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고후 8:7
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시 30:10
저마다의 성질과 그 모양대로 산다. 살면서 그 완고함으로 깨어지기까지 주 앞에 서고, 게으름으로 그 나태가 성하기까지 주 앞에 세워져야 한다. 그때에 우리가 알기를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사 12:2-3).” 이와 같은 고백이 이루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을 그 단단한 껍질이 깨어지기까지 계속된다.
어렵고 힘든 것이나 그러한 상황으로 주 앞에 서는 일일 테니,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딤전 6:17-18).” 하시는 말씀 앞에서 더러는 좌절한다.
세상을 살면서 어찌 저들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시편 기자는 이에 미끄러지고 자빠지면서 고하였다.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시 73:1-2).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의 선하심을 신뢰하며 산다고 하면서도 눈 앞에서 펼쳐지는 저들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3-9).
상대적으로,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
(12-14).
그러니 이 일을 어찌 당할 수 있겠나? 우리도 사람이라 서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공연히 심통이 나기도 하고 저들의 어그러진 길이 옳은가? 하고 기웃거리게도 된다.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16-17).
아, 저들의 결국을 알게 된 곳은 주의 성소에서이다. 말씀으로였다. 주를 바라며 의지하고 신뢰할 때였다.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18-19).
저들이 천년만년 복에 겨워 모든 게 다 형통할 줄 알았는데,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20).
결국 이 땅의 모든 것이 그와 같아서 당장으로 모든 게 결정 난 것처럼 사람을 들들볶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게 다 사라질 것이니,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1:4-5).
이를 깨닫고 인정하기까지 우리 안의 속성 또한 깨어지고 부서져야 하였다. 이기심을 버리지 않는 한 하나님 앞에 헌신은 모든 게 위선적이었다. 오늘 본문 4-5절,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언제나 우리로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먼저’였다. 먼저 생각하고 먼저 바라고 먼저 따르려고 하는 것에 의해 오늘의 나는 좌지우지한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길,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그런데 이게 그렇게 어려웠다.
신앙은 현실이고 현실은 성경의 실제이다. 말씀이 이상이나 개념으로 있을 때는 어려울 게 없다. 그러다 이 말씀을 나의 현실에 적용하려 할 때는 생각지도 못한 갈등과 어려움으로 그릇 행하기 일쑤다. 상관하지 않고 사는 자들을 따라 살기를 원한다. 저들을 부러워하다 그리 된다. ‘주님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마음이 이기심이다.’ 말씀보다 나의 판단과 나의 의지가 앞설 때 완고하다. 내가 나의 중심이 되고 기준이 될 때 이기적이다. 그렇게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막 10:37).”
내 안에 실제 주보다 큰 내가 있다. 이를 이기지 못하고 삶을 추구하다 그릇된 길로 행하기를 언제까지 할까?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롬 15:1).” 이것이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스스로는 낫다고 여기면서 정작 저와 다르지 않거나 더 못한 지경에서 헤매기를 한두 번이었던가? 이에 말씀은 붙드신다.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전 10:33).”
이것으로 오늘 내게 맡기신 일로 여겨, 오후께는 아이엄마와 통화를 했다. 어떤 주제로 글쓰기에 대해 말하고 요즘 근황을 물었다. 아이를 위해서도 엄마가 좀 주를 더욱 바라고 의지하면 좋겠는데, 우리 영혼은 주의 강권하심이 아니면 주체할 수 없는 모양이다. 마치 남의 이야기하듯 아이의 일을 두고 그렇다 하고, 자신의 일상에서도 여전하여 저를 어찌 일으켜 세울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일에서 오히려 난감할 뿐이다. 슬그머니 외면하고 모르는 척 하려 해도 주가 내 안에 두시는 마음과 동시에 저의 이야기가 밟힌다. 그러니 답은 하나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그러니 나는 어쩔 것인가? 하고 성경은 물으시는 것 같다. 여전히 십자가에 못 박을 의지가 없고 성경은 다만 이론으로나 알기를 원할 뿐 나의 삶으로 드러나기를 원하기에는 잃고 포기해야 하는 게 너무 많은 것 같다. 그런 가운데서도 아이에게 기타를 가르치러 친구가 와주고, 생각보다 아이의 열의는 열심이다. 나는 아이가 방송을 하는 데 필요한 가림막을 설치해주고 핸드폰 받침을 만들어주며 시중을 들었다. 결국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
곧 우리 영혼이 살았다는 것을 믿음의 행함으로 알 수 있는 것이어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19-20).” 말씀이 그저 이상으로 다가오고 현실에서 나를 주도하지 못할 때 이는 죽은 믿음이 된다. 그러므로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 5:9).”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마 19:21).” 아, 이는 참 어려운 일이어서,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22).” 그리고 이러졌던 말씀이 두렵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23-24).”
보면 내 곁의 모두가 적당하여서 병이 들었다. 친정으로나 시댁에서 적당히 나이 들어서도 도움을 받고 있었다. 어쩐지, 저가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도 안이할 수 있는가 했더니, 이래저래 그릇된 수입원이 저의 나태를 혹은 태만을 부추기고 있었다. 아이엄마에게도 그 말을 하고 싶었는데 차마 말을 못하고 그저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라고 말을 흐리다 말뿐이어서, 나는 회의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히 13:16).” 그러므로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17).
저마다 자신의 삶을 사는 일이겠으나 너무 먼 길을 돌아가는 이에게 나는 나의 어리석었던 날들을 부끄러움을 머금고 들려주고 싶다. 부디 그 시간 속에 고착되지 않기를.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부디 자신의 완고함을 접고 긍휼히 여기는 자로 설 수 있기를. 그리하여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골 1:10-12).”
나의 남은 생이 그러하여 더는 곁길로 가지 않고 오직 주만 바람으로, 상한 영혼으로 주 앞에서 바로 세우심을 얻을 수 있기를. 내 앞의 ‘아픈 아이’와 그 부모의 상한 마음을 위로하고 새 힘을 더하여 주 앞에 온전하여 자신의 삶이 헛되이 버려지지 않기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 6:10).” 하여,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딤전 6:18).”
오늘 본문과 같이 우리 교회가 저들의 손길로 오늘도 유지되고 그 사명을 다하고 있음을 알리며,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고후 8:7).” 이는 바울도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함이로라(8).” 곁을 내주고 함께 하는 그것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9).” 주가 내게 행하심을 내가 이제 알고부터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12).” 비록 보잘것없으나 “그가 권함을 받고 더욱 간절함으로 자원하여 너희에게 나아갔고(17).”
자원하는 마음으로, “이뿐 아니라 그는 동일한 주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아 우리가 맡은 은혜의 일로 우리와 동행하는 자라(19).” 이로써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21).”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원수로 하여금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30:1-2).
주의 살아계심을 저들로 알게 하시기를, 이에 오늘이 어떤 어려움으로 내가 굴복하지 않을 것은,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5).
그러므로
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10-11).
그리하여,
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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