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엡 3:11-12
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시 44:25-26
우리의 오늘이 영원 전, 이미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이루어진 한 날의 하루이다. 이 사실을 알 때 오늘의 여러 어려움으로 주를 더욱 바라게 된다. 이는 그러하기 위하여 우리의 곤란함도 두시고 환난과 역경으로 소망을 이루게 하려 하심이다. 이를 오늘 바울은 가감 없이 밝힌다.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엡 3:2).” 이를 듣게 하시고 알게 하시는 계시, 그 열어 보이시는 놀라운 사실로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3-4).”
이 비밀,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사 11:10).”
이를 수 백 년 전에 알게 하셔서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호 1:10).” 주의 뜻은 이루어져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말 1:11).”
이를 오늘 우리로 알게 하시려고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곧 오늘을 살면서 우리 안에 두시는 이와 같은 소망이 없다면 우린 무엇으로 힘을 얻고, 무엇으로 살 수 있을까? 이에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5-6).”
내가 아직 연약할 때에, 곧 주를 등지고 세상과 연락하며 살 때에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딤전 1:13).” 그때 이미 날 위하여 죽으신 그 사랑이었으니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행 26:16-18).”
곧 오늘을 살면서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이 모든 일들 감당하는 데 있어 단순히 이 세상을 사는 동안의 일이 전부가 아닌 것이다. 이는 잠깐이고 영원한 약속이 우리에게는 있었으니,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앞서 갔던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히 11:39-40).” 당장은 어떠하다 해도 그것으로 우리가 차지하게 될 영원한 나라가 있음이다.
이와 같은 계시, 복음의 비밀을 오늘도 묵상하며 되새기게 하심은 귀하였다. 이에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 11:27).” 결국은 계시로 주가 알게 하시는 자가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복된 소식이어서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 1:11-12).”
우리가 살면서 살아가는 우리 곁의 누구에게서 이를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저마다의 삶으로 찌들어가는 것처럼 다들 사느라 사는 일에 급급할 따름이었다. 누구는 저의 가정이 겪고 있는 일련의 일들로 힘에 겨워 더욱 주를 멀리한다. 하지만 또 누구는 그러한 일로 인하여 주를 알게 되고, 주 앞에 더 가까이 가는 일에 열심을 다한다. 가령 친구는 요즘 거의 사역자와 다를 바 없이 교회 일에 열심이다. 오죽하니 담임 목사님이 저를 향해 자신보다 더 교회에 열심인 것 같다며 칭찬을 했다고 하는데, 그와 같은 소식이 기쁜 일이면서 동시에 우려도 되었다. 혹여 저의 열심이 저를 삼킬까 하여 이를 조심하길 당부하였다. 물론 편한 사이니까 하는 소리였겠으나 힘들다, 피곤하다, 죽겠다, 하는 소리가 자주 그의 입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누구보다 열심이었을 가룟 유다가 은 삼십에 예수를 팔고자 하는 본문으로 우리가 되새긴 내용도 그것이다. 저가 바라고 꿈꾸었던 이상의 것이 아니었다. 저에게는 복음의 비밀을 알게 하지 않으셨다. 그러니 예수님과 함께 하며 열두 제자의 하나로 수고하고 애썼으나 저가 그리던 구세주가 아니었던 것이다. 저는 열심당원으로 당시 민족의 고초와 어려움으로부터 뭔가 희망이 될 무엇을 기대하였다. 그러나 결국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자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을 증거 하시자 더는 소망이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현실을 위해 예수를 찾고 믿는 이의 최후는 유다와 같이 실망뿐이다. 이를 바울은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골 1:23).” 하고 당당히 밝히며 힘껏 붙들었다.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딤전 2:7).”
오늘 이를 우리에게 알게 하시기 위해, 또한 이에 따른 일꾼으로 삼으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얼마나 오래 참으시며 또 기다리셨는지를,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엡 3:7).” 하고 오늘 바울은 기꺼운 마음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나 역시 이에 따른 은혜의 선물로 오늘 여기에 있다. 바울의 표현이 곧 나를 이르는 말씀 같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8-9).”
그러한 마음으로 누구를 만나고, 새로 또 어떤 이와의 만남으로 저의 사연을 듣고 거절하지 않는 것은 저의 상한 영혼을 두고 주께 기도하게 하심은, 오히려 나를 돌아보아 주의 은혜가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지를 알게 한다. 이는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11).” 아, 이 놀라운 사실 앞에 감탄한다. 어쩌다 이리 된 게 아니다. 하나님은 우연을 가장하여 엄청난 사실을 드러내신다. 이에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12).” 이와 같은 사실을 알면 알수록 나로 지금 여기에 두신 이의 놀라우신 뜻을 헤아리게 한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 1:29).”
일련의 판단으로 더는 어쩔 수 없는 누구 일에 대하여 더는 마음을 접으려 할 때, 내 안에 또한 어떤 속상함이 혹은 후회가 파고드는 것도 이상하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 마음을 접은 일인데, 그로 인하여 마음이 안 좋아서 내내 신경이 쓰이는 일인데, 그것으로라도 한 번 더 저를 생각하고 저를 생각함으로 주 앞에 아뢰게 된다. 종종 나는 이렇듯 힘들다. 그래서 어디까지 마음을 써야 하나 하고 나 혼자 종종걸음 칠 뿐 정작 저는 이런 사실을 알기는 할까? 누군가 날 위해 애태워 기도하였을, 그리하여 오늘의 내가 가능하였을 것을 생각하면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 1:11).”
오늘 바울도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엡 3:13).” 자신의 겪는 여러 어려움에 대하여 도리어 그에 따른 영광으로 안다. 그렇게 우리 또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17-19).” 이 놀라운 은총 앞에 감사뿐이다.
나의 어떤 죄도 주의 사랑이 닿지 못할 곳이 없다. 이는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20-21).” 이와 같은 축복이 나의 날 동안에, 더불어 주의 일을 하는 데 있어 내 곁에 두시는 한 영혼을 향하여,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조상들의 날
곧 옛날에 행하신 일을
그들이 우리에게 일러 주매
우리가 우리 귀로 들었나이다
(시 44:1).
이와 같은 말씀으로 또는 여러 사실과 실제의 삶으로 알게 하시는 것이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 하시는 말씀으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16:20).” 곧 오늘의 근심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 그렇다면 이와 같은 근심으로 나는 주를 더욱 사랑하게 된다.
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우리 대적을 누르고
우리를 치러 일어나는 자를
주의 이름으로 밟으리이다
(5).
그러할 때에,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
우리의 마음은 위축되지 아니하고
우리 걸음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나
주께서 우리를 승냥이의 처소에 밀어 넣으시고
우리를 사망의 그늘로 덮으셨나이다
(17-19).
그러한 연단으로 우리가 더욱 주를 바랄 것은,
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25-2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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