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살후 3:1-2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시 63:3
기도를 부탁하고, 또 누군가 날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일은 귀하다. 이에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하시는 말씀을 오래 머금게 된다. 흔히들 믿는다, 신앙으로 산다 하는데 정작 그것을 무엇으로 증명하고 있는지?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후 13:5).”
이에 믿음의 호흡 같다면 기도다. 쉬지 않고 기도하게 되고 누구를 더하여 주께 간구하게 된다. 우리가 서로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기도제목을 나누는 일은 마땅한 권리로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 5:16).” 우리의 능력이 기도에서 나온다. 나를 이를 누구보다 사랑의 빚진 자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 6:18).”
마치 젖 먹던 힘까지 다하는 것처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 18:19).” 우리의 기도가 주 앞에 상달되기까지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계 5:8).” 우리에게 두시는 천사가 이와 같이 우릴 위해 일한다.
믿음은 주께 받은 선물이나 동시에 모두의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하여 감사할 것은,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오늘의 나도 이와 같아서,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하는 고백과 같이 주 앞에 머리 숙이며,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하는 것을 간증으로 삼아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하여 고백한다면,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하는 말에 나 역시 다르지 않음으로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는 바울 사도의 긴 자기 진술이 고스란히 나의 것이다(딤전 1:12-16).
항상 주께 고하다 나에게 베푸신 은혜를 되새길 때면 돌이킬 수 없는 죄 앞에서 주께 아뢰어 감사와 찬송이 넘치고는 한다. 생각만 해도 눈물로써 갚을 길 없는 천하의 죄인이라, 나로 주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게 하심을 되새기며 감사하곤 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이것이 내 선택과 나의 의지로 된 것이면 또 모를까, 나로 이끌어 주 앞에 세우신 그 사랑 앞에서 나는 몸 둘 바를 몰라 그 은혜를 갚을 길 없어 기도도 한다. 항상 누구를 생각함은 그러한 사랑의 빚진 자의 마음으로다. 앞서 여러 번 나의 나 된 과정을 돌이켜 보곤 하지만 그때마다 희한하고 놀라우며 믿을 수 없이 요란하였던 나의 생애가 온통 다 복이 아닌 게 없다. 그때마다 누가 늘 내 곁에 있었고 저로 인하여 나는 주를 멀리 떠났다고 여기다가도 늘 항상 내 곁에 계셨음을 알게 되곤 하였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신실하심 앞에서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살후 3:3).” 하는 오늘 바울 사도의 설교를 듣는 일은 신기하다. 어찌 나를 그처럼 사랑하시는지, 오늘도 이르시되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이에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 5:24).”
오늘도 나로 주 안에서 주가 다 이루시고 행하심을 알게 하신다. 내가 하려 하는 것 같으나 실은 한 영혼을 붙으시거나 새로운 일로 마음을 쓰게 하시는 일도 모두 주가 행하시는 일로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롬 4:20-22).” 그러니까 내 안에 이 믿음을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고, 그 믿음으로 행하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며, 이에 감사함으로 또한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게 하시고 말씀을 전하게 하심도 하나님이시다.
곧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 23:19).” 아, 이 신실하신 하나님 앞에 나는 오늘도 붙들려 주를 찬송한다. 더러는 어떤 어려움이 또는 불안이 나를 엄습할 때도 있으나 그때에도 주를 바라며 주 앞에 아룀으로 주만 바라게 하신다.
아내는 요즘 발바닥 뒤꿈치가 아파서 딛고 설 때마다 절뚝거리는데 병원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듯 살을 빼라는 정도의 말만 할 뿐이라, 가볍게 여기기에는 안쓰럽고 염려와 근심은 기도보다 앞서 간다. 이때에 주께 더 가까이하게 하심은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23).” 이에 두려워할 줄 안다.
행여 나의 오늘이 겉치레로는 아닌지.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약 2:18).” 그러니 함부로 자신의 믿음을 믿어서는 안 되는 것이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19).” 곧 믿음이 있다면 주가 더하시는 날에 오늘 시인의 찬송과 같이,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시 63:3).
한 마디로 내 목숨보다 주의 인자하심이 낫다는 것인데, 이를 욥의 고백으로 전환하면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욥 13:15).” 또한 다니엘과 그 친구들 같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우리가 굽힐 수 없는 것이었다(단 3:17-18). 곧 오늘 우리의 믿음이란,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29).”
고로 이 모든 게 오늘 어쩌다 우연한 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어서 우리가 주를 바람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이에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요 7:38-39).”
그렇게 앞서간 믿음의 사람들의 놀라운 변화를 찬송한다. 노예선 선장이었던 존 뉴턴은 돌이켜 주의 사명을 다하며 어린 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온화하게 주를 전하고 섬겼고, 늘 우울과 자살 충동으로 시달리던 윌리엄쿠퍼는 그러한 고통으로 수백 편의 찬송 시를 지었으며, 인디언 마을에서 선교사로 일하다 5년 만에 폐결핵으로 스물아홉 짧은 생을 다한 브레이너드는 그가 남긴 일기로 훗날에 많은 믿음의 젊은이들로 선교사의 길로 들어서게 하였다. 그를 간호하다 같이 결핵에 걸려 죽은 딸의 슬픔을 뒤로하고 에드워즈는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지었다. 설교를 한다는 이유로 12년을 감옥에서 살았던 존 번연은 주옥같은 여러 권의 신앙서적과 더불어 천로역정을 썼다.
이 모든 이들이 주를 믿음으로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친 것으로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 3:13-14).” 또한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딤전 6:11-12).”
나는 이를 내 곁의 날 위한 기도의 사람들로 오늘을 살면서 더욱 선명하게 알게 된다. 그렇게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롬 15:1-2).” 서로가 서로에게 그러함은 우리가 모두 주께 받은 은혜로 이 갚을 길 없는 사랑의 빚진 마음으로 하나 되는 것이었으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24).” 하여 현실을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 것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살후 3:13).” 하는 오늘 말씀의 권면을 내게 향하신 음성으로 듣는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63:1).
오늘 나로 주를 앙모하게 하심인데,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 13:12).” 안이하고 태평하게 굴 것이 아니라,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벧전 4:2).” 그러므로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2-3).
이와 같은 고백이 내 것이 되어 감사하다.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4).
부디 나의 남은 생애와 내 곁의 사랑하는 이들이 이와 같기를,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
(6-7).
그리하여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나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 하는
그들은 땅 깊은 곳에 들어가며
칼의 세력에 넘겨져
승냥이의 먹이가 되리이다
(8-1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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