들’ 곧 ‘남은 자들’로 인하여 그 시대는 연명하였다. 저들은 남달리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에녹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였고, 노아는 은혜를 입어 구원의 방주를 지었으며,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말씀에 순종하여 길을 떠났다. 오늘 우리의 영적 싸움이란,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고후 2:11).” 고로 오늘 시인은 찬송하기를,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시 32:11).

 

이는,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1).

 

내가 나의 노력과 의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게 아닌 은혜로 인한 것이었다. 이에 오늘을 살면서도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가령 누구에게 마음을 다해 이것을 권해보기도 하고 저렇게 용기를 더하기도 한다. 지금의 문제를 알게 하려 글도 써보게 하고, 이런저런 말도 듣고 말하게 하나 저의 영혼은 의지가 없다. 아이는 아이대로 아이엄마는 엄마대로 그대로여서 나는 저들의 억눌린 상한 심령을 두고 탄식한다. 이러저러해서 오늘의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저들은 안이하다.

 

개표결과가 나오고 예상이 뒤집어지면서 서로는 겸허해진다. 우리의 싸움은 당장의 봄꽃이 지는 일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는 비로소 싹을 띄우며 가지마다 새순이 돋아 비로소 한 그루의 꽃이 된다. 우리가 상대하는 싸움은 정작 자기 자신이었다. 우리를 장악하고 있는 우리 안의 권세 잡은 죄성이었다.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마 12:29).”

 

자신의 지난날로 돌이켜 주 앞에 바로 서지 못하는 데서 무기력과 탄식은 신물처럼 올라왔다. 누구에게 문자라도 할까 하다 그만두고, 통화를 해야 하는데 하다 그만두었다. 스스로가 하려 하지 않는 이상에는 나로서도 어찌 더 이상 강요하거나 강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혼자 마음만 어려워서 잠깐씩 시선을 놓치고는 한다. 반드시 우리는 무릎 꿇을 날이 올 것이다. 주의 이름을 부르며 뒤늦은 후회와 탄식의 날이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고후 10:5-6).”

 

내 안에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지는 것들을 생각한다. 내 곁에서 그리하여 고통당하는 이들을 눈여겨본다. 세상이 점점 악하고 혼탁하여지는 이유를 생각한다. 그러다 세상이 악한 것과 저들이 점점 더 그 영혼의 갈한 심령으로 고통당하는 이유를 발견한다. 이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세상을 우상으로 하여 하나님을 대신하려는 섬김이 또는 자신을 내어주기까지 하는 최선과 최악의 경계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다. 저들은 끝까지 자신들은 잘못한 게 없다. 스스로의 노력이 자신들을 항변하게 하며 주의 선하심보다 앞선다. 성경은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내 입에서 공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세하리라 하였노라(사 45:23).”

 

결국은 주가 승리하신다. 복음이 이긴다. 구약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신약의 오늘에까지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합 2:14).” 그리하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10-11).”

 

그때에 이르러는 너무 늦었거나 모든 게 다 끝난 뒤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환난이 전부가 아니고, 오늘의 영광도 영원하지 않다.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 1:7-9).” 곧 가까운 날에 우리는 주의 안식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다.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벧후 2:9-11).”

 

오늘을 살면서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 이러한 자들의 최후를 놓고 두려워하는 이들은 오히려 복이 있다. 저들이 우리로 주를 경외하게 한다. 나쁘고 악한 세상이 오히려 주의 재림을 더욱 사모하게 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32:11).

 

오늘은 그러하여서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고후 10:7).” 아직은 기회가 있다. 다시 또 오늘 이 한 날의 삶이 주어졌다는 것은,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무너뜨리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8).” 세상이 아무리 어떻다 해도, 누가 또 나의 영혼으로 짓누르며 고통을 더한다 해도, “우리는 자기를 칭찬하는 어떤 자와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그들이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12).”

 

돌아보니 세상이 다 그렇더라. 나도 나름은 나의 의로 산다고 살 때는 이와 같은 말씀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고, 누가 곁에서 날 위해 안타까워할 때 저를 어떻게든 멀리하려 했던 것을 고백한다. 그리하여 이제 주의 은혜를 알고 나를 ‘남은 자’로 삼으신 데 따른 그 은혜가 고마워… “그러나 우리는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그 범위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고후 10:13).” 고로 나는 나의 한계로 감사에 이른다. 그리하여 “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자랄수록 우리의 규범을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풍성하여지기를 바라노라(15).”

 

하여 내 곁에 두시는 한 영혼, 혹은 나 자신 하나 주 앞에 바로 세워지기까지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17-18).” 말씀에 밑줄 긋고 주 앞에 나를 아뢴다.

 

아, 나는 다시 눈물겹게 오늘의 시편으로 감사와 영광을 올린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32:1).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고, 그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주의 은혜로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롬 2:11).” 어찌 나 같은 자로 주의 자녀 삼으신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으나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골 1:12).” 그러므로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셀라)

(2-4).

 

복이란 이런 것이어서,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5).

 

고로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시리이다 (셀라)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7-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