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전봉석 2024. 4. 24. 03:54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 4:9-10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시 45:6

 

 

주전 4114년 아담이 타락하였을 때,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하신 복음을 토대로 바울은 우리의 죄로 인하여 ‘십자가의 복음’을 정립하였다. 주후 51년에 데살로니가서를 쓰면서 한층 더 깊은 이해와 성령의 지혜로, ‘아담의 죄’는 보다 훨씬 더 그 전,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로 계획된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전 2:7).”

 

곧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란 우리의 자유의지가 발동하여 선택을 하는 것인데, 귀로 듣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 이는 ‘감추어졌던 복음’으로 또한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란 사실을 바울은 회개 후 20여년이 지난 뒤에 이와 같은 복음의 깊이를 깨닫게 된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6:19-20).”

 

곧 이는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져 있던 것’이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골 1:26).” 이러한 복음의 깊이를 때가 이르러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서 놀라운 확장을 이루며 정립된다. 곧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십자가의 복음’은 처음 사람 아담의 죄로부터 약속된 언약의 복음이다. 이 복음은,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를 위하여 오래 참으시고 또 역사하사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5, 6).”

 

이와 같은 이유와 목적이 분명하다. 어제는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내용을 나누었다. 곧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 26:39).” 하는 부분을 어떤 이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사람으로 십자가의 고통을 앞두고 이를 피했으면 하는 기도로 이해한다. 하고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42).” 그렇게 이해하면 옳지 않다.

 

예수님은 이를 위하여 오셨다. 이 예언의 말씀은 앞서 아담의 죄로 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예수님의 절규는 십자가 곧 죽음은 순간 성부 하나님과의 단절의 순간이다. 하나님은 죄와 함께 하실 수 없다. 십자가는 죄로 인한 것이다. 물론 죄가 없으신 이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는 것이나, 그 순간 삼위 하나님은 단절 된다. 그에 따른 절규다. 이를 바울은 개종 후 22년이 지나서야 성령의 감동으로 비로소 그 깊이의 말씀을 깨달았다. 곧,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롬 16:25-27).”

 

곧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어쩌다 사람의 죄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시게 된 하나님의 궁여지책이 아니다. 복음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지혜’로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앞서 구약의 수많은 선지자들의 글에서도 밝힌 바, ‘신비의 계시’다. 그 목적은 이 복음으로 우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일이다.

 

요한도 이를 ‘하나님의 그 비밀’이라 하였다.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계 10:7).” 곧 십자가의 복음은 이미 구약으로부터 전하여져왔고 ‘창세전에 감추어졌던 것’으로 이제 계시된 것이어서,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5).”

 

하는 이 놀라운 복음의 비밀을 오늘 우리에게도 알게 하신다. 왜냐하면 우리로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이 모든 일은 진행되고 있는 것이어서, 베드로 역시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벧전 1:20).” 곧 예수께서 마지막 만찬 후에 저들 앞에서 기도하실 때,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 17:5).” 하고 친히 아뢰었던 내용과 같다.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전 2:7).” 하시는 이 놀라운 은혜 앞에 새삼 말씀의 지혜를 더욱 알기 원한다. 이를 위하여 천사의 타락도 두셨고,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왕들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 거리가 되게 하였도다(겔 28:17).” 하나님의 자녀들이 불의한 가운데 행함도 그에 따른 결과로 알게 하셨다. “네가 죄악이 많고 무역이 불의하므로 네 모든 성소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네 가운데에서 불을 내어 너를 사르게 하고 너를 보고 있는 모든 자 앞에서 너를 땅 위에 재가 되게 하였도다(18).” 그러므로 “만민 중에 너를 아는 자가 너로 말미암아 다 놀랄 것임이여 네가 공포의 대상이 되고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로다 하셨다 하라(19).”

 

곧 오늘을 살면서 일련의 현상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 앞에 우리로 승복하게 하신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사 14:12-13).” 참으로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악하고 교만한데, 세상은 악하고 교만하여서 이를 곁에서 보고, 듣고, 느끼면서 우리는 복음의 진리를 배운다.

