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

전봉석 2024. 11. 11. 00:3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것이 나의 절기들이니 너희가 성회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

레 23:1-2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

시 92:14-15

 

 

지켜야 할 ‘여호와의 절기’에 대한 규례를 언급하고 있다. 이 절기들은 이스라엘이 일 년 동안에 지켜야 할 것들이다. 각 절기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속의 역사와 축복의 역사를 나타낸다. 이 절기들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구속과 축복을 기념하고 즐거워하며 선포해야 한다. 이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것이 나의 절기들이니 너희가 성회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레 23:2).”

 

그런 가운데 열심히 일한 자들만이 안식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음을 알게 한다.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의 날이라 너희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3).” 이는 주어진 6일 동안의 삶이 한 날의 안식으로 엿새 동안은 힘써 일해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곧 우리에게 주일은 하나님이 누리신 기쁨의 한 날을 영원토록 누릴 수 있는 참여의 날이다. 이는,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창 2:2-3).”

 

이로써,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 20:9-10).”

 

그리하여 이를 지키는 것은 우리의 엿새, 아니 그 모든 날들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지켜지는 것을 상기시킨다. 이는 곧 그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한다. “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눅 6:5).” 이는 우리에게 주신 모든 날의 주인 되시며, 그리하여 당신의 날을 기념하여 거룩하게 구별되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부여하신 삶의 가치를 알게 하신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사 58:13-14).”

 

이는 우리가 안식일 곧 주일을 중심으로 귀히 여기는 거룩함으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스스로 삼가서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지 말며 안식일에 너희 집에서 짐을 내지 말며 어떤 일이라도 하지 말고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함 같이 안식일을 거룩히 할지어다(렘 17:21-22).” 그러함으로 우리의 영원한 날 그 안식의 거룩한 누림을 알게 한다.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 4:9-11).”

 

우리의 쉼, 이 날의 모든 수고와 애씀이 사라지는 것으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 14:12-13).” 하시는 말씀에서 나는 가끔씩 앞서 주의 안식으로 들어간 이들을 상상하곤 한다.

 

내 몸이 힘이 들고 어디가 늘 아파서일까? 어제도 아내와 같이 산책을 하는데 유난히 병들고 아픈 이들이 자주 눈에 들어왔다. 꾸부정한 허리를 가눌 길 없어서 지팡이에 의존하고 걸음을 떼는 노인에서부터 누구는 휠체어에 의지하여 양지바른 곳에서 볕을 쬐는데 그 모습에서 고단한 생의 피곤함이 여실히 느껴졌다. 옆집의 노인이 일 년 전에만 해도 정정하여 혼자서 지팡이 짚고 걸음을 떼며 산책을 나가는 모습이 좋기만 하였는데, 마비가 오면서 더는 혼자 걸을 수도 설 수 없는 모습을 보고 가슴 아프기도 하였다.

 

우리의 삶이란 저마다의 이런저런 사연과 그에 따른 고단함을 지고 사는 일일 터인데, ‘기한이 미쳐’ 지정한 때가 이르기까지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 24:44).” 이것으로 우리의 한 날의 수고는 쉼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막 13:35).”

 

이를 대비하는 것으로 우린 주일을 기점으로 하여 한 주간씩 그 엿새의 날들을 살면서 주의 날을 기다리는 것이겠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눅 12:35-36).” 그러할 때에 하나님의 심판의 날은 다가올 테니,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7).”

 

하여 어제는 아내와 둘이 걷다 곧 임하게 될 늙으신 우리 장모의 안식의 날을 두고 말이 오갔다. 언제 또 넘어지신 것인지, 엉치 쪽 허리 위로 퍼렇게 멍이 들어 울긋불긋하였다. 주일날에는 손위 처남 내외가 어머니를 모시는데, 아내도 늘 마음의 각오는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의 슬픔은 늘 예고 없이 닥치는 일이어서….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 1:19-20).”

 

그러므로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8-19).”

