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딤전 1:12-13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며 그의 행하심을 깊이 생각하리로다 의인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그에게 피하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는 다 자랑하리로다
시 64:9-10
어쩌면 나로 주를 멀리하는 길로 돌아 이제서 주의 참 사랑을 더욱 확실하게 알게 하신다. 내가 내 곁의 누구에게든지 권하는 말은 나처럼 어리석은 자로 먼 길을 돌지 않길 바란다. 오늘 바울의 심정도 사울일 때를 생각하며,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딤전 1:12-13).” 이와 같은 고백을 아뢰게 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주의 은혜가 더욱 깊고, 높고, 길고, 넓으시다.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딤전 1:14).” 이로써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7-19).” 우리의 그 어떤 허물과 실수의 죄악보다 주의 충만하신 사랑이 더 크시다.
이에 따른 산증거로 우린 우리 자신이 있다. 나로서도 그와 같다. 한 번 그릇된 길로 들어설 때마다 십년씩은 족히 먼 길을 돌았던 나로서는 누가 망설일 때 혹은 가봐야 알 것 같다고 말할 때 저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몸서리친다. 오늘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저의 간절함을 더하여 가르치고 증거 한다. 믿음으로 내가 어떤 이를 대할 때 저를 복음으로 낳은 자식처럼 생각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무턱대로 글방에서 교회로 예배가 드려지고 신기할 정도로 그때 여러 명의 아이들이 함께 하였는데, 그 가운데 일곱 명의 아이들이 처음으로 세례를 받았다. 아직 내가 목사가 되기도 전이라 아버님이 저들에게 세례를 주어 세례교인으로 세우실 때 그 의미는 남달랐다. 그렇게 시작했던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고 군대를 가고 연애를 하고 취직을 하는 동안 하나둘 떠나 지금까지 남은 아이가 하나다. 더러는 연락조차 아예 끊긴 경우도 있다. 유난히 자주 마음에 밟히는 것도 그 때문이겠다.
그때 나로서는 남은 희망이 말씀뿐이었고 돌이켜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우심에 따른 감사함뿐이었다. 이에 오늘 표현과 같이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14).” 하는 자복의 말이 나오기까지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하는 표현은 눈물겹다(1).
이번 주 수요일은 공휴일이라 성경공부를 어찌할까? 하고 예배 후에 물었더니 목요일에 해요, 하고 아이가 말할 때 내 안에 이는 어떤 기쁨은 어찌 표현할 길이 없다. 우리에게 소망은 구원과 희망의 말씀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 1:27).” 하여,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 62:1-2).
하는 기도와 찬송과 영광을 주께 올림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3-4).” 이와 같은 말씀으로 내가 능히 산다. 살아서 내게 주신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주의 것임을 찬송하고 안도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나는 이제 이 말씀이 올무 같지 않고 보증 같다.
내가 주의 것임으로 나의 오늘에는 성공도 실패도, 즐거움도 낙심도 주가 알아서 하실 것이다. 내가 내 것이 아닌데 나의 기쁨이나 슬픔이나 그 어떤 것도 내가 책임질 게 아니어서,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사 61:1-3).”
이 놀라운 말씀을 가지고,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고전 9:16-17).” 그렇게 나는 한 영혼을 대하는 것이고, 내가 더는 할 수 없는 지점에서 더는 미련을 두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마음은 여전히 미련이 남아 혼자 들볶고 힘에 겨울 때도 있지만 그것 또한 나를 위한 것임을,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롬 16:13).”
서로가 주 안에서 생각하고 이를 위하여 누군 글방에서 교회로 시작하던 때부터 오늘까지 묵묵하니 후원헌금을 보낸다. 나는 저에게 한 번도 고맙다고 인사한 적이 없다. 그 이유는 나를 보고 주는 게 아니고 교회를 사랑하고, 글방이 교회 되는 데 있어 스스로도 주역의 영광을 붙들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 6:18).” 우리가 믿음으로 한 가족이 되어,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벧전 5:13).” 교회와 세상 사이에서 바른 맺음으로 이어가는 것이다.
