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전봉석 2024. 11. 14. 00:30

 

너희는 내 안식일을 지키며 내 성소를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 26:2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시 95:1-2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기원을 둔다. 이를 준수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차별성을 갖는다. 그리하여 이는 기본 원리와 같아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 하심에 있어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9-10).”

 

그 이유는,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11).”

 

이에 안식일은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누려야 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쉼에 참여하는 일이다. 곧 이 일은 ‘성소를 공경하라.’ 하시는 데서 시작하여 하나님의 뜻 안에 거하는 삶으로 귀결된다.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제물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의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소와 양의 처음 난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거기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의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신 12:5-7).”

 

이처럼 성소는 우리에게 특별한 공간으로 거룩한 처소이다. 따라서 성소는 언약을 굳게 결속시키고 그 가운데 임재하시는 여호와의 통치를 전제로 한다.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견지하고, 안식일 제도와 하나님 중심의 생활로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주일과 교회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과 같다.

 

이에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에게 철따라 비를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나무는 열매를 맺으리라(레 26:3-4).” 곧 우리의 순종은 “사람의 행위를 따라 갚으사 각각 그의 행위대로 받게 하시나니 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욥 34:11-12).” 하는 엘리후의 말에서도 드러나듯,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잠 24:12).”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이에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롬 2:6-8).”

 

하는 이와 같은 말씀들에서 우리는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알게 된다. 오늘 말씀도 이 둘을 구분하여 ‘~을 하지 말라’ 하심과 ‘~을 하라’ 하심을 분명히 한다. 성경은 이 둘 사이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신다. 곧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그러므로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

 

이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약 4:14-15).”

 

세상 여느 일에 휘둘리어 이리저리 쓸려 다니는 안개와 같이 살아서는 안 된다. 그렇듯 수고하여도 안개는 잠시뿐이어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번성하게 하셨으므로 너희가 오늘날 하늘의 별 같이 많거니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현재보다 천 배나 많게 하시며 너희에게 허락하신 것과 같이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신 1:10-11).”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바라며 순종하고 살아야 하는가를 알려준다. 이는 우리가 이 땅에서 추구하며 사는 삶이 얼마나 허상인 것인가를 알게 한다. 우리가 곧 안개와 같은데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란 게, “그들이 은과 금으로 그것에 꾸미고 못과 장도리로 그것을 든든히 하여 흔들리지 않게 하나니 그것이 둥근 기둥 같아서 말도 못하며 걸어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이 메어야 하느니라 그것이 그들에게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하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여호와여 주와 같은 이 없나이다 주는 크시니 주의 이름이 그 권능으로 말미암아 크시니이다(렘 10:4-6).” 그렇게 해서 우리가 생활이 성소 곧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가는 게 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시 27:4).

 

이를 있는 그대로 나의 생활로 놓고 사는 데서 감사하다. 누가 말하길 교회를 지키는 사람으로 나를 표현하는데 나는 그 말의 구심점을 잘 안다. 내 안에 두시는 이와 같은 시간과 그 마음의 중심을 감사히 여긴다. 눈을 뜨기 무섭게 교회로 나오고 하루 일과의 대부분이 교회에서 이뤄지는 나의 일과를 사랑한다. 이에 말씀을 사모하고 그 가운데 순종하는 삶으로,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신 5:29).”

 

이는 나의 한 날의 수고가 그 한 날의 수고로 족한 것임을 안다. 어떤 날은 이렇고 어떤 날은 저렇다 해도,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전 7:13).” 오늘을 살면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의지와 그의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산다. 나를 향하신 주의 사랑은 나의 사랑보다 깊고 넓고 높아서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14).”

 

주신 날 가운데서 어떤 날은 감사하고 어떤 날은 기도하면서… 찬송과 기도가 병행하는 삶으로 교회를 지킨다. 그러할 때에 주가 나를 입히시고 먹이시며 사는 동안의 필요를 채우신다.

 

또 내가 기름진 밀을 그들에게 먹이며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너를 만족하게 하리라 하셨도다

(시 81:16).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사 30:26).”

 

주가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 앞에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눅 18:29-30).” 주와 함께 하는 일은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이를 기준으로 한다.

 

그러할 때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사 49:8).”

 

오늘을 살면서 이와 같은 말씀을 삶의 현장에서 목격하는 일, 누구의 어떤 상황을 보다 혹은 내가 겪고 사는 여러 일들 가운데서 주를 인정하게 되는 순간에서,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시 4:8).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때로는 나의 연약한 육신으로 인하여 혹은 내 곁에 고통당하는 이를 보다 문득 다시 또 주의 이름을 부를 때,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잠 1:33).” 일상에서 말씀이 보인다. 어지러운 사회에서 여러 정파와 각각의 주장을 듣다가도 주의 인자하심이 오늘 우리로 다시 또 한 날을 살게 하심을 깨닫게 된다.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눅 1:77-79).”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과 그리하여 오늘에 부여하시는 이러저러한 여건과 사정으로 하나님을 더욱 인정하게 되면서 행여 나의 죄악이 또는 불순종의 마음이 하나님을 가리우지 않을까 하여 두려울 때가 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워졌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냄이라(사 59:2-3).”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가 주를 거역하는 마음으로 불평과 또는 불안이 나를 엄습할 때도 있다. 누구의 일로 마음이 상할 때도 있고 나의 이 사사로움이 나의 슬픔을 가중시키기도 한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내 안의 이 두 가지 역사 사이에서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16).”

 

오늘도 이와 같이 성전과 안식일과 하나님의 쉼과 그의 처소에 대하여 묵상하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 조각한 것이나 주상을 세우지 말며 너희 땅에 조각한 석상을 세우고 그에게 경배하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레 26:1).” 하시는 이 단순하고 놀라운 명령과 함께 “너희는 내 안식일을 지키며 내 성소를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2).” 이 귀한 표준으로 내 삶의 기준을 삼아서,

 

곧 그의 언약을 지키고

그의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

(시 103:18-19).

 

오늘도 말씀으로 선다. 시편을 산다. 그러하기를 구한다.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시 40:6).

 

그렇다면 다만 오늘을 사는 데 있어,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1-12).”

 

하여,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시 95:1-2).

 

하는 시편을 들어간다.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로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3, 6). 아멘.