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전봉석 2024. 4. 8. 04:02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후 7:9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시 29:11

 

 

살면서 사느라 드는 근심에는 어쩔 수 없다. 근심은 해결하려는 마음과 해결되지 않은 일의 충돌이다. 그것으로 우울하거나 속을 태운다. 더욱이 주를 믿고 더욱 그 믿음으로 온전 하려 할 때 불가피하게 세상과 충돌하여 드는 근심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

 

예수님은 일찍이 이것을 회피하지 말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셨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이는 단지 사느라 사는 데 따른 근심으로는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그 이상의 영광과 안식을 소망함으로 이어진다. 그리하여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때로는 마음이 어려워 어떤 일을 두고 내내 주를 부른다. 누구의 일로 주 앞에 엎드린다. 그러할 때에 이를 기뻐함인데,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후 7:9).” 근심으로 우리가 회개에 이르는 것과 하나님의 뜻대로 이를 행함인데 결국은 구원에 이르게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10).”

 

단지 사는 데 따른 근심이라면 우리의 근심이 얼마나 누추하고 불쌍한가? 우리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없고 장차 예비하신 본향이 없다면 현재 우리의 삶이란 게 얼마나 궁색하고 비루한가? 그런데 우리에게는 곧 돌아가 영원한 안식을 누리며 영광의 자리에 참예할 시간이 기다리고 있어서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롬 5:5-6).”

 

이를 위해 주님이 죽으시기까지 나를 살리신 것이어서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 1:10).” 이를 위하여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 하는 바울 사도의 놀랍고도 귀한 것이다.

 

주의 일을 하는 데 있어 오해는 필수고 헛된 공격은 필연적이다. 가까운 이는 가까운 데 있어서 더욱 알 수 없고 먼 사이의 사람은 남의 일로 너무 먼 것이어서 관심도 없다. 그러면서도 주의 일에 대하여는 저마다의 해석이 분분한데 “무리가 더욱 강하게 말하되 그가 온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하게 하나이다(눅 23:5).”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시는 때부터 앞서 모든 선지자들의 사역에는 이런저런 공격이 따랐다. 그러므로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7).”

 

하여 오늘 우리의 고난이 필연적인 것으로 확신할 수 있다. 내 안에 어떤 마음의 짐이 없다면 그만큼의 기도도 소원해질 것이다. 기도와 근심은 불가분의 것으로 서로가 하나 되게 한다.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롬 12:16).” 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이로써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엡 4:2-3, 4).”

 

고로 오늘 우리가 가는 길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되는 근심’은 필연적이다. 차라리 목회를 안 한다면, 주를 온전히 따르지 않는다면 당하지 않아도 될 일이어서 그것으로 내가 바른 길로 가고 있는가? 하는 지렛대를 삼을 수도 있다.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골 2:2-3).” 아, 이 놀라운 비밀을 다시금 되새기면, 우리에게 있는 ‘지식의 보화’는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고후 7:11).”

 

먼저는 우리로 간절하게 한다. 우리의 이 간절함을 주를 더욱 바라고 의지하며 주밖에 다른 것으로 도우심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또한 우리의 근심이 얼마나 우리로 변증하게 하는가? 말씀을 따라 그 말씀이 우리 삶에 이루어져 역사하심을 알고 바로 의지하게 한다. 이때에 우리 안의 죄성과 함께 우리 곁에 난무한 하나님의 대적을 두고 우리로 얼마나 분하게 하는지 모른다. 주를 사랑하면 할수록 주께 대한 사랑을 훼방하는 내 안의 것과 나의 밖의 것으로 분하고, 이로써 이를 또한 두려워할 줄 알게 한다. 내가 알아서 내 힘으로 할 줄 알았던 교만이 무릎을 꿇는다.

 

그러므로 내가 주를 바라고 사랑하는 이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게 사모하게 되는지, 이를 위하여 또한 더욱 얼마나 열심 있게 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면서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오늘도 나를 일깨워 일찍이 주 앞으로 달려오게 한 것도 그리하여 주 앞에 고개 숙여 주의 도우심을 바라게 하는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아, 나의 이 근심이 나로 하여금 나로 내 영혼을 주의 말씀으로 씻어서 깨끗하게 하고 있었구나.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들이 그들의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왕상 2:4).”

 

이와 같이 말씀을 확실히 이루시기까지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근심이라는 모진 사명도 맡기셨다. 결국 근심도 사명이어서 우리로 주를 더욱 바라게 하시면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곧 우리 주님은 우리로 평안을 누리게 하시려고 근심도 허락하심인데,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27).”

 

그러므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16:20).”

 

세상은 오늘 우리의 근심을 딱하게 여기기도 하고 그것으로 주를 조롱하고 하나님의 뜻을 우습게 여기며 더욱 죄악 중에 사로잡힐 테지만,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22).” 이 놀라운 일이 현실이 되기까지 주님은 우리를 외면하지도 홀로 두지도 않으실 것이다. 이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롬 9:1).” 그리하여,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10).”

 

하시는 오늘 이 말씀이 새삼 귀하고 가치가 있다. 곧 “그의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의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함과 정직함으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말 2:6).” 그리할 수 있었던 것이 주의 뜻대로 하게 되는 이 근심으로였으니,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 4:32).”

 

서로가 자기 일처럼 두고 하게 되는 근심으로 합심하여 기도하게 된다. 이는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엡 4:3-4).” 이를 위하여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1:4-6).”

 

이와 같은 진리 앞에서 위로를 얻는다. 복된 약속을 기다리게 된다. 곧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7-8).” 때가 가까울수록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 24:9-12).”

 

곧 오늘 우리 현실의 여러 단적인 면이 하나하나 동일하여 믿는 자와 안 믿는 자, 믿는 자 가운데서도 온전한 자와 불완전한 자의 다툼은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 가정에서나 가족끼리 서로 얽히고설켜서 혼돈의 시대 그 자체이다. 여기서 바로 설 수 있는 길은,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곧 내게 맡기신 일을 묵묵히 준행하는 것이고,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 15:10).” 그런 가운데서도 선을 이루게 하려 하심이었다.

 

그러므로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9-10).” 이는 주의 이름으로, 주의 마음을 가지고, 주의 사랑으로 하는 일이었다. 나의 사랑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사 12:2-3).” 우리에게 보장된 이 놀라운 역사를 기다리며,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8-9).”

 

다른 길은 없는 것으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 13:24).” 정작 어느 날에 그 길로 들어가려는 이들이 몰려드는데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눅 18:25).” 그만큼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 7:1).”

 

오늘 말씀은 당부한다. “나는 너희를 향하여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4).” 환난 가운데서의 위로와 기쁨이 가득하기를. 결국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9).” 말씀으로 다시 말씀에 이르면서, “그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과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내가 범사에 너희를 신뢰하게 된 것을 기뻐하노라(15-16).”

 

오늘 이와 같은 근심의 힘으로,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시 29:1-2).

 

오늘의 이 고난으로 우리가 예배하는 자가 되는 일이었으니,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4).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11).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