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전봉석 2024. 4. 22. 04:21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 2:20-22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시 43:3

 

 

우리의 완고함에 대하여 스스로도 감당이 안 된다. 이는 불신앙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전적으로 그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또한 주의 능력으로가 아니면 벗을 수가 없다. 내가 그러했지만 누구의 생각에 더는 뭐라 할 수 없을 때 고개를 젓는다. 하여 그 영혼은 안식이 없다. 육으로나 영으로나 피곤할 따름이다. 우리가 안식하는 데 있어 우선은 이 땅에서의 행위언약으로 취할 것이다.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수 1:2).” 하실 때 넘실거리는 요단은 위협적이다. 마른 땅이 되게 하시기까지 그리할 수 없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그 땅으로 들어가라, 하신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수 1:9).”

 

어쩌면 우리의 이와 같은 갈등과 순종은 치열한 싸움으로 우릴 괴롭힌다. 바울은 이를 알고 있었다. 오늘 저는 선포하기를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우리가 우리 스스로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그렇듯 죽은 자로 살았던 거였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2).” 그러니 어쩔 것인가?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수 3:5).”

 

스스로를 성결하게 하는 일. 이는 바벨론으로부터 안식을 얻기까지, “여호와께서 너를 슬픔과 곤고와 및 네가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고 안식을 주시는 날에 너는 바벨론 왕에 대하여 이 노래를 지어 이르기를 압제하던 자가 어찌 그리 그쳤으며 강포한 성이 어찌 그리 폐하였는고 여호와께서 악인의 몽둥이와 통치자의 규를 꺾으셨도다(사 14:3-5).” 우리를 다스리던 ‘바벨론’으로부터 우릴 구원하시기까지, 저는 임마누엘이시라.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결국 우리는 악을 버려야 한다. 선을 택해야 한다. 그러할 때,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사 7:15).” 이로써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알진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1-23).”

 

나는 누구를 생각하다, 어떤 일을 생각하다, 나의 날들을 두고 이르시는 말씀 앞에 승복한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엡 2:3-5).” 아, 이 놀라운 은혜를 알면 알수록 나의 헛되었던 날들을 애통해하고, 누구의 어떤 일을 두고 안타까워한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지는 현세 천국을 어찌 우린 누리지 못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그런데 이게 그렇게 어려웠다. 수고하고 무거운데, 그 짐을 고스란히 자신이 지고 살아야 했던 날을 떠올리며,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12:28).” 아, 이 놀라운!

 

이미 임하신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린 갈 길을 잃은 것일까? 자신의 불안과 노여움으로 그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니,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7-10).” 어찌하여 이 귀한 은혜를 질그릇에 주셨는지 알겠다.

 

우린 쉬 깨지고 터져 또 주의 손길이 필요하였으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주가 날 위해 이루어가고 계신 이 놀라운 나라에서 성령으로 우리는 비로소 참된 안식을 누린다. 이것이 진리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이를 알기 위해 자신을 놓아야 하는 것이어서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7).” 우리로 이를 알게 하시기까지 때로는 고난으로 그 역경은 제 몫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감당해야 할 일이고, 기어이 살아서 사는 동안에 깨지고 으스러져 다시 이겨 뭉개 다져져야 할 그릇이었다.

 

우리의 본능, 그 죄의 몸으로는 이를 알 수 없다.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리하여서도 주께 맡길 터인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겔 36:26-28).”

 

주의 영이 내 안에, 나의 어둡고 모자란 영혼이 주의 뜻 안에서 새 영으로, 새 마음으로, 그리하여 부드러운 마음을 주사 나의 완고함을 짓이겨 으깨기까지,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히 4:9).” 아, 우리에게 남이 있는 안식의 때를 기다리며,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히 4:1).” 설마, 하는 안이함과 에이, 하는 방심과 혹시나, 하는 방종으로부터 우리를 떼어놓기 위하여….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히 4:3).”

 

아, 이 놀라운 비밀의 은혜. 이 일이 이미 나의 날이 있기 전, 저 창세전에 있었던 일로 오늘에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엡 2:6-7).” 오늘 바울의 이 놀라운 역설을 믿음으로 받아 의에 이를 것이다. 하여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8).”

 

이 값진 선물을 두고 나는 주 앞에 감격할 뿐,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9).” 내가 한 게 아니어서 더욱 더 나는 누구에게 저의 수고와 그 피로한 삶의 고단함을 안타까워하였다. 부디 주께 맡기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주 앞에 내려놓기를. 이에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10).” 말씀 앞에서 나는 와, 하고 감격하며 주께 찬송한다.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요 12:37-40).”

 

결국 그렇듯 버려질 수도 있는 일이어서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 4:10-11).” 우리가 그리워하고 사모하는 그곳, 영원한 안식을 기다리며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 14:13).”

 

여름을 재촉하는 봄비가 오고, 나의 몸은 이를 맞으려 쑤시고 아파 마음도 몸도 기진하였을 때, 나로 꿈꾸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1-2).” 곧 내가 들어갈 하나님의 나라를 나는 오늘 끙, 하고 아픈 몸을 건사하며 사모한다. 그러다 날이 개이고 화창한 날 새롭게 느껴지는 몸의 안식으로도 천국을 누린다.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6-18).”

 

이상하지? 몸이 아프고 마음이 어려울 때 나로서 더욱 주를 바라게 하심을 알고 모든 게 다 감사하였다. 어제 오후, 비가 그치고 바람이 약간 서늘하게 불어가는 길가에 앉아 차가운 커피를 마시며 빠르게 물러가는 먹구름을 보았다. 그 뒤로 환한 하늘이 설핏, 얼굴을 드러낼 때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 2:19).” 나는 이 말씀을 읽으며 어제 그때를 새삼 떠올렸다. 물끄러미 나로 올려다보게 하셨던 하늘에서 나는 어쩌면 하나님의 나라를 상상하고 있었을까? 그 시간으로도 충분하여 감사하였던 것을. 그렇듯 나는 오늘도 세워져가는 것이겠거니,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엡 2:20).”

 

아, 이 놀라운 은혜로 말씀을 받을 때,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21-22).”

 

이것으로도 충분하였다고 말하겠다. 그 지어져 사는 동안의 고초와 내가 겪을 나의 걸음걸이에서 주의 손을 잡고 걷는 그 길이 모두 천국이었다. 아!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시 43:3).

 

그러할 때에,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4).

 

가만히 길가 카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다 두 눈을 감고 그리 생각에 잠기기도 하였던가?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