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낮도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이라

전봉석 2024. 10. 24. 00:18

 

만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를 부지중에 범하여도 허물이라 벌을 당할 것이니 그는 네가 지정한 가치대로 양 떼 중 흠 없는 숫양을 속건제물로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가 부지중에 범죄한 허물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이는 속건제니 그가 여호와 앞에 참으로 잘못을 저질렀음이니라

레 5:17-19

 

낮도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이라 주께서 빛과 해를 마련하셨으며 주께서 땅의 경계를 정하시며 주께서 여름과 겨울을 만드셨나이다

시 74:16-17

 

 

오늘은 ‘가난한 자’를 위한 속죄제 규례이다. 어린 암양이나 염소를 드릴 형편이 안 되면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드리고, 그것마저 드릴 형편이 안 되면 고운 가루 에바 십분의 일을 드리라고 하신다. 그렇게 해서 누구라도 속죄제를 드려 죄사함을 받을 수 있다. 이에 가난은 물질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우리가 아무리 미천하다 해도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죄함이 없음을 알게 하신다.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 1:18).”

 

하신 말씀과 같고, 그에 따라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겔 18:20-22).”

 

그러므로 죄와 사함은 지극히 개별적이고 저마다의 ‘하나님과 나’ 사이의 일이다. 이에 우리는 공의를 행함으로 그에 따른 용사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시 15:1-5).

 

이런 가운데 우리는 주신 상황 속에서 산다. 그 안에서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사 1:17).” 무던히 이를 실천하며 사는 자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

 

주를 사랑하고 의뢰하는 삶이란 어느 상황 속에서도 주와 함께 하는 것으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14-15).” 하는 내용을 어제 설교원고에 정리할 때, 앞에는 아이가 와서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저 아이도 늘 혼자이고 무료하여 오전 근무만 하고 집으로 간다. 헬스를 갔다가 낮잠을 자고 저녁을 먹고 다시 헬스를 간다. 그 사이 성경을 쓴다. 걸어서 15분 거리에 우리 집이 있고, 아파트 단지 안에 도서관에서 아이와 만나서 저는 책을 읽고 나는 설교원고를 작성하였다.

 

모두가 외면하는 지점에서,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습 2:3).”

 

그러므로 사는 날 동안에 우린 오늘 말씀에서와 같이 “만일 누구든지 부정한 것들 곧 부정한 들짐승의 사체나 부정한 가축의 사체나 부정한 곤충의 사체를 만졌으면 부지중이라고 할지라도 그 몸이 더러워져서 허물이 있을 것이요(레 5:2).” 부정한 것을 경계하고 주의해야 하는 것으로, “만일 부지중에 어떤 사람의 부정에 닿았는데 그 사람의 부정이 어떠한 부정이든지 그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허물이 있을 것이요(3).” 하여 속죄제가 필요하다.

 

이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 1:1).

 

날마다 그 삶이 주 앞에서 온전하기를 바라나,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 7:19-20).” 이에 바울과 같이 애통해함으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24).” 할 때에 깨닫는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22-23).”

 

내 안에 두 마음이 서로 싸우는 것으로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7).” 이로써 우리의 매순간은 치열하다. 아이를 오게 하고 그에 맞춰 나의 일정을 맞추는 일에서나 나의 약함을 두고 나는 나와 씨름하듯 견주어야 하는 일에서도,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간사한 자와 동행하지도 아니하리이다

(시 26:4).

 

스스로를 경계하며 사는 삶이란 이와 같아서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따르지 말라(잠 1:10).” 하심은 그래서였다. 설마, 하고 허용하는 범위에서 나 역시 죄를 죄로 여기는 데 무뎌지기 마련이다. 일련의 사회 현상에서 모두가 ‘술 취한 자의 손에 들린 가시나무’ 같이 각자의 말과 사고와 이상을 추구하며 휘두른다. 그런 가운데서 우리는 무엇으로 깨끗할 수 있을까?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시 119:9).

 

하여,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11).

 

오늘도 이처럼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사는 일은 필연적으로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딤전 4:13).” 그러할 때에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결론은 다시 말씀으로다. 말씀으로밖에는 달리 더 좋은 길이 없다. 이에 말씀은 내가 죄인임을 알게 하고 이를 인정함으로 회개하게 한다.

 

“그들이 사로잡혀 간 땅에서 스스로 깨닫고 그 사로잡은 자의 땅에서 돌이켜 주께 간구하기를 우리가 범죄하여 반역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하며 자기를 사로잡아 간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주께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아보시오며 주께 범죄한 백성을 용서하시며 주께 범한 그 모든 허물을 사하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게 하옵소서(왕상 8:47-51).”

 

이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 10:22).”

 

오늘 말씀은 구약의 5대 제사 중 속죄제와 속건제에 관한 규례가 전반부와 후반부에 각각 다루어지고 있다. 앞서 4장 1절로부터 계시된 속죄제 규례가오늘 전반부 5장 13까지 이어지고, 후반부인 5장 14절부터는 속건제에 관한 규례가 언급되어서 다음 6장 7절까지 계속된다.

