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살전 5:7-8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이심이로다
시 60:12
사느라 사는 데 분주한 것 같으나 잠든 영혼으로 산다. 이를 깨워 ‘함께 가자’ 하고 권하고 곁을 같이 할 수 있는 나눔이 없으면 사랑이 아니다. 오전 여덟 시 아이는 출근 준비를 마치고 줌 앞에 앉았다. 우린 마태복음의 족보 가운데 네 명의 여인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었다. 하여 주는 임마누엘이시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3).” 우리는 각자의 임마누엘을 붙들고 묵상하자고 하였다. 삼십 분에 기도로 마치고 아이는 출근을 하였다.
우리가 우리의 시대를 분별하고 ‘때와 시기’를 준비하는 삶으로 산다.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행 1:7).” 다만 그러므로 이를 준비하는 것으로 오늘 말씀도 여기서 문을 연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살전 5:1-2).” 어느 날, 뜻하지 못한 순간에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3).” 하여 오늘을 산고(産苦)의 시대라 한다. 곧 우리가 이 시대를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일은,
거기서 떨림이 그들을 사로잡으니
고통이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 같도다
(시 48:6).
그러나 “내가 오랫동안 조용하며 잠잠하고 참았으나 내가 해산하는 여인 같이 부르짖으리니 숨이 차서 심히 헐떡일 것이라(사 42:14).” 하여 주님은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10:22).” 이와 같은 말씀을 한사코 외면하고 싶어 즐거움과 기쁨만을 구하는 시선으로는 어려운 시절이다. 목회 일선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이 길을 가는 동생들과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특히 마음이 어려워진다. 온전한 신앙으로 믿음을 지키려하는 자의 어려움이 눈물겹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3).”
하시는 주의 말씀에서 주의 마음을 읽는다.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10-12).” 그렇게 해서 누군 선교사로 떠났다가 비즈니스가 되어 돌아오고, 누군 잠시 교회를 접고 생활에 얽매이다 영영 그 길로 갔다. 어느 두 목사는 같이 어디에 카페를 차려서 교회이면서 커피를 볶고 판매하는 일을 한다는데….
어려워서 뭐라도 해야 해서 그리 행하는 일이어서 나는 뭐라 말도 못하고 안쓰러울 뿐이다. 그런 거 보면 어제 어버이 날을 맞으며 생각하게 된 것이 나의 부모님이 참 대단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원도 깡촌에서 맨손으로 일구어 서울까지 사업을 확장하다 순식간에 물난리로 모든 걸 잃고 빚더미에 앉아 뜬금없이 주의 부르심이라니! 들은 바로는 나무젓가락 장사에 만화방도 했었고 그러다 자식들 사남매에 조모까지 거느리고,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신앙으로 목회에만 전념하였던 것이니… 말이 그렇지 그때의 가난과 모진 세월에 대해서는 어린 나이에도 어렴풋이 사무치게 기억이 난다.
어쩌면 우리의 믿음이란 그처럼 무모하고 대책이 없다. 주만 바라고 모든 걸 버린다는 게 말이 쉽지 생살을 도려내는 아픔 같을 거였다. 언뜻언뜻 기억에 나는 그때 그 시절의 어떤 장면을 떠올리다 오늘에 이르러 우리 사남매 모두가 주의 사역자로 뒤를 이어 목회자의 길을 가고 있으니, 이 놀라운 기적은 어찌 말로 설명이 안 된다. 비록 여전히 세상에서 저마다의 어려움을 안고 목회를 하고 있는 것이어서 세상적인 시선으로는 별로 나아진 게 없는 것 같은 생활 같으나 우린 저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섬기며 이 길을 간다.
여느 번듯한 교회나 목회자들과 견주면 별 볼 일 없는 것 같으나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눅 12:35-36).” 우리는 모두 그러하여서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34).” 우린 이 비밀, 오래 전부터 감추어 놓으신 복음의 비밀을 알고 있어서,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 13:44).”
아는 사람만 아는 소수의 신앙은 특혜다. 하나님의 특별한 임마누엘이시다. 바울은 이를 디모데에게 일러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딤전 6:20).” 모두가 옳다 하고 가는 길 위에서 우린,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둑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라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눅 12:39-40).”
곧 오늘 말씀도 바로 이 재림 신앙을 유념하게 하는 것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살전 5:4-6).” 빛의 자녀들로 산다는 것,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 유난히 나는 그 어둠의 길 위에서 지난날 가난과 그 모진 시간에 대해 앙갚음 하듯 부모와 형제들의 길을 원망하고 회피하며 살았다.
어버이날, 새삼 나의 부모와 내가 부모로서 그 둘 사이에 낀 가운데 다음 세대를 생각하였다. 아이와 성경공부를 하고, 저녁에 가정예배를 드릴 때 퇴근하고 돌아와 곁에 앉아 같이 예배드리는 딸애를 보며… 우리에게 더하신 은혜가 모두 임마누엘인 것을. 비록 사는 일은 고달프고 그 육신으로 때론 힘에 겨우나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눅 21:34-36).”
하여 내 곁에 두시는 이는 하나님이시고, 함께 나누게 하심은 성령으로이며 이에 이 복음의 말씀은 예수시었다. 그러므로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8).” 나는 오늘 말씀 앞에서 새로이 무장한다.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 5:7-8).” 다시 또 자는 자로 밤에 거할 수 없다. 낮에 속하여 믿음과 사랑으로 호심경을 붙여 담대함으로, 구원의 투구를 쓰고 흔들림 없이….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요일 2:28).”
그러므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4-16).” 이에 따른 삶이란 그리 표가 나지 않고 많은 사람의 시선을 받지 못하나 묵묵히 노아와 같이 혹은 앞서 에녹과 같이 주와 동행하는 길이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막 13:35).”
하여 오늘도 묵묵히 같은 동선을 따라 주어진 날을 산다. 사느라 드는 비용에 있어 특히 육신의 연약함으로 견뎌야 하는 일에 대하여는 그만큼 또 견딜힘도 주실 것을 알고, 여러 어려움이 따른다 해도 주를 바람으로 나아가는 길 위에서, 내 곁의 한 영혼 저와 함께 나누는 복음의 시간으로 족하였다. 누가 내게 물으면, 요즘 어때? 하는 그 말에 나는 머쓱하나 묵묵하다. 늘 같은 시간 같으나 가볍게 놀라운 변화는 아이와 줌으로나마 성경공부를 하고 친구와 전화로나마 말씀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복이었다. 이 시간 주 앞에 올라와 오늘도 이처럼 말씀 앞에 앉아 주를 생각하는 이 시간이 다시 또 더하시는 사명이었다.
세상은 어떠하다 해도,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사 6:9-10).”
이와 같은 말씀 앞에 두렵고 떨릴 수 있는 마음이 복이다. 행여 주의 말씀을 알지 못하고 멀어질까 하여 주를 더욱 바라는 마음이 은혜였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롬 11:8).”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주의 말씀에 귀를 대고, 마음을 기울이며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살전 5:9-10).” 이 일에 쓰임 받는 자로 세우심을 받고,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11).”
나는 동기에게 또는 다음 세대에도 이 사실을 알려,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엡 6:23-24).” 그렇게 하여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살전 5:14).” 말씀이 오늘 나를 붙드심을 느낀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5-18).
그리하여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23).” 이와 같은 기도가 내게 이르고 나 또한 누군가를 생각하여 이어가는 가운데,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24-25).”그러므로 주께 아뢰기를,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깃발을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 (셀라)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건지시기 위하여
주의 오른손으로 구원하시고 응답하소서
(시 60:5-6).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이심이로다
(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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