 

오늘 말씀에서도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4:9-10).” 곧 하나님은 낮아지고 죽기까지 우릴 사랑하심으로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갈 4:7).” 하고 오늘 우리의 신분을 바로 알게 하신다. 곧 이 복음의 비밀은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6).” 하는 은혜로의 초대다. 실제 우린 진노의 종노릇하던 자이다.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8).” 하지만 더는 아니다.

 

퇴근하고 친구는 성경을 읽다 이해가 어려웠는지, 로마서 10장을 설명해달라고 문자를 남겨두었다. 아침에 일어나 교회로 나오면서 나는 성경 앱을 열고 그 본문을 반복하여 들었다. 저의 질문이 있어 나로 말씀을 깊이 보게 한다. 어떤 어려움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게 된다. 사소한 일이나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일에서 주인이 먼저 전화를 하여 어찌 하시려는가? 하고 물었고 나는 곁의 사무실 선생과 같이 사용할 것을 제안하였다. 어찌될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나의 사소하고 별 것도 아닌 일이에서도 하나님의 관여와 그 손길을 체험한다.

 

누구를 더하시거나 그만 거리를 두게 하시는 일도, 어떤 어러움으로 찾아오는 이에게 해야 할 말과 전해야 할 복음도, 그때마다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주도하심을 알 수 있다. 곧 오늘 이 본문의 핵심도,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시 45:6).

 

하심을 알게 하시려고,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하고 감추어져 있는 것을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37).” 곧 오늘의 이런저런 사정과 그 이해 가운데서 역사하심으로 알게 하신다.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갈 4:31).” 실제 우리가 알지 못하고 살았던 일에 대하여,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28).” 이 일은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29).” 일련의 여러 상황 속에서 보게 된다. 그러므로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 2:13-14).”

 

오늘의 모든 일과 속에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29).” 즉 오늘에 이르러 어쩌다 일어난 일은 하나도 없다. 하여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곧 오늘 우리가 그럴 수 있는 것은 우리로 알게 하시기 때문이다. 하여,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마 23:9).”

 

하여 오늘 바울은 한걸음 더 다가와서 알린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1-3).” 왜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며 주 안에서 하나 되어 살아야 하는지를,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4).” 이와 같은 부르심에 응할 때,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살전 2:12).”

 

다 그 주의 사랑의 이유다. 그러므로 성경을 알고 이로써 누구를 대하고 어떤 일을 염두에 두고 주를 바랄 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이는 내가 나를 주도적으로 행함으로 이루는 게 아니라, 주가 그리 조성하시고 그에 따른 성령의 지혜도 더하시는 일이었다. 어찌 해야 하나? 하고 있을 때, 주께서 그리 행하셨고 ‘갈 바를 알지 못할 때’ 주가 앞서 걸어가고 계셨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엡 4:7-8).” 그러므로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9).” 높고 높으신 이가 낮고 낮은 이 땅에 오심으로 나의 죄를 담당하셨던 것 같이,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10).”

 

이 놀라운 은혜로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3-25).” 나는 이와 같은 말씀이 나로 주의 말씀 앞으로 이끄시는 것을 느낀다. 친구의 열심으로 나는 저에게 설명하고 들려줘야 하는 말씀을 받는다. 어떤 이의 상한 심령으로 나는 주의 위로와 평안으로 권면한다. 일상의 사소한 일에서도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본다. 그리하여,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 4:15-16).” 오늘도 나로 자라게 하시려고,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22-24).” 이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30).” 그러므로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32).” 하실 때에,

 

그들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도함을 받고 왕궁에 들어가리로다

(45:15).

 

오늘도 말씀으로 새벽을 열게 하심을 감사한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말 3:17-18).” 이는,

 

내가 왕의 이름을

만세에 기억하게 하리니

그러므로 만민이 왕을

영원히 찬송하리로다

(1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