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백성 앞에 세울 법규는 이러하니라
출 21:1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 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시는도다
시 50:21
앞서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 그 뼈대라 할 십계명을 주셨고, 이어 오늘에는 사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 지켜야 할 행동과 그에 따른 책임을 전개하고 있다. 이를 하나님이 직접 하나님의 백성에게 더하심으로 단순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시민법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신정법이라 하겠다. 할 때 우리는 천국 시민으로서,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빌 3:20-21).”
하신 말씀과 같이 우리의 영혼과 육신을 동시에 다스리시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주목하게 되는 것이 항상 그 시점이 약한 자와 억울한 자를 우선한다. 즉 예수님도 이 땅에 계실 때에 늘 그들 곁에 계심으로,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마 11:19).”
이에,
“가련하고 가난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사 41:17).”
고로 우리의 관심과 그 시선도 내게 유익을 줄 수 있는 힘 있고 능력 있는 자에게로 향하는 게 아니라, 우리 곁에 어려운 처지로 두신 이를 가까이 하는 것이다. 이에 주님은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 5:42).” 하신 것을 토대로 바울 사도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이르기를,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 젊은 과부는 올리지 말지니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 가고자 함이니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정죄를 받느니라(딤전 5:10-12).”
곧 우리가 주를 섬기는 데 있어 무엇을 바라고 어디에 발을 딛고 살아야 하는가를 알게 한다.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희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하므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임이라(신 24:14-15).”
그러할 때 우리 안의 ‘다메섹’에 대한 경고를 ‘보라’ 이르신다. “다메섹에 관한 경고라 보라 다메섹이 장차 성읍을 이루지 못하고 무너진 무더기가 될 것이라(사 17:1).”
어제는 이를 증거하면서 실제 다메섹이 우리 곁에 얼마나 친밀한가를 알 수 있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연합세력에 의해 잡혀갔던 것도 다메섹이고(창 14:15), 하나님이 약속의 씨를 말씀하실 때 아브라함이 다메섹에서 데려온 엘리에셀을 지목하여 이로 그 대상을 삼겠다고 했던 일도 있다(15:2). 다메섹은 마치 우리의 형질과 같아서 다윗이 정복하고(삼하 8:5-6), 솔로몬이 다스렸던 것처럼 해야 한다(왕하 11:23). 그렇지 않으면 수시로 공격당한다(왕상 15:19).
바울이 사울이던 시절 예수를 만나 회심한 곳도 다메섹 도상에서였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행 9:3-5).” 이는 우리의 속상과 같아서 그때마다 다스리지 않으면 언제든지 침투하여 우리 영혼을 갉아댄다. 오늘 날에는 역사적으로도 시리아 공화국의 수도가 된 다메섹이다.
이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라’ 하시며 저들-우리 안의 또 다른 자아-의 멸망과 그 심판에 대한 경고를 우리로 눈여겨봐야 할 것이라 하신다. 왜냐하면 수시로 우리 마음을 미혹하여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게 한다. 내 안의 또 다른 자아와 같고 속성과 같아서 평소에는 잘 모르다가도 순간 안이하고 나태할 때 드러나는 성격과도 같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 자신이어서 우리 안에 주의 긍휼하심이 아니라면 우린 우리 자신을 주체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안에 주울 것이 남으리니 감람나무를 흔들 때에 가장 높은 가지 꼭대기에 과일 두세 개가 남음 같겠고 무성한 나무의 가장 먼 가지에 네다섯 개가 남음 같으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 17:6).”
곧 내 안에 ‘주울 것이 남으리니’ 하나님이 이를 남겨두시기까지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딤전 5:18).” 그러므로 서로의 입장과 권리를 인정하라는 것, 오늘 본문은 이를 주목하게 하신다.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출 21:2).” 이에,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고전 3:3-4).”
서로가 그러하여 이를 존중하는데 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 2:3-4).” 곧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나의 관심도 그 의미도 같을 때 내 안의 감사가 풍성하였다. 늘 겪는 어떤 어려움으로 나는 항상 마음이 두 갈래이다. 그런 가운데 감사를 하거나 그러므로 우울하여 주 앞에 그 두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어제도 예배 끝나고 병원에 갔다. 의사는 내친김에 주사치료를 3, 4회 이상 연속으로 해야 하는데, 자꾸 내가 하다말다 하여 그 통증이 이어지는 것이라며 충고하였다. 나 역시 그러한 것은 알면서도 그 상황이 주는 공포를 어찌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워서 슬펐다. 그럼에도 다시 또 진통제만 맞고 왔다. 그러니 늘 아픈 게 제자리 일이라, 아내가 부모님께 신발을 택배로 부치는 동안 나는 길거리에 앉아 선선한 바람에 눈을 감고 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면서 사는 게 참 고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껏 우리 안의 다메섹에 대한 말씀을 선포하고, 나 자신의 또 다른 자아를 염두에 두고 대처해야 한다는 것도 알면서 마음은 그렇게 천 길 낭떠러지에 서 있는 것처럼 끝 간 데 없이 까부라졌다.