 

속죄제는 하나님께 범한 죄를 속함 받기 원하여 드리는 제사이고, 속건제는 인간이나 성물에 대해 범한 죄를 속함 받기 원하여 드리는 제사이다. 속건제가 속죄제와 다른 것은 범죄의 경우 손해액에 덧붙여 1/5의 벌과금을 가산해서 내야 한다는 것으로, 배상의 성격이 강하다. 두 제사는 공히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인 만큼, 그 실제 적용에 있어 결국 속죄제와 속건제가 구별 없이 드려졌다.

 

하나님은 두 규례를 세분화시켜 하나님께 범죄한 경우는 물론이요, 인간 상호간에 저지른 것과 성물에 대해 범과한 것을 모두 속죄함을 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으셨다. 여기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여러 규례를 조목조목 정하신 이유가 결코 그러한 법으로 우리를 얽매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하고 무지함으로 살아가는 중에 행여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한계를 아시고, 그에 따른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도록 인도하기 위해서이다.

 

곧 우리의 구속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은 구약의 제사와 율법을 통해서, 신약의 그리스도의 보혈로 모두 사함을 받을 수 있도록 그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어떤 사건에서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경우 이를 정직하게 진술함으로 회개에 이른다. 심지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짐승이나 사람의 부정한 것을 접촉하여 저지르는 부정에 대해서도 그 잘못을 깨닫게 하셨다. 곧 우리가 침묵할 때 죄는 속으로 감겨 나를 침잠시킨다. 이를 오늘 1절은 강렬하게 언급하신다.

 

“만일 누구든지 저주하는 소리를 듣고서도 증인이 되어 그가 본 것이나 알고 있는 것을 알리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의 죄를 져야 할 것이요 그 허물이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며(레 5:1).”

 

이는 결국 다 아시는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과 같아서 모르는 척, 또는 침묵할 때 상대적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

 

그는 그들 모두의 마음을 지으시며

그들이 하는 일을 굽어살피시는 이로다

(시 33:15).

 

이에 타인의 죄악에 대하여도 주의 사랑으로 그를 권면하고, 듣지 않을 경우 그를 징계하기를 원하신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마 18:15-17).”

 

따라서 우리의 진정한 용기는 회개와 용서다. 죄에 대해 침묵하지 않고 이를 주 앞에서 직고하듯이 서로가 알게 하여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잃지 말아야 한다. 때론 이 일이 어렵고 힘들 것이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하신 주의 부르심에 응하는 일이다.

 

남들보다 가난하고 부족하여서 고운 가루 1/10 에바(약 1.2되)까지도 속죄 제물로 허용하시는 주 앞에, “만일 그의 손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두 마리에도 미치지 못하면 그의 범죄로 말미암아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예물로 가져다가 속죄제물로 드리되 이는 속죄제인즉 그 위에 기름을 붓지 말며 유향을 놓지 말고(11).” 그것을 화제(火祭)로 드리고(12), 남은 것은 제사장의 분깃으로 돌리라고(13) 하신다.

 

사실 이 정도의 예물은 하등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성의 문제다. 죄를 절실히 깨닫고 그 죄에 대해 용서함 받을 때, 오늘 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십자가로 향하는 길에서 우리는 빈부귀천이 문제가 될 수 없다. 속건제 또한 손해보상과 죄 용서의 원리로 희생 제물 외에 일정액의 손해 배상을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곧 저지른 죄과에 대해 책임을 지고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으로 진정한 회개는 이후의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따라서 속죄제와 속건제의 차이는 자신이 지은 죄를 속함 받아 진정한 화해를 이루기 위한 제사라는 점에서 같으나 어떠한 죄를 무슨 제사로 속죄함을 받을 것인가 하는 적용에 있어서는 각자 서로의 문제로 인식하고 공통의 문제로 다루어지는 게 맞을 것 같다.

 

이처럼 말씀을 따라가다 보면, 나의 일상에서 소홀히 여기며 살았던 것들이 주 앞에 부끄러움으로 기억나면서 아뢰게 된다. 이때에 우리의 기도는 오늘 시편의 내용과 같지 않을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나이까 어찌하여

주께서 기르시는 양을 향하여

진노의 연기를 뿜으시나이까

(시 74:1).

 

어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주의 대적이

주의 회중 가운데에서 떠들며

자기들의 깃발을 세워

표적으로 삼았으니

그들은 마치 도끼를 들어

삼림을 베는 사람 같으니이다

(5).

 

이와 같이 주께 아룀으로,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욥 13:15).” 우리들로 하여금 온전히 주만 신뢰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예로부터 나의 왕이시라

사람에게 구원을 베푸셨나이다

낮도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이라

주께서 빛과 해를 마련하셨으며

주께서 땅의 경계를 정하시며

주께서 여름과 겨울을 만드셨나이다

(12, 16-1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