이때 우리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일진대,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2).” 하고 오늘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를 전함이 아니겠나? 우리에게는 항상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있었다. 곧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4).”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으로 이 교회를 세우신 것이고,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느 1:5).” 이에 우리가 같이,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23:4).
이 놀라운 고백이 나와 우리와 함께 하는 모든 이의 것임을, 그렇게 항상 내 곁에는 하나님이 세우신 주의 천사들이 늘 곁을 같이 하셨다. 돌아보면 그것은 더욱 뚜렷해진다. 저이가 그때 왜 나를 그처럼 위하고 도왔는지, 설령 저이가 ‘바벨론의 사람’이었다 해도 그 순간에는 주가 내 곁의 지키게 하신 이었고, 그렇게 누구는 스쳐갔고 누구는 여전히 함께 이 길 위에 서서 서로를 중보하고 위하여 손을 내밀며 동행하는 것이었으니…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 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사 52:1).”
어떤 어려움과 고약한 현실을 지날 때 더욱 서로는 없는 있고 있는 없는 일심(一心)으로 하나였으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갈 2:4-5).” 하여 나는 이제 확신한다.
어떤 이와 어떤 길에서 갈려서 더는 서로 다른 길로 간 것 같으나 길은 끊어진 듯 이어져 서로가 다시 마주하여 나란히 걷고는 하는 것이어서, 우연처럼 어떤 계기로 다시 마주하였을 때 서로가 늘 함께 하셨던 하나님으로 더욱 돈독하고 독실하게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것으로 서로에게 사랑이 된다. 그러므로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4).” 우릴 어지럽히는 소모적인 논쟁을 피한다. 오히려 믿음 안에서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5-7).”
우린 더러 우리의 그릇된 길에서 바른 길을 알게 된다. 마치 잘못 들어서는 길에서 바른 길을 찾아 절박함으로 주의 이름을 부를 때, “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살인하는 자며…” 하는 오늘 비유와 같다(9). 더는 죄에서 자유로워진 후 나는 그 길에서 경계해야 하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어졌다. 가령 음주를 끊고 난 뒤 단속이 언제 있는지, 면허취소 수준이 얼마인지 나는 전혀 모르고 관심도 없다. 경건하지 않을 때는 오히려 양심을 운운하던 일들에 대해 더는 나와 상관도 없다.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11).”
그래서도 나는 더욱 예전의 내가 오늘의 나로 바른 길을 가게 하는 것을 느낀다. 다시는 그 길로 갈 수 없다는 어떤 결의로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13).” 그러므로 이제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14).” 이를 내 곁에 있는 아이에게 또는 내게 붙이시는 한 영혼을 두고 씨름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주를 의뢰하며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하는 데 따른 확신과 함께,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하는 고백을 서슴지 않는다(15).
죄가 짙은 곳에 은혜가 밝다. 더러 눈물로도 갚을 길 없는 은혜로 가슴은 먹먹하고 주를 바라는 마음은 더욱 뜨거워서 눈물을 흘릴 때,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16).” 나로서는 한 게 없고 오직 주의 참으심과 인자하심으로 오늘의 나는 영광중에 있는 것이니,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17).”
그러므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18-19).” 부디 나의 남은 생애 가운데 파선하는 일이 없도록, 내 곁의 한 영혼도 그릇 먼 길을 돌아가지 않도록,
하나님이여 내가 근심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원수의 두려움에서 나의 생명을 보존하소서
주는 악을 꾀하는 자들의 음모에서
나를 숨겨 주시고 악을 행하는 자들의 소동에서
나를 감추어 주소서
(64:1-2).
주가 아니시면 나는 언제든지 그릇 행하여 갈 것이어서,
이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리니
그들의 혀가 그들을 해함이라
그들을 보는 자가 다 머리를 흔들리로다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며
그의 행하심을 깊이 생각하리로다
(8-9).
그리하여
의인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그에게 피하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는 다 자랑하리로다
(1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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