얼마쯤 지났을까? 아내가 어깨를 툭, 치면서 나의 상념을 날리듯 노인네 같다며 핀잔을 했다. 우리에게 더하신 육신과 환경과 여건을 가지고 맡기신 사명을 다하며 살아가는 일이란, 자기 십자가 곧 자기희생이 따를 것이다. 이는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롬 5:6).” 내게 향하신 주의 사랑이 크고 놀라우심과 같다. 이를 알면서도 힘든 건 힘든 것이라, 입을 쭉 빼물고 발 끝만 내려다보고 걸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 5:2).”
그러므로 묵묵히 주가 더하시는 날을 살아가는 일이 곧 주를 인정하는 일일 터인데,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7-8).” 주께서 날 위해 앞서 행하신 일이다. 오늘 나로 이 삶을 감사히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된다. 아픈 것은 아픈 대로 돌아보며, 아내의 말처럼 나 혼자 늙은이 같이 빠른 세월을 사는 것 같다 해도…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 10:34-35).”
비록 나는 부족하고 내세울 게 없으나 주를 바라는 마음만으로 오늘도 주신 상황 속에서 감사하기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롬 10:12).”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13).” 하심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전 9:9).”
오늘이라도 오라 하시면 가야 할 터, 이런저런 이유 없이 모든 걸 다 주께 맡김으로 감사와 영광을 주께 올리며, 이 모든 게 주의 권한으로 그의 뜻 안에서의 일인 것을 인정할 때에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 10:29).”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31).” 하시는 말씀에서도 안도한다. 하물며 참새도 그러한데 나는 주의 자녀로 오늘에까지 살아온 것이라…….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시 8:4-5).
나는 자주 나 같은 자로 주의 자녀 삼으신 것과 일생을 함께 하실 때 심지어 내가 죄 중에 있을 때도 먹이시고 입히시던 것과 같이, 오늘도 교회를 이뤄가는 데 있어 항상 주의 손길이 함께 하심을 간증하게 하심을 안다. 나는 나의 날들이 주가 함께 하지 않으신 날이 없었음을 이제는 안다. 더러는 학교폭력 앞에서 속수무책일 때도, 이에 어린 마음에 그릇된 생각을 가졌을 때도, 나의 젊은 날 하나님을 외면하고 부인하며 세상 즐거움을 추구하며 살려할 때도… 하나님은 언제나 지금과 같이 나를 지키시며 나의 삶의 주인이셨다.
어제는 설교 중에도 어디가 아파서, 아픈 게 일이라지만 때론 지겨울 때가 있어서 시무룩하다가도… 그러는 가운데 고질적인 나의 불안은 아내의 족저근막염은 물론 부모님의 연로함과 그에 따른 기저질환으로 점점 더 ‘낡아져 가는 겉사람’으로, 한층 더 아흔 살 장모와 같이 살면서 나는 저의 기침소리, 걸음걸이, 몸짓 하나에도 쩔쩔매며 지레 내가 죽을 것 같이 공포를 느낀다. 특히 토요일 오후에는 아내가 논현동으로 가서 아픈 형제아이들 수업을 해야 하는데, 그 서너 시간 아내와 교대하듯 장모를 지켜보며 마음을 졸이는 일이 고역이다. 가만히 방문을 열어보고 혹여 쿵, 하고 어떤 소리라도 나면 소스라치게 놀란다.
아, 나는 나의 약함으로 살 수가 없다. 내 몸 하나 건사하는 일도 힘에 겨워 더러는 입을 꾹, 다물어서 아내를 속 터지게 하면서도 이를 어찌 일일이 설명하며 말하기도 어려워서 주의 이름만 되뇔 때,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51:6).
아,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9).
때론 뻔뻔하고 송구하여 주의 이름을 부르기도 죄송하지만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롬 15:2).” 이런 가운데 나의 어려움이 또는 부족함이 부디 주를 나타내기에 그나마 쓰임받기를. 그리하여,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15:2-3).
이를 위하여,
전능하신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비추셨도다
(50:1-2).
그러므로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언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7, 14-15).
하실 때에 나는 다시금 오늘 말씀 앞에 앞드린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22, 23). 아멘.
'[묵상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사모하리이다 (0) | 2024.10.02 |
---|---|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0) | 2024.10.01 |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0) | 2024.09.29 |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0) | 2024.09.28 |
찬송하라 하나님을 찬송하라 (0) | 2024.09.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