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전봉석 2024. 5. 30. 03:48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

 

우리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기쁘게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을 향하여 즐거이 소리칠지어다

시 81:1

 

 

우리에게는 불변의 약속이 있다. 오늘도 이 한 날이 주어지는 것은 그 남은 자들을 향한 약속을 이루시기 위함이다. ‘여호와의 싹’ 곧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우리의 장차 누릴 안식에 대해 묵상하게 한다. 우리의 이 안식은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데 있어 이에 이르지 못한 자들을 다루심으로 도드라진다.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

(시 95:7-8).

 

오늘에도 여전히 그 마음이 완악하여 말씀을 들어도 믿음으로 가져가지 못한다. 우리의 불신앙은 여러 성경을 통해 앞선 이들의 선례로 알 수 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 하심은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창 2:2).” 이에 따라 오늘 우리도 안식을 사모한다. 장차 누리게 될 하나님의 영원하신 구속, 그 안식을 사모함이다. 오늘 우리는 영원한 안식과 그 약속의 성취 중간 기간에 살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안식에 들어감은 기정사실로 예수님의 사역을 논증하는 오늘 본문에서 그 확증을 얻는다. 그러므로 처음 믿은 이 믿음을 ‘끝까지 견고히 잡은 삶’으로,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히 3:14).” 곧 이 영원한 안식에서 누리게 될 보증이 오늘 이 말씀이다.

 

이 약속은 불변하다. 앞서 간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불신앙을 강조하면서 오늘 본문은 그 전철을 밟지 말 것을 완곡한 어조로 일깨운다. 이에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한다.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히 4:9).”

 

그러므로 교회는 그에 따른 과정에서 상한 심령으로 주 앞에 나오는 영혼의 병원과도 같다. 곧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롬 15:1-2).”

 

요즘은 친구와 성경을 나눌 때 서로의 노년에 대해 자주 대화하게 된다. 저는 노후 준비를 운운하고 먹고 살 궁리에 사로잡히는데 나는 저에게 그의 남은생애가 평신도사역자로 쓰임받기를 놓고 기도하자고 권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6-17).”

 

우리가 이에 힘쓰는 까닭은 장차 누릴 영원한 안식자들이기 때문이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살전 5:14).” 그러므로 나는 저의 가치변화를 권면하고 저는 오늘의 시각에서 막연하여 갈등한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 주가 쓰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 나는 나의 연약함으로 주 앞에 세우심을 입었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우리의 안식은 가만히 수동적으로 들어가는 곳이 아니다. 오늘 본문 1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히 4:1).” 곧 여전히 잘 가다 이 길을 파선하는 자들이 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딤전 1:19).” 그만큼 세상이 너무 그럴듯하고 좋다.

 

우리가 애씀은 구약의 성도들이 출애굽 후에 보인 그릇 행함으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곧 “이 악한 세대 사람들 중에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도 진노하사 이르시되 너도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리라(신 1:35-37).” 그러느 저 소수의 남은 자들 외에 모두는 그릇된 선택을 따라갔다.

 

안식의 의미는 창세기 2:2에 언급되고, 십계명 가운데 거룩히 지켜야 할 명제로 주어졌고,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약속의 땅 가나안의 안식으로 이해된다.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안식과 기업에 아직은 이르지 못하였거니와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 거주하게 될 때 또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너희 주위의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너희에게 안식을 주사 너희를 평안히 거주하게 하실 때에…(신 12:9-10).”

 

이제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심을 우리는 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마 12:8).” 그러므로 장차 일어날 예수의 재림으로 인해 완성될 것이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 14:13).”

 

이에 따라 안식의 약속은 불변하다.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으로 우리에게 임하실 하나님의 임재와 축복을 포함한다.

 

내가 사십 년 동안

그 세대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르기를

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길을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95:10-11).

 

하시는 말씀으로 우린 각성하게 된다. 더불어 살아서 사는 동안에 이 안식을 준비하는 자로 사는 일은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사 59:2).” 그러므로 죄에 민감하고 말씀에 집중하는 삶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유 1:15).”

 

그렇게 해서 우리가 말씀을 의지하고 주의 길을 바로 사는 데 따른 주의가 필요하다. 이에 우리는 근심하나,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

 

이를 오늘 말씀은 이 말씀의 탁월함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1-13).”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는 말씀의 능력으로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하는 이와 같은 말씀에서 내가 받은 은혜가 크다는 것을 새삼 또한 감사하고는 한다. 이에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셨다’는 예수님을 믿으며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 4:2:17-18).”

 

그렇게 오늘도 나를 말씀으로 이끄셨다. 몸은 약하여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이를 근거로 나는 친구에게 권하고 아이에게 말씀을 전한다. 우리가 사는 땅에서 우리가 들어갈 하나님의 나라, 그 안식을 사모함이란…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이에 따른 약속으로 이 약속은 변하지 않는다. 하여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히 4:10).” 나는 가끔 이를 상상하며 나의 그날을 기다린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행되어왔고 이행되고 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행 2:38-39).”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 4:11).”

 

앞서 성경에 기록된 선친들이 거역한 길로 가지 않기 위하여, 곧 우리의 속성에 따른 이 땅의 근심과 염려로 사로잡히지 않기 위하여,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히 4:14).” 그러는 데 있어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15).” 예수는 우리의 보증이시고 대언자이시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하여 감히 말하건대 하나님의 말씀은 변개가 없으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나의 약함과 이 어리석음을 그대로 들고 주 앞으로 나온다. 몸도 마음도 연약하기 그지없어 자칫 거짓에 사로잡히기 일쑤인데,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딛 1:2-3).” 그러므로 할 수 있는 일, 주의 일을 감당하는 데서,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128:2).

 

하여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살전 4:11-12).” 그저 묵묵히 주어진 한 날의 삶을 살아가는 일에 있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9-30).”

 

그리하여 오늘도,

 

우리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기쁘게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을 향하여

즐거이 소리칠지어다

(81:1).

 

하면,

 

이르시되 내가 그의 어깨에서 짐을 벗기고

그의 손에서 광주리를 놓게 하였도다

(6).

 

고단한 육신과 마음을 다잡고 주의 안식을 사모함으로,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우렛소리의 은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 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 (셀라)

(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