 

이와 같은 우리의 날이 값 주고 사신 게 되어, 한 날 한 날이 정결한 삶으로 유지되어야 하는 것을 오늘 본문은 일찍이 밝히고 있다. “이 달 열닷샛날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이레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레 23:6).” 무교절은 유월절 다음 날로 1월 15일부터 21일까지 일 주일을 지킨다. 유월절과 같이 애굽에서의 해방됨을 기념하여 그 구원의 날을 기념하는 것이다. 이는 그때 그 급박하였던 때를 기억하며 누룩을 넣지 않은 무교병을 먹어야 한다. 더하여 이를 기념하는 데는 성결한 삶을 요구하신다. 곧 누룩을 넣음으로 그 발효되는 성질의 것을 피하는 것은 우리로 부패하게 하는 죄의 속성을 알게 하려 하심이다.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전 5:5-7).”

 

따라서 출애굽을 기념하여 단 하루 저녁 유월절을 기념하여 지킨 것과 달리 무교병을 먹으며 7일 동안 무교절을 지키게 하시는 이유를 알겠다. 7이란 성경에서 항상 완전한 숫자로 우리의 모든 날이 그러함을 일깨운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 7:1).” 하실 때에,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

 

여기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라 하심은 천국에 가고 못 가고의 문제가 아니라 천국에 들어갈 자로서 날마다 매순간의 성결을 의식하며 삶으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안식을 기억하며 이를 준비하는 날들이다. 하여,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2-3).”

 

하여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일은 천국의 날을 미리 맛보아 아는 것이면서 동시에 매일 또 다시 엿새 동안의 주어지는 삶에서 거룩과 성결을 이루어가는 일이 된다. 이때에 우리가 드릴 예물은 가시적으로는 현물이나 우리의 모든 것,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주께 드려지는 것으로의 구별된 것이 된다. 이를 오늘 말씀에서는 초실절로 지켜 기념하게 하고 있다(9-14). 초실절은 한 해 농사를 이뤄 거둔 곡식을 구별한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이를 소제로 드리라 하셨다.

 

하여,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시 24:1).

 

이를 우리로 인정하게 하여,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전 16:2).” 그렇듯 처음 것을 드려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으로,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그 땅의 처음 익은 모든 열매는 네 것이니 네 집에서 정결한 자마다 먹을 것이라(민 18:13).” 곧 우리의 전부가 주의 것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처음 소산과 모든 소산의 십분의 일을 주 앞에 가져오는 것이다. 나의 전부가 주의 것으로,

 

“해마다 우리 토지 소산의 맏물과 각종 과목의 첫 열매를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로 하였고 또 우리의 맏아들들과 가축의 처음 난 것과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율법에 기록된 대로 우리 하나님의 전으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주고(느 10:35-36).” 이에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잠 3:9).”

 

우리가 주를 공경함은 주신 바 나의 전부가 주의 것으로, 나로 죄의 땅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심으로 주의 것으로 삼으셨으니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그러므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20-21).”

 

이 놀라운 고백으로 오늘을 사는 일만큼 내일에 맞을 죽음을 기쁨으로 기다리는 일일 테니,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약 4:15-17).” 곧 우리의 선은 하나님을 바람이었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 15:21-24).”

 

나는 종종 아프고 힘든 날, 죽음 너머의 안식을 생각한다. 물론 그 미지의 세계는 두려운 일이고 그 길은 고통으로 지나야 하는 것이어서 괴롭고 떨리는 일이지만 그때에도 주의 은총으로 나의 길은 예비 되었을 테고, “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이신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사 48:17).” 그렇게 나는 자주 내 곁의 어떤 이의 고통에서 혹은 그가 겪는 세월을 무게를 가늠하다 주의 안식의 날을 소망한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히 10:36).”

 

하여 주께 바람은,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시 92:1-3).

 

나의 일생에 이 노래가 흘러넘치기를. 그리하여,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이 행하신 일로 말미암아

내가 높이 외치리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매우 깊으시니이다

(4-5).

 

나는 아직 살아서 사는 동안에 이와 같은 주의 크신 은총으로 찬송할 수 있음이 귀하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약 5:7-8).”

 

이에,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1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