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

전봉석 2024. 6. 19. 03:59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후 1:4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따르리로다

시 101:6

 

 

우리가 신성한 성품 곧 성령의 열매를 맺는 데 있어 우리 안의 ‘쓴 뿌리’가 이를 가로막는다. 오늘 본문은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벧후 1:4).” 이에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5-7).” 하신다.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히 12:15-16).”

 

그렇다면 우리의 쓴 뿌리가 무엇일까?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마음 밭과 같이 돌과 가시떨기가 우리 속에 또는 우리 상황을 뒤덮은 것이다. 염려와 근심으로부터 시작하여,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롬 1:29-31).”

 

궁극적으로 이것은 앞서 밝힌 바,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두신 이유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로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는 것이 쓴 뿌리이다. 이를 위하여도 우리에게는 광야가 필요하였다. 불순종의 결과이지만 그에 따른 필연적인 과정이다. 이때 광야의 성도들도 광야에서 죽었고, 앞서 애굽의 성도들도 애굽에서 죽어서 비록 가나안의 성도와는 다르겠으나 저들도 자녀이면 천국에는 갔다. 이는 모두 오늘 우리의 모형이다.

 

주를 영접하고서도 여전히 세상에 기울어서 세상에 속한 자와 다를 것 없이 살다가는 성도가 있고, 광야로는 나왔으나 믿음이 약하여 광야로만 배회하다 죽은 성도들도 있다. 그런 가운데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가나안까지 들어가 날마다 주 안에서 자신을 쳐서 복종시킴과 같이 영적 전쟁의 날을 살다가는 적은 무리의 성도들도 있다. 저들이 자주 돌아보며 그 마음이 애굽에 머무는 것으로 사는 것은 애굽화 된 까닭이다. 광야로 나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서도 결국은 광야에서 머물다 그친 것도 애굽화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의 쓴 뿌리다.

 

쓴 뿌리로 인하여 우리가 주의 신성하신 성품에 참여하지 못한다. 곧 성경에 드러나는 사실과 같이 대다수의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애굽에서 죽거나 광야에서 죽었다. 그 삶이 천성의 삶을 맛보지 못하고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에서 머물다 간다. 일련의 상황 속에서 서로는 근심하고 다수는 그 자리를 맴돌며 씨름하느라 아까운 생을 흘려보낸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애굽화 된 성품을 버리지 못하고 산다. 이에,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9-10).”

 

이 땅에 비추어 살 때 이는 아주 사소한 일이어서 서로는 서로에게 괜찮아, 그럴 수 있지! 하면서 가벼이 넘긴다. 오늘 우리의 이 사소함으로 여전히 세상에서 종노릇하고 광야에서 신음하며 산다. 이를 어제 친구와의 성경공부에서 설명하였다. 저가 물어본 성경구절은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1-22).”

 

이는 우리 안에 주의 영이 거하심을 뜻하는데,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 하신 말씀의 중심이 제일이다. 곧 우리는 힘(육신)과 뜻(혼, 생각)과 마음(영혼)으로 이어져서 처음 사람 아담에게 부으셨던 생기, 곧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여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 2:7).” 이는 불가항력적으로 부어주시는 것으로 일순간 우리 힘과 뜻과 마음을 관통하여 깊이 뿌리내린다.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입는 것도 이와 같이 순간적인 관통과 도달로 판명된다. 이는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다.

 

그러나 우리의 쓴 뿌리가 이를 가로막고 있어서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 5:19-21).” 하는 경고의 말씀을 듣는다. 하여,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막 12:30).” 하심은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 17:23).” 하는 주님의 기도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알 수 있다.

 

30분 남짓 짧은 듯 긴 시간을 알차게 성경을 설명하고 나누다보면 전하면서 나는 내 안의 쓴 뿌리를 발견하게 되고, 듣는 이는 들으면서 자신의 쓴 뿌리를 찾아내게 된다. 누가 겪고 있는 어떤 일, 오늘 그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은 상황 속에서 주를 바라는 마음이 생겨나기를 바라였다. ‘그 아이’의 ‘어떤 일’로 인하여 서로가 근심하고 걱정하나 그것으로 우리는 또한 잃어버린 신앙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어서… 나는 먼저 교회로, 신앙 안에서 지금의 그 모든 일을 가져오기를 바랐다. 어디 좋은 정신과를 찾고 정확한 병명을 진단받고 치료약을 받아 삶의 질이 나아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우선이 아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일의 우선순위가 뒤바뀌어 날마다 그 자리가 애굽인 채 살 수는 없다. 주의 자녀로 애굽 곧 세상의 종노릇하며 살려니까, 안 믿는 자들은 잘만 사는 것 같은데 믿는 자들이 오히려 고달프다. 하는 일이 막힌다. 늘 사는 게 고역이다. 저들이 애굽에서 종노릇하다 할 수 있는 것은 주께 부르짖는 일이었다. 저들이 광야 40년을 배회하다 할 수 있는 것은 순종이었다. 저들이 가나안에 들어가 날마다 전쟁 가운데서 할 수 있는 것은 주를 의지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저마다의 ‘쓴 뿌리’를 제거해야 하는 이유는 우선 영적인 눈을 뜨기 위한 것이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이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 우리 마음, 그 영혼이 청결하기 위하여 오늘을 억누르는 염려와 근심과 온갖 시달림으로 주께 부르짖으며 순종하고 주께 의지한다. 그러할 때 비로소 천국에 소망을 두며 살게 되고 그러면서 오늘까지 붙들고 놓지 않으려던 세상 귀한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긴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8-9).”

 

누구와 대화하며 저의 처한 일련의 상황을 두고 나는 ‘쓴 뿌리’를 운운하였고, 친구와 성경을 나누면서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바 그 내용을 설명하면서도 그러하였다. 우리가 이 쓴 뿌리를 제거해야 하는 이유는 그리하여 견디는 힘이 생겨난다. 이 힘은 내부의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오는 것이다. 주가 부어주시는 바, 오히려 어려운 나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덕이 나타난다. 해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 4:6).” 이를 면하기 위해,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잠 1:8).”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

 

오늘도 말씀이 나를 관통하시길. 그리하여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하실 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막 12:29-31).”

 

이를 오늘 베드로는 자신을 소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한다(벧후 1:1). 이는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3).” 하고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4).”

 

곧 우리로 하나님의 성품,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오늘 우리 삶에서 익혀간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이를 위해서도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24).” 오늘 우리를 가로막고 서는 쓴 뿌리를 제거해야 한다. 그러할 때 천국의 소망이 오늘 이 땅의 소망이 헛됨을 알게 한다. 우리 신앙의 질을 파괴하는 것들을 제거하는 일, 이는 결국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는 것이기도 하여서,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눅 19:43-44).”

 

사는 게 때론 힘에 겨울 때도 있으나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벧후 1:10).” 바로 이것,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으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 1:19).” 곧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요일 4:2).” 나의 속함을 앎으로 지혜가 우리로 여호와를 경외하게 한다.

 

그러므로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 1:20-21).”

 

하여 오늘도 주의 영을 내 안에 모시고, 매순간 성령이 나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하며…….

 

내가 인자와 정의를 노래하겠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찬양하리이다

내가 완전한 길을 주목하오리니

주께서 어느 때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 안에서 행하리이다

(시 101:1-2).

 

하고 주께 아룀으로,

 

나는 비천한 것을

내 눈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

배교자들의 행위를 내가 미워하오리니

나는 그 어느 것도 붙들지 아니하리이다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따르리로다

(3, 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